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작성일 : 15-02-08 14:23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기독교 신앙의 원형


18. 성도는 율법조항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에 의해 살게 됩니다.
Christians should live according to the law of the love of Christ.

우리는 지난 번 두 차례에 걸쳐 율법의 복음적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율법이란 지켜서 의로울 수 있는 도덕적 차원의 규범이 결코 아니라 죄인인 인간이 자기의 죄를 깨닫게 되는 거울과도 같은 것이며 그 율법은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과 같음을 강조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율법은 궁극적으로 “장차 오실 좋은 일의 그림자”로서 메시야 언약이라는 사실을 확인 했습니다.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가 예언한대로 그리스도는 때가 차매 이 땅에 오셔서 구약의 모든 언약을 성취하셨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능력을 계시하셨습니다. 따라서 구약의 모든 율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이것을 성경이 너무도 명백하게 밝히고 있기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율법에 대한 오해는 그것이 지금도 도덕적인 규범과 같이 기능한다고 보는데 있습니다. 구약에도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고 그것을 지키라고 하신 분이기에 그것은 오늘날 예수님 오신 후에도 여전히 지켜야할 규범과 같은 것으로 기능한다고 합니다.
이 문제는 참으로 율법과 복음의 관계에 관한 문제로 너무도 중요합니다. 이점이 올바르게 정리되어야 우리는 그릇된 율법주의적인 멍에로부터 벗어나서 참된 자유의 복음아래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 믿고 난 후의 율법의 기능에 관한 견해는 역사적으로 양극단의 그릇된 주장이 있어 왔습니다. 한 극단은 율법주의적인 경향으로서 율법 특히 십계명이 도덕적인 규범으로서 예수 믿고 난 후에도 성도들에게 기능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극단은 반율법주의적인(혹은 방종주의적인) 경향으로서 예수 믿고 난 후에는 아무런 규범의 지배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하는 주장입니다. 전자는 성도들을 다시 율법의 무거운 멍에 아래로 들어가게 하여 억압받는 신앙생활로 인도하는 문제점을 야기하며, 후자는 예수 믿고 난 후 얻어진 죄악의 권세로부터의 자유가 더 성숙한 신앙에로 나아가는 원리의 부재로 말미암아 육신의 기회로 삼게 되어 방종과 합리화의 문제점을 낳게 됩니다.
이 양극단의 문제점을 성경적으로 극복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지난 번 구약의 율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성취되었음을 확인하면서 구약의 율법은 우리 성도들에게 도덕적인 규범처럼 직접 다가오는 것이 아님을 말씀 드렸습니다. 신약의 성도들은 구약의 율법을 바라보되 그 율법을 성취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율법을 바라보게 됩니다. 즉 바울이 증거한대로 “모세의 글을 읽을 때 수건을 벗고 보면(고후 3:15-18)” 구약의 율법은 장차 오실 메시야의 은혜로 가득차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의 조명하심을 받으면 율법 안에 메시야, 즉 그리스도를 통해 자유의 복음을 증거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역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구약의 율법의 조항들을 그리스도를 통해 보지 못하면 그것은 우리를 정죄하는 무거운 법조문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요컨대 구약의 율법이 메시야 언약임을 알지 못하고 신약의 성도들에게 직접 도덕적인 규범으로 적용시키는 것은 율법주의적인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신약의 어떤 성경도 성도들에게 구약의 율법을 법조문식으로 지키라고 가르치는 곳은 없습니다.
반면에 이와는 다른 극단의 문제점도 있습니다. 즉 율법을 통해 드러나는 복음의 진리를 깊이 깨닫지 못하면 역사상 존재하였던 반율법주의 혹은 방종주의적인 신앙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즉 이제는 그리스도를 통해 율법의 정죄와 멍에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으므로 성도는 어떤 삶을 살아도 정죄함이 없기에 괜찮다는 식의 그릇된 생각입니다. 그 결과 예수믿고 난 뒤의 삶의 아름다운 질서를 상실하고 방종케 됩니다. 이미 갈라디아서는 이런 방종적인 현상을 지적하며 권면을 합니다. 즉 “자유로 육신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종노릇하라(갈 5:13)”. 이들은 율법으로부터 성도가 해방되었다고 하는 사실만을 깨달았을 뿐 율법으로부터의 해방은 곧 “그리스도의 법(갈 6:2)” 아래 종속된다고 하는 더욱 중요한 존재의 변화를 깨닫지 못합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율법의 정죄 아래 놓여 있었던 성도를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해방시킬 뿐 아니라 “생명의 성령의 법” 아래 두셨습니다(롬 8:1-2).
인간은 궁극적으로 절대 스스로 독립적인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스스로 독립하는 존재는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누군가에 의해 종속된 존재입니다. 그것이 어두움의 종인지 아니면 사랑의 아버지의 종인지 그 차이가 있을 뿐 입니다. 성도는 육신적으로는 독립적인 머리를 가진 존재로 보이지만, 영적으로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것입니다. 지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체는 전적으로 머리의 주관 아래 종속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죄악으로부터의 자유라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사랑의 통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영적 의미의 자유입니다. 말하자면 사단의 종노릇하다가 그리스도의 주관아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 이라고 합니다. 
방종주의적인 태도는 비유컨대 아버지를 떠나 제멋대로 만신창이로 살면서 깡패 소굴에 붙잡혀 있다가 아버지의 구출로 말미암아 벗어나 아버지의 품으로 들어온 연후 다시 제멋대로 살아도 괜찮다고 하는 어리석은 태도입니다. 복음을 바르게 깊이 깨닫게 되면 그것이 가능하질 않습니다. 율법의 정죄와 멍에로부터 벗어난 자녀는 이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뜻을 깨달아서 그 사랑의 법에 매여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때 사랑의 법은 억압적인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 사랑의 법에 의한 행위는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고 이루어지는 행위이기에 자발적이고 기쁨의 토대에서 이루어집니다. 쉽게 말해 부모의 큰 사랑을 깨달은 자녀가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를 사랑하며 사는 것은 너무도 기쁘고 가벼운 일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멍에가 쉽고 가볍다고 하십니다. 또한 이 점에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로마서가 가르칩니다. 이제 율법의 정죄로부터 벗어나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의 인도를 받는 성도는 외형적인 율법의 조항을 지키는 척하는 위선적인 삶이 아니라 속 중심이 점차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바뀌어 지면서 속 중심으로부터 형제를 사랑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형제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외형적인 율법의 조항은 완전히 초월하게 되어 도둑질하거나 간음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미움 자체가 사라지게 됩니다. 기독교는 결코 율법주의적인 행위의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드러내는 종교입니다. 그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게 되면 사람이 속 중심으로부터 변화하게 됩니다. 전날에 사악하고 탐욕스런 자기중심적인 존재가 은혜의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평안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언약대로 보내셔서 하나님의 무궁한 은혜를 드러내십니다. 그 은혜의 복음을 깨닫게 되면 인생은 행복하게 됩니다. 그 신령한 행복이 넘치게 되면 성도는 자연스레 이웃을 돌아보고픈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성도와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성도는 이제 율법아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갈 5:18). 그리스도의 법 혹은 성령의 법이 성도를 지배하게 됨으로 과거 육신의 종노릇하던 삶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삶으로 점차 변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위대한 능력은 율법의 정죄로 부터 해방시킬 뿐 아니라 어리석은 방종의 삶으로부터도 벗어나게 하여 참된 성숙의 삶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We who are servants of the law of love should not live pretending as if we were obeying the Old Testament law. Those who are guided by the Spirit are no longer subject to the oppression of the law. Galatians 5:18 states: “If the Spirit leads you, then you are not subject to the Law.” The power of the gospel not only liberates us from the law but also from an undisciplined life, and it enables us to live a happy and mature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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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경기교육의 줄기와 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