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세례란 무엇인가1
세례의 어의(語義)
새국어사전을 보면 ‘세례’란 기독교에서 신자가 될 때에 베푸는 의식이라고 전제하면서, 종파에 따라 머리 위를 물로 적시기도 하고, 머리에 물을 붓기도 하며, 몸을 물에 잠그기도 한다고 했다.
그리고 기독교 대백과사전에서는 ‘세례’란 종교적인 정화(淨化)의 상징으로서 물을 사용하는 의식이라고 전제하고, 신약성경에 있어서 ‘세례’라는 용어는 주로 세례 요한에 의하여 수행된 의식과 오순절 이후로 기독교공동체에 가입하는 정규적인 방편이 되었던 기독교 의식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었다고 했다. 이러한 사전적 정의들은 ‘세례’에 대한 본질적인 정의가 아니라 단순한 형식적인 정의에 불과한 것이다.
‘세례’라는 말에 대한 본질적인 뜻을 알아보기 위해, 먼저 신약 성경에서 사용된 헬라어 원문의 뜻을 알아보기로 한다. ‘세례’라는 말은 헬라어 원문으로 ‘밥티스마’라고 하는데 이는 ‘물에 가라 앉히다’ 그리고 ‘물에 잠그다’ 혹은 ‘물에 적시다’ 그리고 ‘착색하다’라는 뜻을 지닌 ‘밥토’의 반복형인 ‘밥티조’에 관련된 용어로써, 가끔 ‘밥티스모스’로 쓰이기도 한다.
특히 ‘밥티조’는 물로 ‘휩쓸다’-완전히 ‘젖게 하다’-그리고 ‘세례를 베풀다’ 혹은 ‘씻다’는 뜻을 지닌 단어이다. 이와같이 ‘세례’라는 말은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침례파에서는 개혁파 교회들이 ‘밥티스마’라는 단어를 물로 ‘씻다’라는 뜻이 강조된 ‘세례(洗禮)’라는 말로 번역한 것을 배격하고, 물에 ‘잠그다’라는 뜻이 강조된 ‘침례’라는 말로 번역할 것을 고집한다. 그러나 ‘밥티스마’라는 단어에는 물에 ‘잠그다’라는 뜻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물로 ‘씻다’라는 뜻도 있다. 뿐만아니라 물에 ‘적시다’ 혹은 ‘착색하다’ 곧 물감을 적셔 물들게 한다는 뜻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뜻을 지닌 ‘밥티스마’라는 단어를 신약성경에서 사용했기 때문에, 그 뜻의 강조점에 따라 ‘세례’라고 번역하기도 하고, 또는 ‘침례’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 뜻의 강조점에 따라 ‘세례’에 대한 견해가 교파마다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여러가지 신앙적 혼선은 물론, 여러가지 갈등과 같은 부작용을 일으키는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다.
세례의 근거
기독교의 세례는 그 근거가 매우 독특하다. 종교적인 세례의식은 기독교만 갖는 것이 아니라, 이방종교들도 세례와 비슷한 의식을 하나의 종교적 상징으로 갖고 있다. 그래서 이방종교에서도 세례와 비슷한 의식들이 바다에서 목욕을 하거나 혹은 물을 뿌리는 형식으로 행해졌다. 그래서 혹자들은 기독교의 세례의식이 이방 종교들의 의식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세례의식은 이방종교들의 의식과는 다르게 그 근거의 독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 근거는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데, 구약적 근거와 신약적 근거로 구별이 된다.
1.구약적 근거
기독교 세례의식의 구약적 근거는 하나님 여호와의 역사섭리에서 찾는다.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노아 시대에 물로 온 세상을 심판하셨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홍해 바다를 지나게도 하셨다. 그리고 모세를 시내산에 오르게 하셔서 부정한 것을 물로 정결케 하는 규례를 명하신 바도 있다(레 14장). 이러한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역사섭리는 기독교 세례의식의 구약적 근거가 된다.
노아시대에 온 세상이 물로 멸망되었다. 그것은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시대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고 그 마음과 생각의 계획이 약했기 때문에 홍수로 심판하신 것이다.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친히 창조하신 사람으로부터 모든 짐승과 공중의 새에 이르기까지 다 홍수로 멸하신 것이다.
그러나 노아에게는 은혜를 입혀 그의 여덟 식구만은 구원해 주셨다. 이에대하여 사도 베드로는 그의 서신에서 노아의 식구가 홍수, 곧 물로 세례를 받아 구원을 얻었다는 의미로 기록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사도 베드로는 홍수심판을 노아 가족이 물로 세례를 받아 구원얻은 사건으로 본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홍해를 건넜다. 그것은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시려고 홍해를 건너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하는 애굽 바로의 군대들을 홍해에서 바다 물로 덮여 죽게 했다. 그러나 애굽에서 사백년 동안 종살이 한 이스라엘 자손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려고 홍해를 갈라 건너게 하셔서 구원해 주셨다.
이에 대하여 사도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구름 아래 있고 바다를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세례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시말하면 사도바울이 출애굽 당시 홍해가 갈라진 것을 이스라엘 민족이 세례를 받아 구원얻은 사건으로 본 것이다.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시내산에서 물로 정결케 하는 규례를 명하셨다.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불결하게 되었을 때에 정결케 하여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하시려는 것이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부정한 것에 접촉한 이스라엘 백성은 회중으로부터 따로 떨어져 있게 하셨다. 그러나 불결한 백성이라 할지라도 물에 씻거나 물을 뿌려서 정결케 된 자는 회중에 거하게 하라고 모세에게 명하셨다(레 14장).
이에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의 율법에서 명한 여러가지 씻는 육체의 예법으로는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시말하면 히브리서 기자가 부정한 것을 물로 씻는 율법의 결례를 정결의 표상 곧, 세례의 의미로 본 것이다.
2.신약적 근거
기독교 세례의식의 신약적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서 찾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출현하기에 앞서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백성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세례요한에게 요청하여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분부하신 것이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은 기독교 세례의식의 신약적 근거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출현하시기 전에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다. 세례요한은 천국복음을 전파하며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들에게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다. 그것은 세례요한이 구약의 언약대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기 위한 것이다.
혹자들은 세례요한이 물로 베푼 세례가 구약의 결례에 따른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순한 구약의 결례에 따른 것이 아니라 특별히 하나님께서 직접 명하신 말씀에 따른 신적 권위에 의한 것이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고 명하셨다는 것을 밝혀주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의 세례는 단순히 구약의 결례에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에 의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례요한에게 친히 세례를 받으셨다. 이는 모든 의를 이루시기 위하여 요단강에 이르러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이다. 여기서 의를 이룬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의미로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것을 말한다. 그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예수 그리스도 위에 임하였다. 그리고 하늘로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는 소리가 있었다. 바로 성령과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해 주신 것이다.
세례요한도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물로 세례를 주는 목적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는 것이라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분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었다가 부활하신 후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시고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분부하신 것이다.
여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라는 말은 헬라어 원문으로 ‘에이스 토오노마’라고 하는데, 이는 ‘이름에로’ 또는 ‘권위로서’라는 의미이다. 여기서는 전후 문맥으로 보아 ‘이름에로’라는 의미보다 ‘권위로서’라는 의미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에 주 예수의 권위로서 세례를 베풀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권위로서’ 세례를 주라고 분부하셨는데 제자들은 ‘주 예수의 권위로서’ 세례를 주었다. 그 까닭은 아버지와 성령의 권위는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권위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자들이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사도권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이신 ‘주 예수의 권위로서’ 세례를 준 것이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에서 요한의 세례를 받은 자들에게 ‘주 예수의 권위로서’ 세례를 받게 한 사실이 있다. 이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분부에 의한 것이었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이 예수의 분부에 따라 베푼 물세례는 세례요한이 베푼 물세례와 의미가 다르다. 예수의 제자들이 베푼 세례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하는 자들에게 베푼 세례이다. 그러나 세례요한이 베푼 세례는 오실 예수를 영접키 위해 유대교에서 회개하고 요한에게로 돌아오는 자들에게 베푼 세례이다. 따라서 예수의 제자들이 베푼 세례와 세례 요한이 베푼 세례는 의미가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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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용기 원로연구원 (성경신학학술원,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명예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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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란 무엇인가?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