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문화

 
작성일 : 20-01-09 19:3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흑인영가(Negro Spiritual)에 대하여


미국의 흑인들이 부르는 종교적인 노래로 애수를 띤 독특한 멜로디와 스타일의 ‘흑인영가’라는 노래가 있다. 찬송가 좌측 상단에 ‘Negro Spiritual(흑인영가)’ 또는 ‘Afro-American Spiritual(아프리카계 미국인 영가)’이라고 표기된 찬송가들이 흑인영가 중 찬송가로 채택된 곡들이다.
16~17세기에, 평화로운 아프리카의 어느 마을에 노예 사냥꾼들이 나타나 흑인들을 무자비하게 잡아서 짐짝처럼 배에 실어 백인 노예상에게 넘긴다. 이때부터 그들에겐 인간적인 삶이 박탈되고 처참한 노예 생활이 시작된다. 짐승 같은 삶을 살아가는 흑인 노예들에게 이 세상은 ‘어서 떠나고 싶은 곳’일 뿐이었다. 그들에게 유일한 위안과 희망은 성경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었다. 천국이야말로 그들이 어서 가고 싶은 본향이었다. 그들 스스로 찾은 위안과 소망을 담은 노래가 ‘흑인영가’이다. 단지 피부색이 검을 뿐인데, 백인들로부터 같은 인간임을 철저히 무시당하는 삶 속에서 흑인들에게 흑인영가는 자유를 향한 투쟁에 나서는 자각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찬송가 중 흑인영가 곡은 ‘거기 너 있었는가(통일136, 새147)’,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통일420, 새372)’, ‘신자 되기 원합니다(통일518, 새463)’, ‘우리 다 같이 무릎 꿇고서(새231)’ 등이 있다.
위의 찬송가 외에도 ‘주님 이 아침에(Early in the morning)’, ‘성자들의 행진(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깊은 강(Deep river)’, ‘내가 탄 마차는(Swing low, sweet chariot)’ 등 귀에 익은 많은 흑인영가들이 불려지고 있다.
악보와 함께 최초로 인쇄된 흑인영가는 1862년의 ‘Roll Jordan Roll’이었다. 그 후 1867년 최초로 136곡의 흑인영가집이 ‘미국 노예의 노래(Slave Song of the United States)’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그 후 1871년에 성악가들이 연주회에서 흑인영가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흑인영가는 당김음(syncopation) 리듬, 단순한 음계에 다성(多聲)적인 경향이 있으며, 아프리카 멜로디와 비슷하기도 하다. 그리고 재즈 음악과 가스펠 송에도 흑인영가는 영향을 끼쳤다. 흑인영가는 흑인 노예들이 아프리카 고향에 두고 온 부모형제에 대한 그리움과 정신적·육체적으로 노예라는 신분에 대한 설움과 고달픔 그리고 하나님에게 자신의 애환을 호소하는 듯한 애절함을 선율에 실어, 자유와 해방에 대한 절규에 가까운 음악으로 미국의 교회음악에 접목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아리랑 등 국악 곡에 한이 있음과도 유사하다. 흑인영가는 1600년대부터 약 2세기 반 동안 형성되었다.
노예 생활의 고된 삶 속에서 만들어진 흑인영가는 구약성경 출애굽기에 나오는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이 400년간 이집트 노예 생활로부터 지도자 모세로 하여금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주전 1446년 출애굽)하게 하신 하나님을 믿으며, 주전 598년 바벨론의 2차 침입으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히브리인들이 노역에 지쳐서 바벨론 강가에서 조국을 그리며 절규하는 노래(시편 137편)와 같은 심정으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내용의 가사들이다. 흑인 노예들은 주님의 고난당하심으로 위로받으며, 이 세상 삶을 마친 후에나 바랄 수 있는 천국을 소망하며 노래하였다. 흑인영가의 가사에 대하여 2곡을 소개하고자 한다.

찬송가 ‘신자 되기 원합니다(통일518, 새463)’는 18세기 중반 미국 버지니아의 한 장로교회에서 예배 도중 은혜받은 한 흑인 노예가 설교자에게 걸어 나와 “주인님, 저는 신자가 되길 원합니다”라고 했다는 데서 유래한 흑인영가이다. 바로 이 찬송의 가사 첫 줄이기도 하다. 가사는 간단하며 ‘신자 되기 원합니다(1절)’, ‘사랑하기 원합니다(2절)’, ‘거룩하기 원합니다(3절)’, ‘예수 닮기 원합니다(4절)’라는 가사를 각각 세 차례씩 반복하고 있다. 이 곡의 클라이막스는 중간 이후 부분에서 높은 음으로 길게 끄는 ‘진심으로(In a my heart)’인데 호소력이 넘치며 마지막 부분의 ‘진심으로’라는 가사는 진정으로 기도하는 표현인 ‘아멘’이라는 의미의 가사가 없어도 ‘진심으로, 아멘’ 하며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또 흑인영가 중 ‘쿰바야’라는 곡이 있다. 미국 남부 연안과 섬에 사는 흑인들을 걸러(Gullah)라고 하는데, 그들이 쓰는 영어와 서아프리카 언어가 혼합된 사투리를 ‘걸러 영어’라 한다. 흑인 노예들이 속히 예수님이 오셔서 그들을 해방시켜 주시기를 바라는 노래 ‘여기 오소서(Come by here)’를 그들은 ‘쿰바야’로 발음한 것이다. ‘쿰바야’는 초창기 선교사들이 서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 가르쳐 그들이 애창하는 찬송이 되었는데 그 후 잊혀져 있던 것이었다. 이들이 아메리카에 노예로 끌려가 이 노래를 부르게 되었고, 다시 자유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간 이들로부터 아프리카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 노래가 다시 선교사들을 통해 아프리카 찬송이란 이름으로 미국에 들어가게 되었다. 포크 가수 존 바에즈(Joan Chandos Baez, 1941~)가 애창하여 ‘쿰바야’는 세계적인 곡으로 유행하게 되었다. 그 가사는 아래와 같다.

Kumbaya, my Lord, Kumbaya,
Somone’s singing, Lord, Kumbaya,
Somone’s praying, Lord, Kumbaya,
Somone’s crying, Lord, Kumbaya,
Somone’s sleeping, Lord, Kumbaya, Oh, Lord, Kumbaya.

여기 오소서 내 주여 여기 오소서.
노래하는 자에게 오소서 주여 여기 오소서.
기도하는 자에게 오소서 주여 여기 오소서.
우는 자에게 오소서 주여 여기 오소서.
잠든 자에게 오소서 주여 여기 오소서. 오 주여 여기 오소서.

형통한 날에는 기쁨의 찬송을 부르고, 곤고한 날에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기도하게 되는 것이 일반 성도들의 심리이다. 그러나 흑인 노예들의 이 세상에서의 삶은 희망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노예 생활이었다. 하지만 삶을 마감하고 그들이 돌아갈 본향에 대한 소망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독특한 음악으로 승화시킨 애절한 멜로디와 아름다운 하모니의 흑인영가는 우리의 심금을 울려주고 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전 7:14)

참고문헌  김명엽, 『김명엽의 찬송교실』, 예솔, 2018 / 문현호, 『개정판 교회음악사』, 코람데오, 2015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한용환 장로 (기독교지도자협의회)

찬송가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The Love of God)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