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01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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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공유 작성일 : 21-09-01 23:47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영부인께
영부인님! 편히 주무시나요? 저는 1966년 8월 25일에 영부인께 ‘탄원서’를 올렸던 농촌 청년이에요. 영부인께서 흉탄에 맞아 쓰러지셨다는 뉴스를 접하고 너무 놀라기도 했고 좌절하기도 했거든요. 왜냐고요? 저에게는 제 일생을 좌우하는 깊은 사연이 있었으니까요. 지금까지 기억하고 계실지 모르지만, 농촌운동을 하는 청년으로부터 ‘탄원서’를 우편으로 받으신 적이 있으실 거예요. 대통령 각하께서 펼치시는 ‘새마을운동’이 한창이었을 때죠. 백성을 무지와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펼치시는 운동이라고 이해를 했거든요. 그 뜻에 공감하는 나머지 시대 상황에 맞는 농촌운동에 전념하고 있었어요. 당시 대통령 각하의 승인이 없이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여 영부인께 탄원서를 올렸지요. 흉탄에 쓰러진 영부인님에 대한 뉴스를 접하는 순간, 모든 꿈과 희망이 다 물거품이 되고 말았답니다.

1960년 9월에 고향에서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야학을 시작했거든요.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학생들에게 성경을 비롯한 국어, 영어, 수학, 역사, 한문, 도덕 등 과목들을 수준에 따라 가르치게 되었어요. 때로는 산비탈에 마련한 천막 교실에서, 때로는 매입한 낡은 초가집을 옮겨다 마련한 교실에서 교육했거든요. 교재는 직접 집필도 하고 손수 등사해 책으로 만들어 학생들에게 배부하여 가르쳤지요. ‘인간 도리학’을 필두로, ‘인간교육’ 또는 ‘심판과 새 시대’ 및 ‘인류학’ 등에 관한 교재를 만들어 가르쳤거든요. 농촌운동을 시작한 지 5년째 되던 1965년도에는 전국 서남 지역을 중심으로 농촌 계몽운동이 일어나 10여 개 농촌 마을에 야학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어요. 농촌계몽에 뜻을 품은 동지들이 자발적으로 흩어져 활동한 결과였지요. 농촌 계몽운동에 자원하여 참여한 동지들이 자비량하며 고생한다는 생각에서 생활비에 대한 해결책을 백방으로 궁리하게 되었지요.

동지들의 생활에 도움을 주려고 아버지께서 입으시던 한복 바지와 저고리 또는 두루마기를 어머니께서 개조해주셔서 입기도 했어요. 때로는 털을 채취해 상품화할 수 있는 ‘앙고라’토끼를 길러 분양해주기도 하고요. 때로는 각종 채소와 양송이를 재배하기도 하고요. 양봉 벌통을 몇 통 사서 분양해주기도 하며 고생하는 동지들을 격려해주었거든요. 아무리 백방으로 노력해도 동지들의 생활 안정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하더군요. 그 후에는 동지들의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농촌 계몽운동은 성공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결국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적극적인 해결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오랫동안 생각 끝에 ‘근로협동조합’을 결성하여 노력해보기도 했었고요, 고민 끝에 삭발까지 하고 온종일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지혜를 주시라고 기도하기도 했지요.

한동안 생각 끝에 산지를 개발하여 ‘산악농장’을 만들어 경작해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겠다는 각오가 생기더군요. 즉시 ‘산지개척협회’를 결성하고 실천에 옮기기로 했죠. ‘농촌계몽운동’을 시작하기 전, ‘백지불여일행(百知不如一行)’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시작했으니까요. 문제는 산악농장으로 개발할 만한 산지를 물색하는 거였어요. 몇 달을 물색하다가 드디어 지리산의 천왕봉 자락에 수백만 평에 달하는 국유림을 물색하게 되었거든요. 당장 여름방학에 각지에서 모여온 학생들과 함께 집터도 닦고, 밭도 개간하면서 꿈을 키웠죠. 구체적인 개발계획서도 작성했고요. 높은 지대는 각종 나무를 심어 가꾸고, 그 아래 중간지대는 주로 목장으로 개발해 각종 가축을 방목하고, 낮은 지대는 특용작물과 약초를 재배하며 과수원이나 논밭을 만들어 경작하고, 계곡에는 수력발전소를 만들어 전기를 생산하고, 공장을 세워 각종 농축산물로 통조림을 생산해서 현금화하도록 철저히 계획도 세웠죠. 계획대로 개발을 계속 진행하면서 국가로부터 대여나 불하받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거든요. 하지만 대통령 각하의 승인이 없이는 불가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결국 영부인께 ‘탄원서’에 ‘개발계획서’를 첨부해 우편으로 올리게 되었답니다.

그 후, 반가운 회답이 오기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릴 수밖에 없잖아요. 매일같이 우편배달 아저씨만 나타나면 뛰어가 확인해 보았지요. 하루하루 절망감이 깊어져 가더라고요. 그런데 이게 웬일이에요. 갑자기 영부인께서 흉탄에 맞아 쓰러지셨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거든요. 절망하면서도 혹시 대통령 각하께서 아시고 계신다면 가부간 회답을 주시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지요. 그 희망마저 희미해지는 무렵, 이게 웬일이에요. 미리 기회를 노렸다는 듯이 청와대를 습격하려던 김신조 간첩 사건이 발생했거든요. 그 여파로 전국의 화전민을 모두 철수시키는 행정조치가 시행될 수밖에 없잖아요. 그로 인해 간절히 소망하던 ‘산악농장’의 꿈은 물거품이 되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답니다.

영부인님! 잠드신 중이지만, 좀 마음이 언짢으실 거예요. ‘지금 와서 나를 원망하는 것이 아닌가?’ 괘씸히 여기실 수도 있겠지요. 절대로 그런 것은 아니에요. 저를 믿어주세요. 도리어 고맙다는 뜻을 공개서한을 통해서라도 밝히고 싶은 심정뿐이니까요. 영부인님은 불교 신앙을 가지고 계신 것으로 익히 알고 있어요. 저는 기독교 신앙인이거든요. ‘산악농장’의 꿈이 물거품이 된 후에도 기독교 경전인 성경을 연구하며 살았어요. 인생관을 비롯한 역사관과 세계관은 물론 가치관까지 뚜렷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살아야 하는 이유와 목적이 분명해져 가고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법도 분명해지더라고요. 세상에 그 무엇하고도 절대 비교하거나 바꿀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한 진리를 찾았기 때문이죠. 영부인의 회신이나 대통령 각하의 승인을 받지 못한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제가 경외하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막으셨기 때문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어요. 이해하기 어려우실 수도 있으실 거예요. 이 세상만사가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없잖아요. 영존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권적 섭리에 따라 이루어지거든요. 말하자면, 영부인께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신 셈이죠. 그러기에 모든 일에 감사할 뿐이거든요. 괘씸한 마음이 드시면 너그럽게 용서하시고 편히 주무세요.




2021년, 계몽가의 꿈을 접은 철부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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