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작성일 : 14-11-09 20:03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왕국의 쇠퇴와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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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랗게 물든 숲 속 두 갈래 길’로 시작되는 프로스트의 「걸어보지 못한 길」은 덜 밟은 길을 택한 담담한 고백으로 마무리된다. 순간순간 선택의 기로에 있는 개인의 삶도 고충이겠지만, 그 선택이 거대한 공동체의 명운을 가르는 것이라면 이의 중압감이란 겪은 자만이 알 고통일 것이다. 출사표를 올리고 1차 북벌에 나선 촉의 제갈량은 기산을 거쳐 북쪽의 3개 군을 틀어쥔 뒤, 전략적 요충지 가정(街亭)의 책임자를 두고 고민한다. 일찍이 유비는 재능은 있으나 말이 앞서던 마속을 중용치 말 것을 유언으로 남겼으나, 함께 대화를 나누면 낮부터 밤까지 이어졌을 정도로 마속의 영민함을 사랑했던 제갈량은 뭇 의견을 물리치고 그를 신임했다. 그러나 지침을 어기고 산 위에 영채를 세워 보급로가 끊겨 참패함으로 마속은 국가의 숙원을 허공에 날렸고, 내심 후계자로 아꼈던 인재의 참수를 명하고 돌아선 제갈량의 눈가에는 통탄의 이슬이 맺히니 곧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고사이다.
전에도 후에도 그와 같은 지혜가 없던 솔로몬이라면 필시 촉망받는 2세를 길러냈으리란 당연론을 가뿐히 무색도록 한 이가 르호보암이었다. 선대로부터의 난제를 파악하고 해결할 만한 능력을 받지 못했던 그는 세겜의 회합에서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판단을 내린다. 르호보암이 왕권을 확인하고자 했던 세겜은 여호수아의 마지막 교훈(수 24:1)이 서린 곳이자 아브라함이 첫 제단을 쌓았던(창 12:7) 언약의 성소였으며, 북쪽 지파의 지지를 얻고자 세겜으로 향했던 행보는 당시의 국론 분열이 심각한 수준이었음을 암시한다. 화합 속 추대를 고대했을 왕에게 여로보암 이하 이스라엘 대표들은 조세 및 노역의 경감이라는 조건부 충성의 협상안을 제시했고, 르호보암은 불행히도 섬기는 지도자로서 백성의 요구를 겸허히 수용하라는 연륜 깊은 노신(老臣)들의 충언이 아닌 더욱 가혹히 억누르라는 젊은 신료들의 철없는 조언에 동조하기에 이른다.

르호보암이 축복의 대관식을 꿈꾸었던 세겜은 외려 다윗의 집을 배신한 이스라엘 열 지파의 수도가 되고 만다. 다윗과 같은 왕적 제사장을 꿈꾸던 여로보암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결속을 막고자 벧엘과 단에 별도의 예배 처소를 짓는데 이는 명백히 여호와의 이름이 머물 한 곳을 택하실 규례에 도전한 것이었다. 시리아 북부 아슬란-타쉬에서 발굴된 조각상에서 폭풍의 신 하닷(가나안의 바알)은 힘과 능력을 상징하는 젊은 황소 위에 서 있는 모습으로 형상화되는데, 일부의 연구는 두 처소에 세워진 금송아지의 배경으로 이러한 근동의 습속(習俗)에 주목한다. 출애굽의 신으로 우상을 내세운 여로보암은 솔로몬 성전의 그룹 위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듯 금송아지 위에도 임재하길 기대했을 터이나, 보이는 형체를 만들어 섬긴 여파는 애굽 22왕조 시삭(시송크 1세)의 침입이었다. 므깃도 등지에 전승비를 세운 시삭이 카르낙의 아몬 신전에 남긴 기록에 이스라엘과 유다 산지, 에돔, 트랜스 요르단 등에 진출한 기사가 등장하는데, 북이스라엘의 수도가 브누엘 및 디르사로 옮겨진 유력한 사유를 여기에서 찾기도 한다.

이 시대를 바라보는 전통적 이해는 솔로몬과 후대 왕들의 부패로 여호와의 심판이 따랐다는 구속사적 사고방식이나, 이 경우 칼로 자해하면 비를 내렸다는 바알의 보응적 역사와 그 차별성이 모호해진다. 모세를 통한 언약, 곧 약속의 땅에 들어가 풍족해지면 돌이켜 우상을 섬기고 여호와를 멸시할 것이라는 신명기의 예언은 타락했으니 깨뜨리심이 아닌 깨뜨리시고자 타락하게 두심의 성경 전체의 구조적 논리를 전제로 한다. 아담의 범죄는 에덴의 일상이 어떠한 감사였는지 추억하도록 하였을 것이며, 르호보암의 실책은 부친의 교훈이 어떠한 가치였는지 회상하도록 하였을 것이다. ‘보편 교회의 최고 사제장,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선도하는 넓은 길 아닌 ‘죄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좁은 길 걷게 하시며, 어리석은 실수 가운데 나의 상처를 아픈 눈물로 고백케 하심은, 그리스도 사랑의 치유로 감격의 힘 더하실 여호와 은혜의 영광을 찬송케 하려 하심이리라.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이재규 집사(자유기고가)

“쫌 그러지 않나?”
온 나라에 임하는 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