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01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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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공유 작성일 : 21-09-29 13:45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박 목사님에게
목사님! 그동안 주 안에서 평안하셨나요? 수십 년을 함께 했어도 편지를 보낸 적이 없었지요. 근래에 이르러 직접 만나게 되면 마음에 담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그러다가도 교회 내부의 치부나 불미스러움이 드러날까 봐서 망설이며 살았거든요. 혹시나 또 목사님에게 불편함을 끼칠지도 모르고요. 그럴 때는 묵묵히 서로 얼굴을 바라보는 것으로 뜻을 다지며 사는 것이 지혜라고 생각해요.

목사님은 청소년 시절부터 웅지를 품고 농촌 계몽운동에 동참하여 50여 년을 훌쩍 넘기는 동안 뜻을 끈끈하게 이어왔잖아요. 변함없이 진리와 함께 기뻐할 동역자라고 굳게 믿고 살아왔죠. 목사님은 스스로 제자라고 스승의 날이면 거의 빠짐없이 지금도 전화를 걸어 예의를 잃지 않을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많았어요. 매우 궁금하실 거예요. 걱정까지 하실 필요는 없어요. 제가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있어서니까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 지상을 통한 공개서한이라도 띄우는 것이 제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는 지름길이라는 판단에서 용기를 냈답니다.

제가 고향을 찾을 때마다 목사님이 거처하는 농장을 들리곤 했지요. 밤에는 공부하고 낮에는 밭을 정리하며 학원 교실을 마련하려고 흙으로 벽돌을 만들기도 했죠. 건축 일에 땀 흘리며 동참했던 모습도 떠오르곤 해요. 그때마다 마음이 괴로울 때가 많았어요. 왜 그러는지 궁금하시죠. 얼마 전 외국인들이 원양어선에서 몇 년 동안 밤낮으로 일한 임금도 받지 못하고 고국으로 출국당하는 모습을 ‘TV 뉴스’에서 본 적이 있거든요. 목사님 생각이 떠오르는 거예요. 혹시라도 나 자신이 목사님에게 그런 악덕 주로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참 괴롭기도 하답니다.
아시다시피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 아무런 보수도 없이 자원하여 봉사하시는 성도들을 비롯해 집사님들과 권사님들 또는 장로님들이 많잖아요. 힘들게 취득한 자격증을 소지한 분들이나, 남달리 특수한 기술이나 재능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나, 어렵게 취득한 재물을 가진 자들이 받은바 은사를 따라 사명감으로 합력하여 봉사하시는 분들과 함께 살고 있어요. 참으로 귀하고 아름답기도 하지만, 때로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은 때도 있거든요. 저는 성경 가르치는 일에 전념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성도들의 정성 어린 후원을 받으며 사명을 감당하고 있잖아요. 참으로 감사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송구스럽고 두려운 생각이 마음을 자극하기도 하거든요.

이른바 목회라는 명목으로 수십 년을 살면서 허다한 일을 경험했어요. 한번은 어느 젊은 장로님이 ‘목사님의 뜻은 잘 몰라도 목사님만 믿고 하자는 대로 따라 봉사했습니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죠. 하나님의 일은 억지로 하지 않고 자원해서 하는 것이잖아요. 사람의 종이 아니거든요. 그렇다면 나에게도 신격과 같은 ‘카리스마’가 있다는 말인가? 왜 뜻도 모르고 목사만 따라 충성하는 것일까? 뜻이 없으면 하지 말라고 그렇게 거듭거듭 당부했는데도 따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은 점점 깊어져 갔지요. 자신을 성찰해보기도 하고요.

성도들이 성경을 모르면 지도자를 하나님 대행자로 여기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아무리 성경을 수십 년 가르치며 여호와만 바라보라고 해도 지도자만 바라보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30여 년 전, 어느 연세 드신 여자 집사님의 초대를 받아 성도들과 함께 방문한 일이 있어요. 큰아들이 반갑게 영접을 하며 방에 들어와 저에게 엎드려 절을 하기에 당황하며 맞절을 했지요, 그런데 집사님이 기쁘고 즐거운 감정이 격해 기절해서 그대로 안식에 드셨거든요. 아무 생각이 없고, 이러다가는 내가 교주가 되겠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몰려왔어요.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이거든요.
이른바 명문대학 신학연구원 재학시절, 목회학 교수님이 목회 성공비결을 가르쳐주신 것이 기억나더군요. 교회 강단을 높이고, 동네 목욕탕에 절대 가지 말고, 심방을 할 때 절대로 사모님과 동행하지 말라는 거였어요. ‘이것이 명문대학 신학연구원의 수준인가!’ 싶어 너무 한심하더라고요. 목사의 권위나 감성을 앞세워 목회하라는 말로 이해되잖아요. 성경의 권위와 이성적 분별력을 가지고 목회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요. 혹시라도 감성이 앞설까 봐 가능하면 특별한 일이 아니면 사적인 전화나 메모까지도 삼가고, 심방은 될 수 있으면 피하려고 노력했거든요. ‘사랑이 없어’, ‘찬바람이 돌아’ 또는 ‘냉혈 동물이야’ 등 핀잔을 들으면서 인내하며 살았죠.

어떻게 보면 교만한 것처럼 또는 권위 의식이 강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겠죠. 인간이기에 완전할 수는 없잖아요. 때로 감성에 치우치는 경우가 있거든요. 인간관계에 있어서 감성적인 접근이 제일 빠르고 끈끈한 것도 모르는 바는 아니에요. 이른바 교회가 빨리 성장하는 비결은 감성을 자극하는 ‘부흥회’가 최적이죠. 인간의 감성적인 감흥을 일으키는 것이니까요. 한국 교회의 현재 상황을 둘러보아도 분명하잖아요. 중생한 성도는 성령의 조명에 따라 성경을 지성으로 깨달아 알고 감성으로 느끼며 의지력에 의한 굳은 믿음으로 사는 이성적 존재잖아요. 믿음으로 받은바 은사 따라 하나님 앞에서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성도 생활이며 삶의 제사 곧 영적 예배잖아요. 이러한 원칙에 따라 수십 년 교회를 섬기며 살아왔지요.

결과는 성령의 감동이 아니면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거듭 확인했죠. 수십 년을 함께 봉사하던 동역자들도 마음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을 최근에 와서도 경험하고 있어요. 어느 성도를 조금만 가까이하는 듯싶으면 편애한다고 오해하고, 투표로 봉사자를 선임했음에도 목사 입김이 작용했다며 교회를 떠나기도 하고요. 봉사자를 세울 무렵이면 연보 액수가 많아지고요. 너무 괴로웠어요. 어느 장로님이 제 가까이에서 보시고 목회하는 것이 정말 어렵겠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인간적으로는 성경대로 하는 것이 매우 어렵죠. 그래서 ‘교회개혁’을 단행하고, ‘교회개혁론’도 집필했거든요. 이런 속뜻을 목사님께 털어놓고 싶어서 지상을 통한 공개서한을 드리게 된 거예요. 목사님! 언제라도 만나게 되면 남은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줄이지요. 부디 목사님과 가정과 섬기는 교회 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키를 기도드릴게요. 안녕히 계세요.




2021년, 한 고향 동역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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