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의 원형
이 책의 결론
- 기독교 신앙, 그 원형은 무엇인가? -
2. 문제의 원인
신학의 미숙으로 인한 설교 강단의 혼란
한국교회 신앙은 과연 정상적인 성장의 길을 가고 있는가? 복음이 이 땅에 들어온 이래 백 이십 년이 지나면서 한국교회는 여러 면에서 세계 기독교가 부러워하는 인적 물적 기반이 조성되었다. 그러나 정작 성도들의 신앙은 대단히 위태로워 보인다. 특히 신앙 지도자들의 의식과 그들의 진리인식을 들여다보면 위기의 징후는 더욱 심각하다.
신앙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그것이 인간 편으로부터 시작되거나 혹은 완성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은 성경이 증거하는 대로 하나님으로부터 기인되고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진정한 신앙의 의미와 정반대의 내용을 지닌다. 성경이 증거하는 신앙은 전혀 그런 차원이 아니다. 이하에서는 신앙의 정체성 혼미를 가져오는 원인을 먼저 설명하고 나서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검토하도록 하겠다.
1) 신앙 정체성 혼미의 원인
설교 강단의 빈곤과 왜곡
신앙이란 신앙의 대상과 신앙하는 사람이 전제된다. 그러므로 정당한 신앙이란 신앙의 대상이 어떤 분이며 신앙하는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이해를 전제조건으로 한다. 이것이 분명하지 않은 신앙을 우리는 미신 혹은 사이비 신앙이라고 한다. 기독교 신앙은 무엇보다도 먼저 신앙의 대상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강조한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여 알도록 하신 것이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성경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위한 노력보다는 지도자들의 초인적인 헌신과 성도들의 종교적 열심이 교회를 성장시키고 이끌어 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거기에는 물론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교회를 사랑하려는 진심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성경을 이해하려는 신학적 작업이 한국교회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한 설교 비평가의 예리한 비평 앞에 발가벗겨진 한국교회의 강단의 성경 이해는 너무도 초라했고 신학적으로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었다.
요컨대 진리를 선포한다고 간주되는 교회 설교강단에 성경의 본래적인 뜻을 해명하려는 해석 작업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신앙의 대상이신 하나님에 대한 진지한 소개와 체계적인 설명은 언제나 사라지고 인간들의 주관적 신앙체험 이야기, 영웅들의 이야기, 세상 성공비결, 심리학적 치유의 방법, 사회정의의 방법들로 가득 채워진다는 것이다. 성경의 맥락을 따라가며 하나님을 진지하게 전달하려는 헌신과 집중력이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개신교회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는 달리 설교의 중요성을 무엇보다도 강조한다. 그것은 오직 성경 진리에 의해 교회가 세워지고 성장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설교가 그만큼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진리를 선포하는 자리요, 하나님을 소개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강단에서 정작 하나님이 성경의 맥락을 따라 진지하게 해석되거나 선포되지 않는다면 성도는 도대체 무엇을 먹고 신앙생활을 할 것인가? 위에서 언급된 설교 강단의 혼선과 난맥상은 그대로 성도의 신앙에 직격탄이 되어 심각한 후유증을 낳게 마련이다. 그것은 불을 보듯 확연한 사실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신학교육의 심각한 문제점
그것은 개개인 설교자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가 숨어 있다. 그것은 설교자가 양성되는 신학교의 신학교육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모든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일정 기간 신학교에서 교육을 받는다. 신학교는 목회자 후보생들을 불러 성경해석학, 조직신학, 역사신학, 설교학 등등의 신학 이론을 가르친다. 그러나 정작 신학교에서 성경 자체를 체계적으로 해석하게 하는 실력과 안목을 가르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이는 이미 한국의 신학교를 다닌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공감되는 공통된 경험이다.
거의 모든 한국의 신학 교수들은 구미의 유수한 신학교에서 학문적 수련을 받고 학위를 받아 돌아온 학자들이다. 그들 스스로가 뼈저리게 느끼는 대로 그 유명하다는 서구의 신학대학교에서 성경 그 자체를 체계적으로 해석하고 강해하는 교육을 받지 못했다. 문제의 심각성은 서구신학이 성경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을 키우지 않으며 그런 교육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현실은 성경은 고등학교 수준의 성경학교에서나 배우는 것이요, 신학대학교는 그럴듯한 일반 철학이나 일반 학문의 관점으로 채색된 신학적 경향과 이론들을 소개하는 것이 학문적인 수준을 높이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성경 그 자체의 논리와 진리성이야말로 최고 수준의 학문성을 가진 것으로 평가해야 할 신학교에서 오히려 성경이 천대받고 있다. 이것이 한국교회 문제의 진원지이다.
그래서 신학은 이론적인 전문 작업을 수행하는 신학자들의 몫이요, 목회는 목회자 각자의 목회 방법론에 의해 성도들을 관리하면서 교회를 이끌어간다. 즉 신학 공부를 일정 기간 마치고 목회의 현장에 들어선 교회의 설교자들은 그들 나름의 경험적 노하우를 가지고 설교 행위를 수행하게 된다. 그래서 같은 본문을 가지고 온갖 설교가 양산되는 헤프닝이 일어난다. 그러나 대개의 성도는 그 설교에 대한 신학적 검증 실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에 분별이 되지 않는다.
성도들은 결국 설교 강단에서 증거되는 말씀을 받고 자신의 신앙의 정체성을 형성해 간다. 강단에서 지속적으로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에 대해 올바르게 해석하여 전달해준다면 자연히 자신의 신앙 내용을 견고하게 형성할 것이요, 만약 설교 강단이 도덕적 권면이나 세상 성공의 비결과 같은 수준에서 성경을 이용하고 있다면 성도들의 신앙은 그런 방식으로 형성될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해 생명의 양식을 먹는 대로 신앙 내용과 체질을 형성해 갈 것이다. 그래서 설교가 그렇게도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대로 한국교회 강단은 근원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 뒤에는 신학의 미숙과 신학교육의 부실이 도사리고 있다. 계시 말씀인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의 확증과 그의 위대하신 속성들, 즉 전능하심과 주권성, 신실하심과 자비성, 그리고 영원성이 제대로 증거되어야 성도들은 하나님 신앙에 대한 올바른 관점과 이해의 폭을 넓혀 갈 수 있다. 만약 설교자가 성경을 제대로 해석하는 일보다는 주관적인 경험이나 도덕적인 메시지를 주로 하게 된다면 성도의 신앙 내면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보다는 인물을 닮으려는 도덕적 동기가 형성되게 된다. 이는 신앙이 자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이 왜곡된다. 크게 보아 신앙의 정체성 혼미는 대략 크게 보아 세 가지 면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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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진리 |
캄보디아를 다녀와서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