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정복기의 근동 정세
3 ػ (ī п)
사회과부도가 온통 낙서로 지저분했던 초등시절 나름의 즐거움은 백지도를 그려놓고 불타는 애국심으로 나라별 영토를 재구성하는 새 역사 창조의 선 긋기 놀이였다. 고대국가의 영토란 명확히 구획된 선이 아닌 느슨히 분포된 점의 개념, 곧 특정지역에서 중복되기도 했던 대략의 세력권을 의미함을 배운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윤리적 행위 아닌 창세 전 작정에 따라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리라(창 9:26) 선언하심이 성취된 가나안 정복 과정은 일회적 사건이 아닌 단계적, 점진적인 것이었다. 여호수아의 요단 서편 진격 후 사사시대에도 남은 땅의 정복을 위한 접전이 이어져야 했으며, 이처럼 ‘세력권 생성 중’이었을 주전 14~12세기경 300여 년 사사기의 진행을 전제할 때, 이집트의 람세스 2세가 가나안을 지나 시리아 오론테스 강에서 히타이트의 무와탈리와 충돌한 13세기의 카데시 전투가 무리 없이 이해된다.
성경이 대체로 침묵하고 있는 여호수아와 사사기가 진행되던 기간의 일반 근동사는 어느 한 나라가 다른 나라들 위에 일방적으로 군림하지 못했던 상황으로 요약된다. 이집트 메르넵타가 침공을 과시하듯 새긴 13세기의 석비는 이스라엘이 일정한 세력으로 정착했음을 암시하며 사사기의 역사성을 부여하지만, 그 외의 문서 사료들이 남긴 세력판도의 묘사에서 이스라엘의 존재는 무시된다. 이는 두 가지 가정을 가능케 하는데 하나는 주요 강대국들이 팽팽한 분할구도로 상호 견제하던 상태에서 외딴 작은 나라에까지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었다는 추측, 또 하나는 여호와의 감동을 입은 성경 기자의 판단으로 볼 때 일관된 계시 논리를 풀어감에 큰 연관성이 없는 강대국의 활동은 기록할 이유가 없었다는 추측이다.
간략히 당시의 국제정세를 살피면, ① 고바빌로니아가 16세기 히타이트에 의해 붕괴된 이래 그 자리를 카시트 왕국이 1159년까지 대신했고, ② 동쪽의 아시리아와 서쪽의 히타이트 사이에 껴있던 후리족의 미타니[하니갈밧] 왕국은 1400년경 정점에 오른 뒤 13세기에 사라졌으며, ③ 17세기 고대왕국 형성 이후 14세기 숩필룰리우마 1세 때 중흥했던 철기의 제국 히타이트[하티] 신왕국은 1190년경 갑자기 무너졌고, ④ 도시국가에 불과하던 아시리아는 14세기 앗수르-우발릿 1세 때에 이르러 제국의 기초를 닦았다. 이외에 동편 끝의 엘람 왕국과 서편 끝의 미케네 왕국이 멀리 자리하고 있었다. 재차 주목할 것은 아직 다윗 왕조가 들어서지 않았던 이스라엘의 맹아(萌芽) 기간에 어느 왕국도 가나안 지역에까지 간섭할 만큼의 절대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히타이트의 남하 이전 가나안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이집트의 연대를 살펴보자. 이스라엘이 막 가나안에 정착을 시작할 때인 14세기 초·중엽의 이집트는 아마르나 시대로 정의되는 문화적 황금기였다. 18왕조 투트모세 3세의 군사적 성공은 각지의 부가 흘러드는 번영으로 이어졌고, 내치에 힘썼던 아멘호텝 3세의 원정은 남쪽 누비아에 한정되었다. 말년에 향락에 빠진 왕의 사후 평민 출신 왕비의 무난한 통치를 거쳐 아멘호텝 4세가 등극한다. 아버지가 각처에 건립했던 많은 신전은 왕실을 위협할 사제계층의 비대화를 초래했으며, 이를 누르고자 그는 아마르나로 천도하고 유일신 아톤을 받드는 종교개혁을 단행한다. 출토된 아마르나 문서 중 이크나톤으로 개명하며 종교적 열정에 사로잡힌 왕이 가나안 속국왕의 군사적 원조 요청을 무시하는 내용이 눈에 띄는데, 이러한 무관심의 근저에는 언약의 땅을 얻기까지 세세한 정황을 구성해 가시는 여호와 섭리의 맥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19왕조 세티 1세와 람세스 2세는 다시 가나안 쪽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으나, 전술했던 카데시 전투 이후 체결된 히타이트와의 평화조약은 가나안에 대한 이집트의 통제력 약화로 이어졌다. 조약은 서서히 서쪽으로 압박해 오던 아시리아를 의식한 것이었으며, 20왕조 람세스 3세는 설상가상 침범해 온 일군의 해상 민족을 격퇴하지만, 그 후유증과 사회적 혼란이 겹쳐 이집트는 가나안 직할권 상실과 함께 몰락의 길을 걷는다. 쫓겨난 해상세력의 일부는 가나안의 해안에 상륙하게 되는데 상당한 철기 문명을 소유했던 이들이 곧 갑돌[크레타]에서 오게 하신(암 9:7) 블레셋이었다.
강력했던 배후를 세력 분할의 와중에 미약하게 하시고, 기존 토착민을 이스라엘 앞에 패하게도 하시며, 그즈음 새로운 옆구리의 가시를 올리기도 하시는 여호와의 길을 상고해 본다. 육의 소욕쯤 당장에 진멸(盡滅)하실 절대자께서 두고두고 채찍을 남기시는 이유, 기나긴 삶의 여정 속 나의 전적 무능을 깨닫고 오직 아버지의 전적 주권만을 기억하고 돌아와 의지하게 하시려는 깊은 사랑의 손길이리라.
|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이재규 (자유기고가) |
혁신교육, 두 번째 이야기 |
기독교 신앙의 원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