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24-06-11 15:1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주 안의 근거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는 자주 부르는 찬송가다. 이 찬송가를 근성으로 부르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이것은 신(神)의 존재와 직결되고 있다. 인간 자기의 존재가 주 여호와 하나님의 안에 있다고 노래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통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여 증명하고 있다. ‘주(Lord) 예수’에서 ‘주’는 주 여호와에서 그대로 이어져 왔다. 제목에서의 주는 주 여호와뿐만 아니라 주 예수를 의미한다. 기본적으로 성경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분명히 밝혀준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바탕을 두면서 간단히 분석하고 종합해보고자 한다.


1) 구약성경에서의 시편 중심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을 생령(生靈)으로 창조하셨다. 이 산 영의 근거는 성령이다. 성령의 존재가 아니면 살아있는 영혼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육신을 입고서 이 땅에 오셨다. 신약성경은 시편을 인용하여 다윗을 감싸고 있었던 성령을 증명하고 있다. 시편은 150편으로 논리적이며 체계적으로 주 여호와를 찬양하고 있다. 이 찬양을 하는 성도들의 근본적인 바탕이 바로 성령이다. 성령이 증명되지 않으면 성도들의 영혼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에서 영혼이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구약성경의 현세적인 성질과 무관하지 않다. 구약성경에서의 영혼은 그 절반 이상이 시편에 나오고 있다. 사람의 기본 요소는 영과 육이다. 영과 육이 함께 있음으로 영혼으로 찬양한다. 이 땅에 머무는 것 자체가 영과 육이 함께 있는 상태다. 인간에게 영혼이 있기 때문에 사고하는 활동과 정신적인 기능이 있게 된다. 시편에서 많이 나오는 영혼은 대부분 기도하거나 찬양할 때 사용된 것이다. 영혼을 소생시키는 여호와의 율법을 찬양한 내용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내용이다(시 19:7). 시편의 논리도 욥기와 닮은 점이 없지 않다. 그것들에서, 욥기는 여호와의 전능성을 중심으로 찬양한 것이고, 시편은 여호와의 성실성을 중심으로 찬양하고 있다. 이 두 속성은 서로 간에 깊은 관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주권성과 영원성 그리고 자비성과도 연결되어 있다. 욥기는 시작되면서 여호와 앞에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주(主) 안을 설명하고 증명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기나긴 시편의 여정을 시작하면서, 하늘에 계신 주께서 여호와의 아들을 낳았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으로 사도행전과 히브리서는 하나님의 아들을 증명한다. 히브리서는 특히 1장과 5장에서 인용하여 강조하고 있다. 시편 제1편에서 2편까지는 천상에서 세우신 여호와의 언약을 찬양한 것이다.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의 아버지 여호와께서 작정하신 뜻은 다윗을 통해 결국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를 그리스도로서 이 땅에 보내시는 것이다. 그것은 복이고 유업이기 때문에 반드시 형통한다. 이러한 언약에 기초하여 간구로써 찬양한 것이 제3편에서 89편까지이다. 이 긴 내용이 천상의 뜻인 제1편과 제2편에 근거하여 기도의 형식으로 찬양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감탄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시편 제90편부터 제150편까지는 천상의 뜻에 근거하여 기도한 것을 성취해 주심에 대해 찬양한 시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여호와 통치와 권능을 찬양한 것이다. 이 내용들은 앞의 제3편에서 89편까지의 내용에 철저하게 연결되어 펼쳐지고 있다. 여호와의 통치는 철저히 천상의 뜻인 영원한 작정에 기초하여 된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권능은 영원한 생명을 지니시고 죽음을 이기시는 것이며 동시에 세우신 언약을 반드시 이루시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근거하여 시편은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로 마무리하고 있다.


2) 신약성경에서의 고린도서 중심

고린도서까지 가기 전에, 사도행전의 힘을 빠뜨릴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을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다는 점이다. 고린도서는 성도들을 주의 성전으로 강조하고 있다. 성전에서 하나님의 성령은 제일 중요하며 핵심이다. 그 성령의 거룩함이 성도들을 감싸기 때문이다. 고린도서는 성도들이 주 안에 있음을 몸을 들어 증명하고 있다. 욥이 찬송한 것처럼, 백체(百體)가 주 예수 안에 있다고 고린도서는 힘주어 힘차게 증명하고 있다. 주 안에 있음을 부활을 통하여 온전히 증명하고 있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중어중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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