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1월 14일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제56회 한국초등교장협의회 동계연수에서 특강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학교 행정가인 교장과 교감에게 수업을 하라는 것은 당사자들의 자발적인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경기도와 협의해 심도 있게 검토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겠다”며 분기탱천해 있는 교장들을 위로한 바 있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길래 학교의 최고 존엄(?)이 위로를 받아야 했을까?
경기도 교육감이 초·중등교육법 20조를 거론하며 교장이 수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언급한 게 도화선이 되었다. 법조문에 ‘교장은 교무를 통할하고, 소속 교직원을 지도·감독하며, 학생을 교육한다’고 했으니 법을 지키라는 말이다. 사실, 나라마다 문화적 차이나 제도적 차이 때문에 핀란드나 독일처럼 교장이 수업을 하는 경우도 있고 미국처럼 경영자로서의 교장인 나라도 있다. 우리나라처럼 학교의 교육 및 행정 등 모든 업무를 총괄하며 의사결정권의 100%를 가진 존재로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수의 교원들이 교장이 되기 위해 가용자원을 총동원하는 이유다. 그렇게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꿈에 젖어 있는 교장을 향해 교사로서의 가르침을 실천하라고 했으니 “농담으로 여겼다”거나 “교장상을 왜곡하지 말라”는 불만이 봇물을 이룬 것은 당연했다.
현장에서도 이러한 상황에 두 가지 의견이 맞선다. 대다수는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승진을 앞두었거나 승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은 반대의견을 내놓는다. 찬성하는 쪽은 김용택 시인의 말마따나 “교실에 들어가지 않는 교사는 교사가 아니다.”라고 본다. 즉, ‘의사들은 병원장의 자격이 따로 없다. 검사나 판사도 검사장이나 대법원장 자격이 따로 없다. 그런데 왜 교사들은 교감 자격증이 따로 있어야 하고 교장 자격이 따로 있어야 하는가? 그 자격증 하나를 따기 위해 사랑하는 아이들을 대상화시키는 일은 아이들에게 부끄럽고 잔인하지 않은가?’라는 입장이다. 반대하는 쪽은 “교장 교감에게 수업을 하라는 것은 검찰총장에게 일선 수사를 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며 “교과 수업만이 소통이라는 생각 자체가 오류이며 그 논리대로라면 교육감부터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래서였을까? 경기도 교육감이 오는 3월부터 주 1회 교실에서 강의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이는 교장의 수업 참여에 대해 교총과 교장들이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육감이 먼저 솔선수범해 상대방의 논리를 허망하게 만들기 위한 까닭으로 보인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이러한 사태의 속살은 적나라하다. 따지고 보면 주 3~4시간 정도의 수업 여부는 미미한 것일 수 있다. 물론, 오래 수업하지 않아서 감각이 흐트러졌다고 강조하는 분도 있지만, 교장의 주 역할 중 하나가 장학이며 매년 많은 수업을 참관하고 지도 조언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멀어졌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핵심은 수업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기득권 포기의 시작, 즉 개혁의 전조라고 보기 때문에 ‘밀리면 끝’이라는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밀어붙이는 쪽에서도 기간제 교사를 줄여 가용예산을 쉽게 확보하기 위한 것이 주요 목적이고 그에 따른 시수의 부족을 메우기 위한 수단으로 관리자 수업을 들었으니 순수하지 않다. 따라서 본 목적을 숨겨 그럴듯하게 여론몰이를 하는 것과 더불어 내가 가진 큰 것을 놓지 않겠다며 기를 쓰고 있는 양자 모두 이기적인 본성에 불과하다.
사람은 갈등과 불협화음의 존재다. 우리가 경험하는 갈등이란 겉으로 드러난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말하자면 기득권이나 헤게모니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감정이 곁들여져 이성을 압도한다. 그런 까닭에 문제를 자율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대부분의 국가나 단체 등이 강제성의 법적 구속력을 지지하는 까닭이다. 지상교회는 다르다. 타락 전이나 온전한 몸을 입을 때에만 가능한 일들을 실험적으로 시도해 보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이익을 취하려거나 그것을 놓지 않으려는 승패(win-lose)접근이 세상의 이치라면 교회는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움직여지고 결국에는 아름다운 것을 얻는 승승(win-win)접근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 그 의미를 되새겨봄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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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헤립의 침공과 히스기야의 승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