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낫세의 패역과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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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오랑캐가 침범함에 싸우지 않음은 곧 화의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라 후대에 경계한 척화비를 세운 조선의 자신감은 병인과 신미 두 차례의 양요를 견뎌낸 데 있었다. 1871년 6월의 무더위 속에 조선군이 입었던 면갑은 13장 이상의 무명을 겹쳐 만든 방탄복이었으나, 화승총이 아닌 미제 스프링필드 소총 앞에서는 단지 땀복에 불과할 뿐이었다. 생포된 자 스무 명 남짓, 그러나 전사자 수는 350명에 달했던 역사의 의미는 여러 악조건 중에도 후퇴 없이 맞서다 끝내 스스로 목을 찌르거나 바다로 뛰어들던 항복을 모르는 장렬함이었으니, 참전했던 미군이 남긴 ‘전투에는 우리가 이겼지만 아무도 이 전투를 자랑스러워하지 않았다’는 기록은 당시를 숙연히 돌아보게 한다.
사실상의 패전을 대내 개혁에 뒤따른 대외적 성과로 자부한 대원군이 국제 정세를 냉철히 통찰하기보다 오히려 통상수교 거부정책을 강화하는 악수를 두었듯, 산헤립의 침공 가운데 다만 여호와의 주권적 은혜로 건져 올려진 히스기야 역시 교만으로 인해 남유다 멸망의 씨앗을 뿌리게 된다. 바빌로니아 왕 부로닥발라단의 문병 사절단을 영접한 히스기야는 아마도 반(反)아시리아 연대에 사례하는 차원에서, 또는 강적이 물러나고 이적과 함께 고침을 받은 순조로움에 우쭐한 호기로 왕국의 모든 귀중품을 과시하듯 드러내었을 것이다. 모든 일이 형통한 그때에 여호와의 시험(대하 32:31)은 찾아들었고, 이사야는 종국에 이로 인해 선조 이래로 고이 간직해 온 모든 것들이 바빌론으로 옮겨져 하나도 남지 아니하리라는(사 39:6) 서릿발 같은 예언을 전한다.
우상처럼 섬겨진 모세의 놋뱀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칭한 종교 개혁도, 아시리아의 강압에 맞선 독립을 위한 항거도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주전 696~642)가 등극하며 수포로 돌아간다. 남북왕조를 통틀어 최장기였던 그의 55년 집권은 경건했던 선대와는 딴판의 출발이었다. 언약자손 눈앞에 교훈으로 멸하신 모든 나라보다 더욱 악했던 그의 영적 타락은 힌놈 골짜기에서 인신 제사로 왕자들을 태우고, 선지자를 톱으로 켜며, 여호와의 이름을 영원히 둘지라(대하 33:7) 이르신 성전 내에 아세라 목상을 들이기까지 광란의 질주로 진행되었다. 그는 아시리아의 충성스런 봉신으로 자처하게 되는데, 7세기 전반의 아시리아는 오리엔트 전역을 통합하며 팽창의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두 아들의 음모로 사망한 산헤립을 이은 에살핫돈(680~669)은 재빨리 파국 직전의 상황을 수습한다. 부왕에 의해 훼파된 바빌론을 재건한 그는 반란의 진원지 이집트를 향해 서진(西進)해 671년 수도 멤피스를 점령하였다. 니느웨의 폐허에서 발견된 점토 재질의 육각기둥은 그에게 조공 물자를 바친 왕들의 이름 중 두 번째로 므낫세를 새겼으며, 계승자 앗수르바니팔(668~627)의 이집트 원정을 도운 봉신의 명단에도 므낫세는 등장한다. 남쪽 테베 부근까지 깊숙이 침투한 앗수르바니팔은 잔혹하게 반역을 처리한 정복자의 이미지와는 달리 문예에 조예가 깊었으며, 그의 궁전 도서관에서 발견된 5천여 점의 토판은 당대의 학문적 수준을 여실히 나타낸다. 아시리아 최후의 번영은 왕의 형이었던 샤마쉬 슘 우킨의 반기로 흔들리게 되는데, 일부 학자들은 사슬에 묶여 므낫세가 끌려간 배경을 이 반란과 결부시켜 해석한다.
중병에 처한 히스기야가 서둘러 12살 철부지를 공동 통치의 왕위에 앉혔으리라 추측하는 이들은 한편으로 왜 자신의 경건성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못했는가를 반문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 그대 이름은 약자’라는 촌언을 절감하였을 부친의 바람과 정반대로 흐르던 광기의 역사는 네 임금을 네 열조가 알지 못하던 나라로 끌어가시리라 명하신 호렙산 언약을 성취하기 위함이었다.
배반할지언정 끝까지 부둥키는 아버지의 사랑, 영원한 언약에 근거한 불변의 인자는 가장 사악했던 왕을 여호와 그 분만이 참 하나님이라 깨닫는(대하 33:13) 성화의 길로 이끌었으니,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는 어두운 인생 단 하나의 빛은 포로와 회복 모두를 영광 계시의 방편으로 선하게 섭리하시는 여호와의 자비하심 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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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이재규 집사(자유기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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