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시민교육, 좋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다
2월쯤으로 기억된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에 “경기도 초·중·고 민주시민교육 교과서 채택률 94%”라는 한줄 뉴스가 버스 모니터 화면에서 흘러가고 있었다. ‘민주시민교육’ 교과서는 도교육청의 지원으로 일선 교사들이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어 보급하는 교과서다.
혁신교육으로 상징되는 ‘김상곤표 교육’이 민주시민교육으로 날아오르려니 도교육청에서는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지만 업무 담당자로서 교재 채택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신청하지 않은 터였다. 이후 교재를 선택할 기회가 한 번 더 주어졌고 집필자들의 열정과 땀방울에 대한 수고를 고려하여 재고해보려 했지만 고민 끝에 그만두었다.
하나의 교과서가 완성되기까지는 신고(辛苦)의 과정이다. 지역화 사회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경험상, 교과서가 나오기까지 많은 애로 사항이 있음을 안다. 우선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현직 교사의 경우 근무시간에 할 여유가 없으므로 주로 퇴근 후 이루어지며 급한 경우 휴일도 없다. 대략적인 그림이 완성되었다 할지라도 문구 하나를 선택하거나 적절한 단어를 고르는데도 치열한 의견 교환이 이루어지며 수정의 수정을 반복하는 과정이다. 교재를 선택하는데 교육적 효과를 고려하지 않고 인간적인 고려를 한 까닭이 터무니없는 것이지만 사람이 어디 이성적이기만 한가.
결과적으로는 두 가지 이유로 채택하지 않았다. 첫째는 사회, 도덕과의 내용과 중복되어 기존 교과에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다는 판단이었고, 둘째는 교육과정상의 빡빡한 일정으로 별도의 시간을 확보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심정적으로는 일제식 강요에 대한 근본적인 거부감도 한몫했다. 말하자면 혁신(innovation)을 강조하는 교육청에서 일선 학교에 밀어붙이는 방식이 혁신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의문이었다. 결국, 민주시민교육의 핵심 내용들이 학년 교육과정에 녹아들어가도록 편성하겠다는 사유를 공문으로 올리는 것으로 갈음했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회적 현상과 맞물려 국내 거주 120만 명을 넘는 외인들과의 소통이 중요시된다는 점에서 오늘날 시민(citizen)교육의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또한 OECD의 ‘DeSeCo 프로젝트(Defining and Selecting Key Competencies)’에서 정의하고 있는 핵심 역량의 하위 요소인 ‘이질적인 집단과 상호작용하기’가 영 시원치 않다는 현실적 진단에 따른 타계책으로 교육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이는 국가적 과제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사회와 도덕교과를 중심으로 한 민주시민교육의 내용이 한 아름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경기도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나 ‘혁신교육’으로 우리나라 교육에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그것으로 인해 유명세를 치렀기에 다른 분야에서도 경쟁적으로 앞서 가려는 경향이 짙다. 따라서 민주시민교육과 관련한 많은 정책이 쏟아진다. 그 중 학생 자치와 관련한 내용이 논란이다.
많은 학교들이 연간 100시간 남짓한 ‘창의적 체험활동(창체)’에서 다뤄야 할 영역이 100시간을 훨씬 초과하는 상태에서 민주시민교육의 한 영역인 학급회의 시수를 충분히 확보하라는 것은 무리수다. 물론,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창체의 일부 영역을 교과와 통합운영하고 빈 시간을 이용하면 된다. 문제는 교과 지도에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통합 운영이 허울뿐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더 황당한 것은 전교 회장을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시키라는 권고다. 고등학생의 경우는 납득할만하고 중학생 정도까지는 수긍할만하지만 초등학생까지 참여시키라는 것에는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민주시민교육’, 좋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진정한 혁신은 다수에 속하지 않는다고 사유서를 요구하지 않는 것이고 획일화, 일제식 사고를 하지 않는 것이며 당국의 실적을 위해 하위 기관에 성과를 제출하도록 하지 않는 것이다. 혁신을 내세우면서 혁신적이지 않은 발상으로, 민주 시민을 강조하면서 비민주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
행복에 의한 나눔 |
열조(列祖) 시대의 역사 : 서언(序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