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의 원형
16.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여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합니다.
The Law makes us aware of our sins and leads us to Christ.
지난 몇 달 동안에 걸쳐 우리는 기독교 신앙의 기초가 되는 성경에 관하여, 그리고 신앙생활의 원리와 실제에 관한 개략적인 내용을 검토해 보았습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에 대한 총론적인 성격을 지닌다면, 오늘부터는 각론에 해당하는 내용들 즉 신앙생활을 해 가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성경의 개념들을 자세하게 분석·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우리의 신앙을 정립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누차 강조한대로 성경에 나오는 용어와 개념들은 세상에서 사용하는 사전적 의미와는 절대적으로 구분됩니다. 따라서 이 점을 날카롭게 의식하지 않으면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장애를 겪게 됩니다.
먼저 오늘은 성경에 너무도 많이 나오지만 심히 곡해가 되기 쉬운 용어 중 하나인 율법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율법이라고 하면 그것은 어쩐지 성도들에게는 무겁고 부담스러운 것, 달리 말하면 그것은 의무적인 혹은 도덕적인 규범으로 그리고 지키지 못했을 때 처벌하는 기준과 같은 것으로 성도들에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율법의 의미를 바르게 알게 되면 우리는 율법을 통해 부담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놀라운 복음의 핵심을 파악하게 되고, 우리의 신앙생활은 참된 자유를 얻게 됩니다.
로마서는 성경 중에서 가장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복음의 진리를 진술하되 당대 율법에 대해 철저히 오해하고 있었던 유대주의자들의 문제점을 밝혀 가면서 복음 진리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로마서의 전체 의도를 파악하여야 하고 그런 로마서 전체의 맥락 속에서 율법의 복음적 의미를 파악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 율법의 의미가 왜곡되기가 너무도 쉽습니다. 로마서는 전체의 주제가 ‘불의한 인간을 의롭다하시는 능력과 자비의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이 주제를 드러내기 위하여 로마서는 크게 보아 세 부분 즉 첫째 부분은 인간의 불의, 둘째 부분은 불의한 인간을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의,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신령한 예배 생활에 대한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의 첫 부분을 통해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되려는 당대의 유대주의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공박하면서 모든 인간은 율법아래 죄인일 수밖에 없는 불의한 존재, 즉 죄인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즉 인간이 아담타락 이후에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죄인인가를 밝히는 맥락에서 율법을 거론합니다. 이것이 율법의 진정한 용도를 알기 위해서 매우 중요한 대목입니다. 즉 율법이란 그것을 지켜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되는 수단이 아니라 죄인인 인간이 율법을 통해서 자신이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교육적 방편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로마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그의 앞에 의롭다 할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이것이 기독교와 이방종교와의 근원적인 차이점을 나타냅니다. 모든 이방 종교는 나름대로의 법 혹은 계율을 지켜서 인간 스스로 의로운 존재가 되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즉 모종의 계율을 인간이 지키도록 노력을 하고 그것을 지키는 만큼 자기가 의로운 존재로 되어간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죄인임을 모르는 그릇된 발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아직도 성도가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복음의 본질을 모르는 율법주의적인 접근에 불과합니다. 죄인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이 보실 때 의로운 구석이 전혀 없는,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결코 지킬 수 없는 존재임을 말합니다. 로마서의 첫째 부분은 이를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0) 그러므로 죄인은 율법, 특히 계명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이는 구약시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신 이유를 보면 더욱더 분명해 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대로 출애굽하여 광야에 나왔습니다. 얼마 후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이때 율법을 출애굽기는 계명, 율례, 규례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구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율법을 도덕법, 의식법, 국가법으로 나누고 의식법과 국가법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성취되었으나 도덕법으로서의 십계명은 신약 시대에도 유효하다는 주장을 합니다. 이는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주장으로서 전혀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그릇된 주장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모든 율법을 그의 사역을 통해 다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모세를 통해 주어진 계명은 애굽에서 400년 종살이하고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킬 수 있는 법이 아닙니다. 그들은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 시내산으로 올라간 사이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이 자기들을 이끌어 낸 신이라고 우상숭배하는 죄인들입니다. 그리고 40년 광야 생활동안에 간음하고 범죄하면서 십계명을 모두 어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롭게도 십계명과 더불어 제사법으로서의 규례를 함께 주셨습니다. 즉 계명을 못 지키고 죄인 된 인간에게 죄사함을 통해 살 길을 허락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장차 예수님의 제사사역을 그림자적으로, 혹은 예표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셔서 택한 백성의 죄를 걸머지시고 대신 죄인이 되어 죽으심으로 택한 성도의 죄를 없이 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의롭다 하십니다. 따라서 구약의 율법은 정죄기능으로서의 십계명과 사죄기능으로서의 제사법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율법은 궁극적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전체적인 의미에서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히10: 1)”라고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은 율법 중 십계명을 잘 지켜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는 갈라디아서 말씀대로 이미 430년 전 아브라함과의 언약에 근거한 것이고, 과정적으로는 광야에서 율법의 한 요소인 십계명을 범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율법의 또 다른 요소인 제사법인 규례에 의한 사죄함 때문입니다. 이를 신약적으로 본다면 우리는 십계명을 지킬 수 없는 죄인이지만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 대신 율법의 십계명을 지키시고, 또한 제사의 제물되심으로 율법의 규례를 지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사함받고 천국을 가게 된 것입니다. 결국 율법의 한 요소인 십계명은 도덕적 규범이 아니라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법이며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입니다. 이런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면 우리는 율법을 통해 죄악의 깨달음과 더불어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감사하게 됩니다. 다음 만날 때 까지 주 안에서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The Israelites could finally enter the land of Canaan, not because they obeyed the commandments, but because God had promised the land to Abraham 430 years before and God provided a way to satisfy his justice and to forgive law breakers. In other words, they could enter the land of Canaan by virtue of the two aspects of the law: the commandments and the sacrificial ceremonial rites. In terms of the New Testament, we can say that since man cannot obey the Ten Commandments, Jesus came, obeyed the commandments perfectly, and sacrificed himself. And, as a result, those who trust in Jesus as their perfect offering for sin are forgiven. Moreover, the Ten Commandments are not primarily a moral code; their primary function is to show us that we are sinners and to lead us to Christ. Once we realize this, we should be strongly motivated to thank God and render glory to God for saving us.
|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
부활의 근거 |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