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기독교 신앙은 삶의 전 영역에서 이루어집니다.
기독교 신앙의 원형
11. 기독교 신앙은 삶의 전 영역에서 이루어집니다.
Christian faith is lived in every field of human life.
지난 번 참된 기독교 신앙은 교회당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밝히면서 삶의 전 영역에서의 신앙생활의 중요성을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은 그 말씀의 중요성을 좀 더 상세하게 부연 설명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삶의 전 영역에서 균형 있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른바 ‘이원론적 사고방식’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와 세상을 이원적으로 구별하고 교회는 거룩하고 세상은 속된 것이라는 구분의 방식입니다. 즉 거룩함과 속된 것을 외형적으로, 그리고 공간적으로 구분하는 발상과 사고방식입니다. 이는 성경적으로 합당한 사고방식이 아닙니다.
교회당은 거룩하고 세상은 속된 것이라는 이원론적 사고는 생각보다는 매우 뿌리가 깊고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이 때문에 중세 시대 수도원 사상이 형성되었고 그 연유로 세상을 매우 속되게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수도원에 들어가는 것을 영광으로 간주하였고 세상과는 공간적으로 구별되는 수도원에서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할 수 있다는 그릇된 관념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세상을 죄악시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고를 가지게 되면 사실상 세상 혹은 사회에서의 생활은 알게 모르게 죄의식을 갖게 되고 억압을 받습니다. 그래서 죄악된 세상에서 사는 것 자체를 가능하면 피해야 할 것으로 간주하게 되고, 따라서 교회당 밖에서의 삶에 대한 신앙적이고 긍정적 이해의 길이 막힙니다.
그 결과 교회에서 봉사하는 일은 거룩한 일이로되, 반면 세상에서 돈 벌고 노동하는 일은 육신의 썩을 양식을 위한 속되고 천한 것으로 바라보는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이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느냐(고전 10:31) 아니면 자기영광을 위하여 하느냐 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도가 교회에서 봉사를 하든지 아니면 세상에서 사업을 하든지 간에 어떤 동기와 태도로 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당 안에서도 말씀에 붙들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자아실현 혹은 자기 영광을 위하여 일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교회당 밖의 일이라고 해서 모두 죄악된 일이 결코 아닙니다. 시장에서 장사하고 불신자와 더불어 직장 생활하는 일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태도로 신실하게 하는 일이라면 거룩한 일이 됩니다. 베드로 사도는 주인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이 아니라 까다로운 주인 앞에서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생활할 것을 권면합니다(벧전 2:18-19). 그것은 어떤 이유에서 입니까? 하나님은 택한 성도들을 교회당 안에서만이 아니라 세상의 까다로운 주인을 통해서도 성도의 신앙을 단련시켜 가십니다.
누차 강조한대로 중요한 것은 어디에 있든지 간에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은혜를 깊이 깨닫고 범사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령한 태도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거룩’은 ‘겉으로 드러나는 외형적 공간이나 시간으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속 중심의 변화’로 확인됩니다. 즉 전에 타락한 심령이 진리의 말씀을 깨달아 거룩한 마음, 즉 하나님을 의지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속 중심의 신앙인격이 거룩하게 변화될 때 우리는 삶의 전 영역들, 즉 교회당 생활과 사회생활, 그리고 가정생활 모두를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신앙생활의 공간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아름답고 균형잡힌 신앙생활이 가능해 집니다.
그러나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신약시대인 오늘에 와서도 특정의 공간이나 시간, 혹은 인물을 특별히 거룩한 것으로 구별하는 무속적인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예컨대 교회당 공간 자체를 세상의 공간과는 구별하여 거룩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교회당을 마치 구약의 성전인 것처럼 간주합니다. 구약의 성전은 구약적 제사를 위해 필요했던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부활의 몸에 대한 그림자요 예표인 것입니다. 교회당은 결코 구약의 성전과 동일시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지은 건물 안에서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행 17:24~25). 그것은 이방종교 혹은 서낭당 식의 무속 종교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주일 예배시간을 특별히 다른 시간과 구별하는 것입니다. 주일을 구약의 안식일로 간주하여 거룩시 하기도 합니다. 즉 ‘거룩한 안식일로서의 주일’만을 ‘예배하는 시간’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위 주일의 공 예배만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은 결코 아닙니다. 주일의 공 예배는 전 성도가 한자리에 모여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찬송하는 예배의 시간이므로 말할 나위도 없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예배가 끝났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성경적인 예배를 합당하게 이해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우리의 삶 전부와 전체의 시간이 하나님 앞에서의 예배하는 생활입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신약 시대에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에게 주어질 심령의 안식, 더 나아가서 그리고 천국에서 누릴 영원한 안식의 그림자적 사건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오신 이후에 우리는 구약처럼 날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해 심령의 안식을 날마다 누리고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절기나 안식일을 강요하는 당대 율법주의자들의 거짓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반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골 2:16~17)
이 말씀대로 구약시대의 율법의 세부내용들인 절기나 안식일은 장래 일, 즉 그리스도 사건의 그림자입니다. 즉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완전히 성취되었고 따라서 이제는 구약의 유월절이나 수장절 그리고 안식일 같은 것들은 지킬 이유가 없습니다. 그 모두를 성취하신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처음부터 구약은 언약이고 신약은 성취라는 성경 전체의 구도의 중요성을 말씀 드렸습니다. 구약의 율법을 포함한 모든 내용이 그리스도를 예언적으로 언약하고 있다는 것이 복음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입니다. 따라서 신약의 성도는 율법의 내용을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을 성취한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에 모시고 전 생활 영역에서 하나님을 범사에 인정하고 살아가는 특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는 어떤 영역, 어느 시간이든지 하나님을 예배하는 즉 경외하는 삶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정립되어야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을 배우고 경외하는 건전한 신앙생활이 가능해 집니다. 다음 만날 때까지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Those who have received the Holy Spirit can always, no matter where they are, make prayer and worship as the center of their life. In this way we can live as true Christi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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