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성령의 主목적
신약성경은 성령을 많이 표현하고 있다. 구약성경에서는 성령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신약성경이 구약시대에도 성령을 통하여 말씀을 선포하고 예언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다윗이나 이사야 선지자 등에게 성령이 말씀하셨음을 제시하였다. 마태복음에서는 하나님의 성령과 아버지의 성령을 선포하고 있다. 성령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 속해 있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성령을 보내신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에게 핵심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 아버지에게도 아들이 있는가? 이 질문은 성령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성령께서 오셔서 하신 집약적인 일들은 사도행전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잘 기록되어 있다. 구약성경의 창세기부터 성령께서 온 세상을 인도하고 지배하고 있음을 선포하였다. 바로 “하나님의 영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이다. 이렇게 보면 창조부터 심판까지 성령은 결코 배제될 수 없다. 이러한 성령의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사역을 염두에 두고, 그중의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이 무엇일까? 이 문제를 생각하여 제기하는 것이 바로 이 글의 목적이다. 이것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연결하고 종합하여 확증되어야 한다. 신약성경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하는 데 있어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우선으로 증거하고 있다. 마태복음 1장부터 4장까지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은 핵심이다. 요한계시록 12장부터 마지막까지에서도 하나님의 아들을 중심으로 삼고 있지 않은가? 12장에서 아이가 출생하자마자 바로 하늘로 올리워진다. 마지막 장인 22장에서도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기록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을 강조하고 있다. 그 강조의 표현은 바로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이다. 마태복음 16장에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강조하였었다. 이제 성령의 주되고 핵심적인 목적을 두 가지로 간단히 분석한다.
1) 하나님의 아들의 오심
육신의 부자간은 핏줄로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처럼 눈에 보이거나 부자(父子)로서 생각된다면, 이것이 성경적일까? 육신의 핏줄처럼 연결되는 성령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의 아들을 연결시키고 있다. 신약성경에서 최초로 언급된 성령은 바로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다. 구약성경 전체가 오실 메시아를 언약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의 오심은 마치 특사(特使)로 이 땅에 파견되는 것과 같다. 그 특사의 임무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왔다는 진리 자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다. 이 질문에 대한 결론은 하늘에 계신 아들의 아버지이시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오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다. 이 진리를 거부하고 부정하기 위하여 처녀 잉태를 여자의 잉태로 바꾸는 것이다. 이 같은 단순한 변통으로 성령 잉태를 바꾸어 놓을 수 없다. 해마다 맞이하는 성탄절에 있어서 성령으로의 잉태가 진정으로 강조되고 증명되고 있는가? 로마서의 “생명의 성령의 법”에서 생명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다. 진정한 생명에는 성령이 있다. 성령이 빠진 존재는 생명일 수 없다. “생명의 성령”에서 “성령”은 오순절에 임한 성령과 직접적으로 관계되고 있다. 이것은 신약성경의 논리전개와 관계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분별할 필요가 있는 것은 구약성경의 창세기서부터 바로 성령을 의미하는 영(靈)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법적으로 부활의 근거가 된다는 것은 로마서 8장부터 자세히 증명해 주고 있다. 성경의 마지막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아들을 그 아들의 신부(新婦)인 교회와 하나 되게 하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2) 하나님의 아들을 증명
4복음서에서는 예수께서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이심을 논리적이며 체계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성령”이 제일 많이 나오는 사도행전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고 있음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사도행전 28장까지에서 “성령”은 1장부터 8장까지 제일 많이 나오고 있다. 21세기 빅(Big)데이터 시대를 맞이하여 시대적인 풍토와 함께 성경을 점검하고 증명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게 되었다. 바로 충분한 근거를 확보하여야 분명히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에 제일 많이 나오는 “주 예수”에서, 이 主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을 강조한 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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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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