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작성일 : 14-04-27 14:35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기독교 신앙의 원형


성경은 결코 어려운 책이 아닙니다.
The Bible is not difficult to understand after all.

지난 번까지 몇 차례 성경에 대한 기본적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그 동안의 내용을 종합 정리하면서 일반적으로 우리 신앙인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에 대한 그릇된 선입견들을 불식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날 이상하게도 성도들에게 성경은 굉장히 어려운 책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즉 특별히 신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사람들에게나, 그리고 상당히 어려운 공부를 하고 나서야 성경이 이해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자신의 살아 계심, 그리고 크신 능력과 무궁한 사랑을 전달하려고 기록하여 놓은 책인 성경이 과연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책일까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기의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의 편지”를 쓸 때, 보통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언어를 사용하여 사랑하는 사람이 그 편지를 읽고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결론이 자명하게 드러납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오히려 자신의 사랑하는 절실한 마음과 감정을 그 사랑의 대상이 가장 잘 이해하기 쉽도록 알기 쉬운 표현을 사용하려고 애를 쓸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랑의 대상들인 성도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와 같은 것이어서 그것을 기록하게 하신 분의 뜻과 의도만 잘 이해하면 너무도 알기 쉽고 절실하게 다가오는 책입니다.
저는 실제 오랫동안 신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편에 속합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오늘날 신학연구의 문제점과 허구성을 비교적 잘 알고 있는 편입니다. 슬픈 일이지만 오늘날 신학 연구, 특히 서구의 신학 연구는 사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진실하게 발견하는데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장애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의 발언이 지나친 편견에 입각한 주장일 가능성이 있어보인다면 좀 더 객관적인 증거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 있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복음주의적인 신학자인 알리스터 맥그래스라는 사람이 「기독교의 미래」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책의 결론에 해당하는 6장 “학문적 신학의 환멸(The Disillusionment with Academic Theology)”에서 서구 신학은 성도들의 신앙적인 삶과는 유리되어 실제 성도의 신앙의 유익에 오히려 장애가 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굳이 그런 신학자의 발언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미 현존 서구 신학의 문제점은 현실로서 증명되고 있습니다. 그렇게도 기라성같이 많은 신학교들이 구라파에 즐비하게 있으며 그 많은 신학에 관한 책들과 논문들이 쉬지 않고 쏟아져 나오는데도 왜 구라파의 교회들이 회생 불가능하게 죽어가고 있는 것일까요? 과연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공부하지 않으면 성경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 어려운 철학과 논리학 같은 기본적인 학문적 훈련을 받지 아니하면 성경을 바르게 이해 할 수 없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학이 세상의 일반적인 학문이라면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인 성경을 연구하는 신학은 결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성경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성경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이 그릇될 때 생기는 문제점입니다.
이미 지난 몇 차례의 글을 통해서 성경의 기본 목적과 원리, 그리고 접근하는 올바른 태도를 말씀 드렸습니다. 이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성경이 어렵게 느껴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성경의 근본 기록목적을 염두에 두지 않고 성경을 읽고 공부할 때입니다. 성경의 원저자이신 하나님의 의도와는 다르게 성경을 접근하면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그 본래의 뜻을 알 수가 없으며 어렵게만 느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 전체를 통해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신가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어디를 보든지 그리스도 중심으로 이해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이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무궁한 은혜와 사랑을 발견하면 됩니다. 그런데 성경을 접근하면서 예컨대 이 세상에서 복 받고 잘사는 비결이나, 도덕적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도덕적 규범을 확인하려고 하면, 성경이 전달하고자 하는 본래의 의미는 왜곡됩니다.
두 번째 성경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성경의 골격을 이루는 원리를 따라가지 못할 때입니다. 성경의 기본 원리는 언약과 성취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구약(옛 언약) 그리고 신약(새 언약) 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언약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으로 성취도 하십니다. 즉 하나님은 자신이 능력이 있고 믿을만한 분이심을 언약하고 성취하는 방식을 통해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보내 주실 것을 언약하시고 그것을 지키시는 여호와이시므로 그런 여호와 하나님을 성경을 통해 알게 되면 우리는 그분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생겨나며 그 결과 마음에 안식과 평화를 얻게 됩니다.
이런 원리를 알면 성경적인 믿음은 우리 인간이 가지려고 애를 씀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대로 신실하게 행동하시는 것을 기록해 놓으시고 그 성경을 깨닫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을 선물이라고 합니다. 이런 “선물로서의 믿음”은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성경을 통해 확인하면 생겨나는 것이며 이때 믿음 생활은 참으로 신나고 즐거운 것이 됩니다.
셋째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는 문제점 때문에 성경이 어렵게 느껴집니다. 예컨대  로마서는 로마서 전체를 통해 파악될 때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의미가 드러납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의도를 가지고 그 편지를 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경을 공부하거나 전달하는 방식을 생각해보면 심각한 문제점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도무지 전후의 맥락을 살펴보지 않은 채 어떤 부분만을 떼어내어 읽거나 전달하는 경우가 보편적입니다. 그것은 “숲 전체를 보지 못하고 하나의 작은 나무만을 붙잡고 있는 식”이 됩니다. 그러한 파편적인 성경 읽기와 전달방식은 오히려 성경을 이해하게 하기보다는 점점 어렵게 느껴지도록 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됩니다.
사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많은 경우 오늘날 신학교의 성경 연구의 방식이 그런 접근을 오히려 조장합니다. 이른바 “성경에 대한 주석적 연구”라는 것이 성경의 몇 구절을 분석적으로 연구하느라고 성경 전체의 큰 그림을 놓쳐버리게 합니다. 파편적인 부분들을 많이 알수록 성경은 더욱 복잡하게만 느껴집니다. 성경은 전체의 윤곽을 잡고 나서 부분을 이해해야 그 부분이 전체에 비추어 바르게 이해됩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한 권을 보더라도 일단 성경전체의 구조 안에서 로마서의 위치를 파악하여야하고 더 나아가서 로마서의 주제와 골격을 파악한 다음에 로마서의 어떤 부분을 접근하셔야 합니다. 이는 너무도 중요합니다. 다음 만날 때까지 주 안에서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We have already discussed the proper approach to understand the Bible. Let me reiterate what we have said. First, when you read the Bible you should always consider its objectives. Otherwise, it becomes difficult to understand. If you do not know God’s purpose, it is a difficult task to understand the Bible.  The second reason for not understanding the Bible is our inability or unwillingness to grasp and follow the basic principle underlying it. The basic principle is God’s Promise and its Fulfillment. The third reason is our inability to see the Bible as a whole. For instance, to understand the book of Romans, you should grasp its message in view of the book’s tot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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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고향, 갈대아 우르의 발견
행복에 의한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