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칼 바르트 비평적 읽기(24) 유일신론 확립, 아리우스의 부활(§ 9.1)
§ 9.1. Die Einheit in der Dreiheit에서 “하나님의 주권 개념(Begriff der Herrschaft Gottes)”에서 신성, 신격 등(die deitas oder divinitas, die göttliche οὐσία, essentia, natura oder substantia heißt.)의 모든 어휘를 하나님의 신성(Das Wesen Gottes ist die Gottheit Gottes)으로 규정했다(KD I/1., 369(GG 452, CD 349). ※ GG는 박순경 국역(國譯).
바르트는 야웨-주(Jahve-Kyrios)를 하나님의 본질(das Wesen Gottes)로 규정했다. 바르트는 예수가 주(Lord Jesus)로 고백되는 교회 신앙 고백을 인지하고 있다(KD I/1., 353/GG., 433). 그런데 바르트는 “야웨-주(Jahve-Kyrios)”를 주의 이름으로 규정했다. 참고로 YHWH(Jehovah)는 읽을 수 없는 자음문자(the Tetragrammaton)이다. 관례로 아도나이(Adonai)로 읽었고, (HaShem:이름)으로 지칭했다. 자음에 모음을 첨가해서, YaHWeH 야웨(yaw way)로 읽는 것을 합의하지만, 본래 음가(音價)인지는 분별할 수 없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본질에 인격들(Personen)이 있음을 말하는 것 같지만, 한 신성(einen Gottheit)에 구분을 인정하지 않는다. 인격들(Personen)이 복수가 아니라 하나됨(Einheit)이며 셋됨(Dreiheit)은 셋된 존재(Dreiheit des Wesens)가 아니다. 삼중일신(Dreieinigkeit Gott)는 삼중신성(dreifache Gottheit)이 아니다. 바르트는 신성의 다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바르트는 톨레도 공회의(Council of Toledo)를 도입시켜 자기 논리를 진행한다. 톨레도는 서방교회에서 동방교회와 분리시킨 필리오케(filioque, 3차, 589년)를 결정한 공회의가 열렸고, 23차에 걸쳐서 서방교회 공회의가 개최되었던 스페인의 도시이다. 바르트는 교회의 삼위일체가 삼중적이 아니라 삼일성(Trinitas: non triplex sed trina)이라고 제시했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한 신성에 삼중으로 중복되는 것이 아니라 trina를 제시한다. 박순경 교수는 trina를 삼일성으로 제안했다. 바르트는 그 문장을 신성의 내부에 구분이 없는 한 인격성(Persŏnlichkeit)으로 진행하려고 한다(KD I/1., 370(GG 454, CD 351).
우리는 바르트가 제시하는 삼중성(triplex)과 삼중반복(in dreimaliger Widerholung der eine Gott)을 쉽게 구별할 수 없다(KD I/1., 369(GG 453, CD 350). 삼중성은 셋에 동일한 가치이고, 삼중반복은 한 위격에 관계하는 것이다. 바르트는 아버지, 아들, 영(박순경 Spirit의 번역)의 이름이 반복에서 한 신성이어서 신성 간의 어떤 교제가 없는 한 신성의 한 하나님을 제시했다. 우리는 바르트가 한 신성, 한 하나님(eine Gottheit, eine Gott)을 주장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바르트는 신성(deitatem)는 구별할 수 없고, 인격(persona)나 구별된다는 톨레도 공회의의 문장으로 구별되는 인격으로 인격성을 제시한다. 단일 신성에 셋이 영원에서 영원한 반복(eine repetito aeternitatis in aeternitate, Anselm)을 하는 것으로 제시했다. 반복에서 세 인격이 유일성의 진리를 갖는다(die Wahreheit der numerischen Einheit des Wesens der drei Personen). 바르트는 이 부분에서 삼위일체론(Trinitätslehre)가 삼중화된 것으로 규정하고, 단순성(Einfachheit, simplicity)을 가진 하나님의 인격성을 제언했다(KD I/1., 370(GG 454, CD 350).
그리고 바르트는 동일실체(ὁμοτιμία, consubstantialitas)를 인격성의 동일본질성으로 제시했다. 바르트는 앞에서 신성과 신격을 통합했고, 여기에서는 실체와 본성을 통합시킨다. 호모우시온((Homoousion)은 박형룡 박사는 동일실체로 번역해서, 믿음의 대상으로 명료하게 제시했다. 바르는 동일실체는 Wesensgleichheit로 제시했고, Wesenidentität로 연결하여 동일화 시켰다. 영역(英譯)에서는 essence와 substance을 동등화시켰다. 그리고 영역에서 바르트에게 substance 개념이 있는 것처럼 번역했는데 부당한 번역이다. substance는 ousia와 동일하다. 바르트는 실체(實體, ousia)와 본질(essentia)을 통합시키고 있다.
바르트는 삼위일체론에 있는 세 인격성(in Gott drei Persŏnlichkeiten)이 삼신론의 날카롭고 나쁜 표현(der schärfste und schlimmste Ausdruck des Tritheismus)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정통신학의 핵심용어인 동일실체(ὁμοτιμία, consubstantialitas)를 “인격들의 본질성”(die Wesensgleichheit der Personen)으로 전환시켰다. 바르트는 삼위일체론이 기독교 유일신론으로 정당하게 자리잡았음을 제시하며 오류를 확정했다. 그렇다면 오류에 의해서 판정되었던 과거의 이단은 오히려 해소되는 결과가 될 것이다. 과거에 이단이었던 반-삼위일체 주장이 바르트에게서는 타당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바르트가 삼위일체론의 관심과 유일신론적인 관심으로 제시한다고 박순경은 역주(譯註)를 제시했다(GG 455). 바르트는 반삼위일체론이 계시를 부정하지 않았고, 조잡하거나 섬세한 계시의 우상화로 규정했다(Antitrinitarismus heißt, sofern er nicht Leugnung der Offenbarung ist, in jeder Form eine gröbere oder feinere Vergötzung der Offenbarung, KD I/1., 372). 그리고 대표적인 반삼위일체론자인 아리우스를 설명했다. 바르트는 아리우스가 예수를 시간 안에 존재했던 참 하나님으로 제시했다(CD 1/IV., 48-54). 1/I에서는 아리우스의 문장을 그대로 제시하며, 인정과 부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아리우스가 사모사타 바울의 양자론적 단독군주론이나 사벨리안이 아니라는 것은 제시했다. 우리는 바르트를 아리우스를 미숙한 상태의 긍정적인 계시 이해자로 평가하는 것으로 평가한다(KD 1/I., 373, GG 457. CD., 353). 바르트가 정통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하는 패턴이다. 바르트는 유일신론을 강조하며, 삼위일체론은 삼신론적 개념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음의 대상인 실체 개념에서 본질 개념으로 전환시켰다.
바르트는 계시 신앙을 정립하는데, 그리스도와 영을 한 위격에 종속된 개념이 아닌 술어와 대상(Prädikat und Objekt, des Begriffs Offenbarung,, Offenbarsein)으로 제시했다. 계시와 계시됨은 계시자와 동일하다고 제시했다. 그리고 한 하나님 계시자이기 때문에, 계시와 계시됨은 어떤 신적 공간을 가질 수 없다고 규정한다. 바르트는 아버지를 계시자로 보았고, 아들와 영은 동일한 신적 공간이 없는 것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예수를 피조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리우스가 위험한 전체를 만든 것은 예수를 피조물과 다르게 아버지께 매우 가깝게 주장한 것(가장 영광스러운 피조물로 평가함, 없을 때가 있는 영원에서 출생함)으로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아버지와 그리스도와 영이 유일신론에 본질동일성에서 모든 피조물과 동일하게 소통한다(Mit dem Monotheismus verträgt aich nur die Wesensgleichheit des Christus und des Geistes mit dem Vater)(KD 1/I., 373, GG 457. CD., 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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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고경태 목사 (주님의교회 / 형람서원) 이메일 : ktyhbg@hanmail.net |
의미심장한 66권의 위치 |
여호와부터 주 예수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