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기독교 신앙의 원형
3. 신학적 치유의 방향
2) 성경적 신학정립에 의한 신앙의 정체성 확인
(1) 언약성취사적 성경신학의 확립
기독교 신앙은 “무조건 믿는 것이다.” 혹은 “모르기 때문에 신앙이 필요하다.” 이런 근거없는 낭설들이 신앙인들의 사고방식 안에 심지어 신앙 지도자들이나 신학이론 속에도 널리 유포되어 있다. 이는 유명한 교부신학자 어거스틴과 중세신학자 안셈의 유명한 발언, 즉 “알기 위하여 믿는다”(Credo ut intelligam)에 담겨있다. 이 말은 우리가 모르기 때문에 믿는 것이며, 믿으면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신자가 신앙의 내용을 알고 믿는 것이 아니라 가톨릭 교회가 교리를 가르치면 그 의미를 모르고도 순종하고 믿어야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것이야 말로 맹목적 신앙을 주입하는 중세 교회의 신학적 폭거였다.
이를 칼빈을 위시한 개혁신학자들은 맹렬히 비판하면서 성경의 계시 내용을 알아야 믿음이 생겨난다는 건전한 주장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대 개혁신학자들은 중요한 신학적 난제를 만나게 되면 다시 어거스틴의 명제를 들고 나와 문제를 도피해 왔다. 예컨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 문제, 혹은 삼위일체의 문제 혹은 죄의 기원 문제 등과 같은 난제들은 우리가 잘 모르기 때문에 무조건 믿어야 한다고 주장해온 것이다.
이런 주장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을 왜곡할 뿐 아니라 진정한 신학 연구와 성찰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걸림돌이다. 과연 기독교 신앙이 무조건 혹은 모르기 때문에 믿는 맹목적인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당신을 알아 믿고 경외하게 하시려고 역사 가운데 당신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셨고 그 모든 계시 사역들을 성경이라는 진리의 저장소에 체계적으로 담아 주셨다. 그리고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조명아래 이해되고 납득되는 방식으로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그 과정에 이성은 중생한 이성으로서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아 가는 도구로 사용된다. 결국 기독교 신앙의 원형을 찾는 길은 이 성경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싸움에 달린 것이다.
신학함에 있어서 성경의 절대적 중요성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 그것은 인생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범주를 훨씬 뛰어넘는 계시적 진리체계이다. 아니 그것은 인간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의 진리이다. 그래서 그 진리는 인간이 생각해 내거나 고안해 낼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기소개를 위한 계시의 말씀이되 그것은 하나님의 치밀하신 계획 아래 역사 가운데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고 편집되며 완벽한 형태를 지니고 오늘날 우리들의 손에까지 전승되었다.
위에서 확인한 대로 서구 교회의 몰락은 18세기 계몽주의 이후 성경의 계시성과 위대성을 부정하면서 이루어졌다. 즉 성경의 진리를 인간적 이성의 검증, 혹은 과학적 잣대 아래 두고 마음대로 재단한 인간의 어리석은 도전과 불장난의 결과이다. 그것은 인간 이성의 오만이었다. 인간 이성의 화신이라고 간주하는 과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창조와 섭리 가운데 지극히 작은 일부분을 탐구해 가고 있는 과정이다. 과학의 의미도 날로 바뀌고 있다. 현대과학의 잣대로 성경을 판단하려는 것은 작은 30센티미터의 자를 가지고 에베레스트 산을 재려고 시도하는 격이다. 오히려 과학이야말로 성경의 진리에 의해 그 의미와 가치가 부여될 수 있다.
성경은 인간의 세속적 행복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성경은 목회를 위한 수단 역시 아니다. 성경이 사회정의를 위한 지침서는 더더욱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시되 그 의미와 해석이 인간적 혹은 세속적 관점으로 접근될 수 없는 신령한 책이다. 그것은 그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원저자이신 성령 하나님의 조명과 역사에 의해서만 정당하게 이해될 수 있다. 성경은 정당하게 해석되어야 하는 책이다. 이 점에서 성경은 모든 자에게 열려있는 책이 아니다. 성령의 주권적인 사역에 의하여 열어주셔야 성경의 객관적인 의미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올바른 성경 해석의 열매는 전적으로 성령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다.
신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단 마디로 말해 신학은 성경에서 증거하는 하나님을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해석해 주는 작업이다. 이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강단 설교는 설교자 나름의 주관적 경험이 점차 지배할 것이요, 세속적인 관점이 침투하게 될 것이며 그 결과 신학적 빈곤과 혼란을 노출할 것이다. 그런 설교를 매주 듣고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는 말씀에 허기를 느끼게 된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 여호와에 대한 믿음의 내용을 성경 어디를 통해서도 치밀하게 증거해 가는 순도 높고 일관된 신학적 진리를 깨닫는 경험을 하기 어렵다. 여기서 신앙 내용의 정체성 혼미가 생겨나는 것이다. 한국교회 신앙의 정체성, 즉 무엇을 신앙의 내용으로 삼을 것인가의 빈곤과 혼란은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해 주어야 하는 신학적 작업의 난맥상에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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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규욱 목사 (장안중앙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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