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제1권 제14장 하나님과 거짓 신(神)의 구별
칼빈은 하나님의 참되심을 거짓 신들과 구별하기 위해서 세상과 인간창조, 천사창조, 하나님께 종속된 마귀창조를 통한 영적 교훈 등의 신학사상을 정립하여 논증한다. 특히 천사에 대한 주장은 당시의 천사숭배자들을 의식하면서 강경한 어조로 많은 분량을 통해서 반박했다.
첫 번째, 칼빈은 세상과 인간의 창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위하여 해와 별들이 운행하도록 하셨고, 땅과 물과 공중에 온갖 생물들로 가득 채우셨고, 풍성한 실과들을 나게 하셔서 식물로 삼기에 충족하게 하심으로써, 모든 것을 베풀기 위해 부지런히 일하는 가족의 가장의 역할을 수행하사, 우리를 향하신 그의 놀라운 선하심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칼빈의 주장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책임을 가장(家長)에 비유하여 설명한 것이다. 이것에 대한 칼빈의 견해는 하나님의 자기계시를 목적으로 한 근본적인 의도보다는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에 관심을 둔 것 같다. 그리고 연이어 하나님의 본질을 깨닫게 하신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모세는 창조 기사에서 하나님의 본질에 대해서 말씀할 뿐 아니라 그의 영원하신 지혜와 영에 대해서도 제시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처럼 분명한 형상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깨닫도록 해 주신 그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꿈꾸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 그것이다.
칼빈의 주장은 계시된 하나님의 형상을 인간이 인지했다면 우상숭배를 자행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칼빈의 주장은 부분적으로는 타당하지만 근본적인 하나님의 창조 의도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신학적인 의미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 의도는 당신의 작정계획을 성취함으로써 영원하신 하나님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만물을 먼저 창조하시고 그 다음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단순히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에게 언약을 세우기 위한 분명한 목적에서다. 하나님의 창조과정을 보면, 6일 동안 하늘과 땅, 물, 궁창, 육지, 천체, 생물, 짐승 등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에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으며, 그 후에 언약을 세우셨다. 이상과 같은 창조의 순서는, 사랑의 표현으로 이해하기보다 ‘하나님의 언약’에 초점을 맞춰 언약의 준비과정으로 인지하는 것이 계시적 관점에서 볼 때 더 타당하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원리가 언약과 성취에 있으며, 구약성경은 메시야 보내실 것에 대한 언약이고, 신약성경은 메시야가 오신 것에 대한 성취내용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창조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언약을 세우기 위한 준비과정임이 확실하며, 하나님의 전능성을 통한 여호와이심을 계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칼빈은 천사들의 창조와 기능에 대해서 “천사들은 하나님의 시종들로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도록 정해진 존재들이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천사들이 창조된 시간이나 순서에 대해서 논란을 제기한다는 것은 부지런함보다는 오히려 완악함의 증거일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천사들의 임무는 “천사들은 우리를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마귀와 우리의 모든 원수들을 대항하여 싸우며, 우리를 해치는 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보응을 시행하는 것이다.” 또한 천사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영물이며, 하나님께서 선하고 악한 일에 사용하시는 도구에 불과한 것임을 주장한다. 칼빈은 당시 천사숭배자들과 마니교들의 이원론 사상을 논파하기 위하여 천사론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칼빈의 주장대로 천사에 대해서 과도한 상상이나 경험을 추구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천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영물(靈物)이며, 사역의 주체가 아니라 도구이며, 선한 천사와 악한 천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세 번째, 하나님의 위엄 아래 있는 마귀에 대해서 칼빈은 “하나님은 선한 것들의 기원이시오, 악한 본질들은 마귀에게 기원이 있다”는 마니교도들의 이원론을 “정통신앙은 온 우주 내에 본성적인 악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과 마귀의 부패와 악의(惡意), 혹은 그것들로부터 나오는 갖가지 죄악들은 본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고, 본성의 부패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론으로 논박한다. 그리고 마귀의 출처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존재임을 다음과 같이 명백히 밝힌다.
마귀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존재이므로, 우리는 그의 본성에 속하는 그의 악독함은 창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의 부패에서 비롯된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에게 있는 정죄 받을 것들이 무엇이든 그것은 모두 그의 반역과 타락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마귀의 현재의 상태가 하나님께 기인하는 것으로 믿고서 실상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을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는 일이 없도록 우리를 경계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귀도 천사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권능 아래서 활동하며, 실질적인 존재임을 밝힌다.
이상과 같은 칼빈의 주장은 하나님과 마귀의 관계를 피조물이자 종속적 위치에 있음을 설명함으로써 마니교의 이원론을 논파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하지만 칼빈의 주장에서 고려해 보아야 할 부분은 마귀의 기원을 타락한 천사로 규정한 점이다. 물론 하나님을 선(善)의 기원으로 마귀를 악(惡)의 기원으로 설정하는 마니교도들의 이원론 사상은 비성경적이다. 이 말은 하나님과 마귀 그리고 선과 악을 대립적인 구도로 이해하려는 것이며 하나님과 마귀를 비등한 권세의 보유자로 인정함으로써 하나님의 절대주권능력을 약화시키는 상대적인 이원론의 전형이다. 그렇다고 해서 칼빈의 주장처럼 마귀의 기원을 타락한 천사로 규정한다는 것은 성경적인 근거가 빈약해 보인다. 성경에는 마귀의 기원에 대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라는 말에 근거하듯이 하나님의 창조에 의한 피조물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뱀은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라고 증거한다. 즉, 창조시 뱀에 대한 설명은 사도요한이 계시록에서 ‘옛 뱀’이며 ‘마귀’요 ‘사단’으로 설명한다.
이에 대해 칼빈은 사단이 하나님의 창조에 의한 피조물인 것은 인정하지만 “본성에 속하는 그의 악독함은 창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의 부패에서 비롯된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래서 사단의 기원을 ‘타락한 천사’로 규정하는 것이다. 칼빈의 논조는 사단의 본성을 악성으로 규정하고, 그 악성은 부패 즉 타락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선악에 대한 개념이다. 보편적으로 선악의 의미를 윤리도덕적인 관점에서 규정한다. 그리고 악(惡)을 사단의 실체로 단정하여, 사단을 악의 주관자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선악은 좋고 나쁘다는 가치평가의 결과이므로 악(惡) 역시 실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가치평가의 결과이다. 만약 악이 실체이거나, 악 자체가 사단이라면 마니교의 주장과 같이 결국에는 이원론으로 발전하게 된다. 악의 실체가 사단이라면, 선의 실체는 무엇인가, 만약 선의 실체가 하나님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선과 악이 상대적으로 대립되는 이원론적 구조가 아니겠는가. 선(善)은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가치평가이며, 악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가치평가이다.
이에 대해 박용기 목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절대이성적 판단에 따라 하나님의 입장에서 ‘좋으심’을 ‘선’이라 하고 ‘싫으심’을 ‘악’이라는 의미로 정의한다.” 물론 사단의 속성에는 사악성(邪惡性)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사단을 악한 날에 악하게 쓰시기에 적당하게 사악한 속성을 가진 존재로 지으셨다.”라는 의미이다. 뿐만 아니라 사단의 속성에는 피조성과 종속성이 있는데 박용기 목사는 “사단의 속성 중에 하나인 피조성은 사단의 기원과 관련이 되는 속성이다. ……하나님은 절대 선(善)의 소유자로서 상대적인 선과 악의 세력을 창조하시고 이들 세력을 기쁘신 뜻대로 주관하심으로 스스로의 영광을 선포하시 것이다.”라는 말로써 사단의 피조성을 주장한다. 그리고 종속성은 “사단의 격위(格位)와 관련이 있는 속성이다. 사단은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한 세력의 두목이다. 그러므로 사단은 하나님의 명령 없이는 어떠한 일을 해서는 안 되며 할 수도 없는 존재”라는 의미로 규정한다. 이와 같이 사단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격위는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종속되어 있으며, 성품은 사악성을 갖고 있으며 합력해 선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악한 일에 사역하는 도구로서 활동하는 존재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타락한 천사가 사단이라는 칼빈의 주장은 비성경적이다. 성경은 도리어 타락한 천사를 가두어 두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즉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그리고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라는 말로써 뒷받침한다. 또한 아브라함 카이퍼는 “하나님은 사단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보다 우월하고 탁월한 피조물로 만드셨다”고 주장한다.
네 번째, 창조를 통한 하나님의 솜씨에 대해서 칼빈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모든 일을 우리의 유익과 구원을 위하여 정해 놓으셨음을 깨닫는 것이요, 동시에 우리 자신에게는 물론 그가 우리에게 베푸신 큰 자비하신 일들에게서 그의 권능과 은혜를 느끼고, 그리하여 스스로 각성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에게 간구하고, 그를 찬송하며 사랑하는 것
이 말은 창조를 통해서 하나님이 예정하신 구원사역을 깨달아 신뢰하고 찬송하며 사랑해야 함을 촉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좋은 것들의 충만함을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기대하고,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것을 그가 부족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임을 완전하게 신뢰하며, 그리하여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만 우리의 소망을 두어야 할 것이다.”라는 말로써 성도의 소망은 오직 구속주 하나님께 있음을 천명한다. 칼빈은 창조와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결부시켜 하나님께 소망과 찬양을 드릴 것을 주창한다. 이것은 창조와 타락 그리고 구속이라는 구속사신학의 전형적인 패턴으로서 하나님의 사역의 핵심이 그리스도를 통한 인간의 구원에만 치우치게 한다. 이러한 신학적인 접근은 하나님의 사역의 본질을 한 부분에만 국한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창조에 나타난 계시적 관점의 신학적 의미를 재정립해야 한다.
창조의 정의는 하나님의 뜻에 기초하여 권한을 가지고 선택하는 절대주권능력의 표현이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시공형을 통해서 계시하는 작정계획의 출발이다. 일반적으로 창조의 성격을 아무것도 없는 공백상태에서 출발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만물이 주에게서 나왔듯이(롬 11:36), 영원한 것을 시공형(時空形)으로 계시하신 것이다. 만약 무(無)에서의 창조라면, 유한(有限)한 시간세계로부터 시작된 피조물은 결코 시간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으며 영원히 존재할 수 없게 된다. 기독교의 핵심은 ‘영원’에 있는데, 영원은 유한한 것이 영원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라야 영원히 존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창조는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이라는 말과 같이, 영원한 것이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통해서 시공형의 현상으로 계시되었다가 다시 영원한 것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영원한 것을 시공형의 현상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창조의 목적이 무엇인가, 대부분의 학자들은 창조가 인간의 구원이나 행복을 위해서 조성된 인간학적 측면에서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창조의 목적은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데 있으며, 인간 편에서는 선포된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하고,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는 데 있다. 따라서 창조의 목적은 하나님의 자기계시에 있으며, 계시된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하고 찬양하는 인간에게는 행복이 수반되는 것이다.
칼빈 신학의 핵심은 하나님의 영광중심 사상으로 로마 카톨릭주의자들의 교황숭배사상에 대해 철저한 반격이다. 그래서 칼빈은 우상숭배와 형상화 작업 그리고 교황의 절대권위에 반(反)하여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그 영광을 찬송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당시 교황중심의 인본주의적이며 이성적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사상이 만연된 상황에서 칼빈의 하나님 영광중심의 신학은 종교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개혁운동에 기름을 붓는 도화선이 되었다. 이와 같은 칼빈의 신학적 업적에 대한 평가는 역대 여느 신학자보다 탁월하다. 그러나 칼빈의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영광중심의 신학사상은 조금 더 발전시켜 체계화 했으면 한다. 즉, 하나님의 계시중심의 관점에서 심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예정에 기초한 인간의 구원사는 그리스도 중심의 계시 방법에 해당된다. 그 계시의 원리와 내용을 보완한다면 개혁신학의 완벽한 패러다임을 구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동안의 신학작업은 인간의 구원에만 초점을 맞추어 구속사 중심의 도그마에 예속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20세기부터는 ‘성경신학’이라는 주제로 ‘하나님의 나라’와 ‘언약’을 중심으로 한 신학 작업이 활성화되었다. 이 연구는 칼빈의 구속사신학을 시발점으로 개진되어, 오늘에 이르러서는 총체적인 완성을 보게 되었다.
계시의 원리는 구약을 언약으로 신약을 성취의 구도로 포괄하는 언약성취사적 성경해석을 모토(motto)로 한다. 언약성취사는 계시의 원리이며 성경해석의 근본조건이다. 그리고 언약과 성취에 의한 계시 내용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세우신 삼대언약을 기초로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나라와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교회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계시의 방법에 속한 구속사는 계시의 원리에 연계되어 구약은 하나님께서 메시아 보내실 것을 언약하신 것이고, 신약은 메시야를 보내심으로 성취하신 것이다. 따라서 성경신학적인 관점에서 정리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계시하기 위해서 언약과 성취의 원리를 사용하셨고, 계시 방법으로는 메시야에 대한 언약과 성취를 통해서 증거되고, 계시 내용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통해서 전개된다. 칼빈이 메시아 중심의 구속사신학을 완성했다면, 성경신학은 언약성취사의 기초위에 ‘구속사’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포괄하는 총체적인 신학의 결정체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성경신학의 관점에서만 하나님 중심의 계시신학이 더욱 완벽한 하나님 영광 중심의 체계로 자리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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