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교육공동체 그리고 협동조합
‘모두가 꿈꾸는 그곳’은 ‘자이’가 아니라 ‘마을’이 될 수 있을까?
마을교육공동체는 학교와 지역사회를 하나의 공동체로 연결하기 위한 사업이다. 이 연결고리가 교복, 매점, 방과후학교 등과 같은 사업이며 학교협동조합이라는 결사체를 통해 운영하려는 것이다. 협동조합이라 하면 자본주의의 성장 과정에서 나타난 빈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이거나 산업변혁기 생산자들의 조합, 상인들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하지만 시대적 변천에 따라 다양한 목적의 협동조합이 탄생되었다.
학교협동조합은 공익적 성격을 가지며 교육자치의 실현을 앞당기고 학생들이 조합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 체험형 참여학습의 실현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학교협동조합은 입지 않는 교복을 협동조합에 기증하고 조합은 그것을 세탁하여 학생들에게 소액을 받고 판매한다. 그동안 고가교복에 대한 논란은 매년 지속됐다. 정부 차원에서 ‘학교주관 구매 제도’를 도입해 입찰을 통해 가격을 다운시키려 했지만 이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메이저사들의 대응으로 지역에 따라 50% 남짓 참여율에 그치고 있다. 만약 학교협동조합을 통해 기증된 교복을 세탁 및 수선을 통해 1만 원 안팎으로 판매한다면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실제 성남시의 교복 은행이나 부산 국제중·고등학교에서는 학교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으며 반응도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나아가 매점이나 학교 버스, 방과후학교 등도 이와 유사한 형태로 진행된다면 학교의 개념도 변할 것이며 서구에서처럼 교육자치실현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풀어야 할 난제가 한둘이 아니다. 우선 마을교육공동체의 지향점인 마을을 위한 인재라는 개념의 정립이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마을 인재를 ‘마을을 위한’ 인재가 아니라 ‘마을 출신’ 인재로 본다는 점에서다. 전북의 순창군에는 세금을 들여 ‘옥천 인재숙’을 운영한다. 이곳은 지역 학생들이 타지의 고등학교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세웠으며 유명 강사진을 초빙해 학생들을 집중 교육하고 있다. 실제 이곳을 통해 소위 ‘인 서울’ 대학에 합격한 비율이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광역단체들은 한술 더 떠 서울에 지역 기숙사를 앞다퉈 세웠거나 세울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지역의 인재라는 개념이 출신 성분에 착(着)해 있으며 마을교육공동체의 선순환 정점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로는 협동조합이 활성화되었을 때 고꾸라질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과거 학생들은 학교 앞 문구점에서 경제행위를 했으며 다양한 추억거리를 몇 가지쯤은 갖고 있다. 지금은 문구점 찾기가 힘들다. 학교가 학생들의 학습준비물을 갖추기 시작한 이후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가정의 경제적 부담 감소를 기치로 내건 학습준비물 구비 사업은 도매점을 대상으로 대량구매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는 수천 개의 문구점이 도산하거나 쇠락의 길로 접어든 직접적 계기였고 대형문구점의 시장지배력 강화로 나타났다.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라는 점에서 협동조합의 활성화는 영세사업자들의 이직 및 실업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만약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관점을 가졌다면 협동조합은 신자유주의의 철학적 기반에 있는 것이다. 경쟁과 효율이라는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교육과 공익으로 연결시킬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교육수장이 교체된 이후의 사업상황에 대한 우려다. 전 경기도 교육감의 상징이 혁신교육이듯이 이재정 교육감의 상징은 마을교육공동체와 학교협동조합이다. 시장이 바뀌면 전임시장 시절의 캐치프레이즈나 사업이 보류되고 축소 정리되듯이 교육계도 예외가 아니다. 교육감의 교체와 상관없이 시스템으로 정교화한다고 하더라도 시스템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시스템의 운영주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임 시절 성과를 원하는 선출직의 특성상 자발성에 근거하지 않고 학교에 실적과 성과를 요구하는 경우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마을교육공동체나 이를 운영하는 주체로서의 학교협동조합은 매력적이기는 하나 그것의 한계 또한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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