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칼 바르트 신학 비평사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는 20세기 최고의 신학자이다. 바르트가 받는 최고란 칭호는 가장 큰 영향력을 의미하는 것이며, 신학 내용의 정통성과 바름(sound)을 의미하지 않는다. 바르트가 최고의 신학자이기 때문에 너무나 많은 추종자들이 있다. 그럼에도 소수의 연구자들은 바르트의 신학을 거부하며 비평했다.
칼 바르트 신학의 대표적 추앙자는 네덜란드의 베르까우어(G. C. Berkouwer, 1903-1996)이다. 베르까우어는 초기에는 정통개혁신학을 견지하다가, 후기에 The Triumph of Grace in the theology of Karl Barth(1956년)를 집필하면서, 바르트에게 높게 평가된 인물 중 하나이다. 칼 바르트는 194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형성된 WCC의 주도적인 지도자였다. 베르까우어는 네덜란드 개혁파(카이퍼 계열) 자유대학 신학부 교수였는데, 그의 바르트주의 선언으로 자유대학은 바르트주의의 신학이 되었다. 바르트에게 공부한 헨드리쿠스 베르코프(Hendrikus Berkhof, 1914–1995)는 레이덴 대학(University of Leiden)의 교수였다. 1575년, 네덜란드 독립 전쟁에서 독립을 쟁취한 레이덴은 기념으로 대학을 설립했다. 베르까우어의 후임교수인 베인호프(Jan Veenhof, 1934-2024, 10월 26일 90세)는 바르트가 바젤에서 강연에 참여한 마지막 바르트 강연의 참여자이기도 했다.
서철원의 박사논문 The Creation-Mediatiorship of Jesus Christ(1982)의 지도교수(Promotor)는 베인호프(J. Veenhof)이고, 보조교수(Coreferent)는 헨드리쿠스 베르코프(Hendrikus Berkhof)였다. H. 베르코프는 바르트 직계제자이고, 베인호프는 바르트의 마지막 강연 참여자로서 발티안이다. 그리고 네덜란드 개혁파의 대표적 신학자로서 바르트의 신학을 채용한 베르까우어가 서철원의 논문 작성에 참여했다.
칼 바르트 신학에 가장 강력한 저항자, 변호자는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코넬리우스 반틸(Cornelius Van Til, 1895–1987) 박사이다. 베르까우어와 반틸 박사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서철원의 바르트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 대해서 베르까우어는 반틸의 견해 범주화시켜 격노했다고 한다. 웨스트민스터신학교는 메이천(John Gresham Machen, 1881-1937) 박사의 주도로 설립되었다.
한국에서는 죽산 박형룡(竹山 朴亨龍, 1897-1978) 박사가 칼 바르트 신학을 명확하게 변호하여 막았다. 그리고 정암 박윤선(正岩 朴允善, 1905-1988) 박사가 칼 바르트 신학을 변호했다. 박윤선 박사는 1984년 80세의 나이에 <로마서 강의>에서 칼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을 비평했다.
박형룡은 프린스턴 유학에서 메이천 박사에게 현대신학에 대한 위험성을 익혔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신학교로 분리되었을 때에 박윤선을 웨스트민스터신학교로 보냈다. 메이천 박사와 반틸 박사의 흐름에 있는 신학 사유 체계는 칼 바르트 신학에 대해 엄격한 저항, 변호 의식을 갖는다. 서철원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박형룡 교수에게 익혔고,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반틸 박사에게 익혔다. 그리고 자유대학에서 발티안 교수들 아래서 “바르트의 신학에 삼위일체가 없음”을 각주에 넣은 논문을 통과시켰다.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반틸 박사 이후로 현대신학, 칼 바르트 신학에 대한 비평적 변호 학문은 나타나지 않는다. 총신대학교는 서철원 박사 이후로 칼 바르트 신학에 대한 비평적 변호 학풍은 급속하게 약화되고 있다. 칼 바르트 신학에 대한 비평은 이름 없는 유튜버들의 방구석 배틀로 들어가야 할까?
발티안 교수들은 바르트에 대한 비평적 주장이 터무니없다고 반박했다. 이신건 교수가 유튜브로 방영했고, 김명용 교수는 “바르트를 매도한 반틸은 엎드려 빌어야 할 것”(2009. 2. 23)이라고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두 연구자의 공통점은 바르트에게 “부활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확인한 것에서는 바르트는 “부활의 게쉬히테(Geshichite)”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바르트에게 부활이 있다면, 바르트에게 삼위일체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진리의 필연성이다. 바르트에게 삼위일체가 없으면, 성육신, 부활, 죄 사함, 영생 등이 없다. 죄 사함과 영생은 분별이 쉽지 않지만, 삼위일체, 성육신, 부활은 상대적으로 용이하게 분별할 수 있다. 필자는 바르트에게 성육신이 정통신학과 같지 않음을 제시했다.(고경태, <칼 바르트 비평적 읽기 I/2, §. 15, 칼 바르트의 성육신은 정통신학과 다르다>, 우리시대, 2022.) 그리고 이신건의 바르트에게 부활이 있다는 유튜브 내용에 대한 글을 형람서원 네이버블로그에 분석해서 게재했다(칼 바르트에게 부활이 있는가?, https://blog.naver.com/lucalcollge/223673848594).
칼 바르트 신학에 대한 비평적 평가를 한 위인은 미국의 반틸 박사와 한국의 박형룡 박사가 있다. 그리고 서철원 박사가 박형룡과 반틸 박사에게 배움을 갖고 더욱 과감하게 바르트 전체 체계가 정통신학의 내용과 대조를 이룸을 밝혔다(“발트 신학의 문제점”, <신학지남>, 258호, 1999년).
칼 바르트의 신학을 비평하는 몫이 한국 교회에 부과된 것 같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칼 바르트 신학을 분석하지만 비평적으로 분석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서철원 박사 계열, 박용기 목사 계열에서 칼 바르트 신학에 대해서 변호하려는 의지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반틸 박사의 직계 후예를 주장하는 계열에서 칼 바르트 신학을 비평하고 있다.
칼 바르트의 신학을 비평하는 것을 수립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시대에 모든 신학의 근저에 칼 바르트의 신학이 있기 때문이다. 칼 바르트가 삼위일체를 거부하면서 체계화시킨 신 체계는 일신론적 체계이다. 칼 바르트의 신관을 유니테리언적 신관이라고 분류하지는 않지만, 삼위일체를 거부하면 자연스럽게 유니테리언적 신관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대신학자인 칼 바르트는 좀 더 과격하게 신존재가 아닌 신의 행동으로 전환시켜 현대화시켰다. 많은 발티안들은 칼 바르트가 자유주의에 폭탄을 폭파해서 자유주의에서 교회를 구출했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바르트가 자유주의 신학을 싫어한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하르낙과 논쟁, 브루너와 논쟁이 배격한 것이 아니다. 바르트의 신학을 정통주의라고 말하지 않고, 신정통주의라고 한다. 박형룡 박사는 신정통주의는 정통주의가 아닌, 비정통주의 혹은 신현대주의(New Modernism)라고 개념화했다고 한다. 고경태는 박사논문에서 칼 바르트가 반(反) 정통주의 경향이 있다고 결론했다. 자유주의와 칼 바르트의 신학은 같지 않다. 바르트의 신학의 특징은 비약, 도약이 강한 것이다. 자유주의가 하지 못한 합리적 논리성의 범주를 깨버리는 ‘도약’이 나타난 것이다. 바르트는 자유주의자가 아닌 자유주의보다 더 과격하게 교회에 돌격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칼 바르트의 신학 내용으로 교회를 세우려는 태도가 문제이다. 바르트는 교회를 세우려는 의도가 없기 때문에 바르트의 신학 내용으로 교회를 세울 수 없다. 교회를 세우려는 신학자는 반드시 바르트의 신학을 배격해야 한다. 복음을 전도하려는 전도자는 반드시 바르트의 신학을 배격해야 한다. 바르트를 품고 교회를 세우거나 복음을 전도할 수 없다. 그 원리는 너무나 간단하다. 인간의 행동은 반드시 사상을 근거로 한다. 복음, 정통신학을 연마하지 않으면, 바르트의 사상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맞을 것이다. 깨어서 바르트의 신학 잔재를 제거하고 영생 복음으로 새롭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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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고경태 목사 (주님의교회 / 형람서원) 이메일 : ktyhbg@hanmail.net |
교회 기능은 신학이 아닌 복음이다 |
§1은 “교의학의 과제”이다 (§1 Die Aufgabe der Dogmati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