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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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2-26 22:38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전통적 언약신학에 대한 비판적 재해석


--창세기 1:28절의 언약성취사적 재해석을 중심으로--
미국 칼빈신학대학원(Calvin theological seminary) 신학토론회 발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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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20. 김규욱

      토론회 참석자 : 역사신학자  : Richard Muller, Lyle D. Bierma
                      조직신학자  : John Bolt,  Ronald Feenstra 
                      성경신학자(구약): Arie C. Leder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의 관점에 따라 기존 언약신학에 대한 대안적 해석을 개괄하기 위한 사전작업--큰 글씨   

성경 전체의 궁극적인 목적은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의 언약적 구조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와 영광을 계시하는 것--큰 글씨         

                               

  우선, 저는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 모두와 만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또한 여러분과 같은 저명한 신학자들과 함께 토론회를 가지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에게 있어, 여러분들과 같은 신학자들에게 언약신학에 대한 저의 견해를 소개하고 토론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기회입니다. 실제로, 저는 꽤 오랜 기간 동안 신학원과 연구소에서 성경 전체의 관점(whole Bible perspective)에서 언약신학을 연구하고 가르쳐왔습니다. 여기서 성경 전체의 관점이란 모든 교리와 신학적 주장은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계시하는 성경의 맥락을 통해서만 해석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교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다른 교리들과 연결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저와 저의 성경신학연구소(IBT: Institute of the Bible Theology)는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중시하는 개혁주의적 관점을 추구해왔습니다. 그러나 제가 추구하는 신학적 작업은 개혁주의 언약신학의 특정한 부분들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토론을 통해 언약에 대한 성경적 개념에 대해 더욱 배우길 희망합니다. 한국인으로서 제 견해를 영어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영어로 글을 발표할 때마다 긴장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한국말은 정말 잘 합니다.(모두들 웃음)
  맨 먼저, 본 연구에서 제가 시도하는 것은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이라는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는 17세기 언약신학의 개념의 적절성에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이 두 언약구조(two-covenant scheme)는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1643~1648)에 체계적으로 진술되었고, 이후 많은 주류 개혁주의 신학자들 사이에서 발전되었습니다(Berkhof, Hoekesma, Reymond, Muller, Kline).
  이 신학사조는 두 언약을 통한 죄인의 구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행위언약을 파기한 이후에, 하나님께서 영원한 구속언약을 근거로 은혜언약을 세우심으로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기로 계획하시고,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중보자로서 언약을 성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 바빙크, 벌코프, 후크마, 레이몬드와 같은 주류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두 언약구조를 성경적 교리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하나님 나라를 통한 하나님의 영광 계시 보다는 인간 구원 쪽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따라서 이 주장은 성경 전체의 맥락에서 재검토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행위언약에 대한 성경적 타당성 혹은 정당성에 대한 많은 주장들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개혁주의 전통에서 행위언약은 중요하게 평가되어 왔습니다. 행위언약은 행위와 은혜 사이에 질적인 차이를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신칭의 교리(오직 믿음에 의한 칭의)에 대한 신학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멀러 박사(Dr. Richard Muller)에 의하면 ‘행위 언약은 신성한 율법의 견고함과 신성한 약속의 불변성을 보증하고 유지 시킨다’ 고 주장하면서 그 신학적 의의를 강조합니다.
  물론, 두 언약구조(two-covenant scheme)가 성경의 목적 중 하나인 구속의 관점에서 볼 때는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주장은 성경 전체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구속은 성경의 중요한 하위주제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구속보다 훨씬 더 많은 내용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제 주장은, 성경 전체의 궁극적인 목적은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의 언약적 구조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와 영광을 계시하는 것임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언약적 구조는 창조, 죄, 구속,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같은 하위 주제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속이 성경의 언약적 구조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이해될 수 있겠습니까? 구속은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 따라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적인 뜻을 성취하는 과정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나타내는 과정적 수단으로 이해되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의 언약들은 단지 구속의 도구로서 존재하기 보다는 오히려 가장 먼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속성을 계시하는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바르트는 언약신학자로서, 17세기 이후 칼빈주의자들 사이에서 전개되어 온 두 언약구조(two-covenant scheme)를 주장하는 언약신학(federal theology)의 발전은 이분법적 사고방식과 역사주의의 산물이며, 따라서 성경계시에 대한 부적절한 이해라고 주장합니다. 이점에서 바르트는 자기 나름의 새로운 언약신학을 제안한 셈이며 전통개혁신학을 극복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관점에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언약은 창조와 타락에 선행한다’는 바르트의 제안입니다. 이 해석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심도 있는 주석적 검증이 필요합니다. 비판적 검토의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르트의 관점은 주목할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특히 전통적인 두 언약구조에 대한 그의 비판은 적실하며 주목할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르트의 문제제기는 옳았지만 그의 대답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이와 같은 논점에 따라 성경신학 내에서 언약과 창조 간의 관계 혹은 언약과 하나님 나라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논의가 일부 학자들의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몇몇의 학자는 언약이 단지 구속과의 관계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의 관계로도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부 학자들 중 특별히 한국의 박용기 목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행위언약(창 2:16~17)을 세우기 이전에 하나님 나라 언약(창 1:28)을 세웠음’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전통적으로 개혁주의 관점에서 창세기 1장 28절은 문화명령으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 해석은 심도 있게 검토되어야만 합니다. 저는 창세기 1장 28절이 문화명령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되고, 오히려 하나님 나라에 관한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창세기 1장 28절은 하나님 나라에 관한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바로 자손번창과 땅 정복, 그리고 통치입니다. 이 세 가지 구성요소는 아브라함 언약(창 15:~17:)에도 동일한 형식으로 나타납니다. 창세기 15~17장에는 자손번창, 땅 정복, 그리고 통치(왕을 세우심)라는 세 요소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세 요소는 나라(국가)를 구성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될 하나님 나라를 가리킵니다.
  이것이 구약에 대한 부분적인 이해가 아닌 구조적인 이해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자손번창, 땅 정복, 통치라는 복을 주십니다(창 1:28). 이것은 아브라함 언약과 매우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구약의 구조는 이집트와 광야에서 자손을 번창시키심에서 시작해서 여호수아를 통해 땅을 정복하고, 왕을 통해 다스리심으로 구약 안에서 성취됩니다.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구약은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왕이신 것입니다.
  제가 본 연구에서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창세기 1장 28절이 신구약 전체를 이해하는데 너무나도 중요한 핵심 구절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berakah). 축복을 의미하는 베라카(berakah) 라는 단어는 언약을 의미하는 베리트(berit)라는 개념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복을 주셨음을 나타냅니다. 아담 언약의 세 요소가 아브라함 언약의 세 요소와 동일한 구조를 가지기 때문에, 아담 언약이 하나님 나라에 관한 언약적 주제로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자손번창은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성취됩니다. 그리고 땅 정복 또한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와 사랑에 의해 성취됩니다. 마찬가지로 통치의 문제도 동일하게 성취됩니다.
  이것이 본 연구에서 제가 제안하는 구조적 이해의 핵심 내용입니다. 전통개혁신학은 창세기 1장 28절을 문화명령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는 문화(cultural)라는 개념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문화명령은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보다는 인간의 책임 쪽으로 무게를 둡니다. 하지만, 만약 창세기 1장 28절이 하나님 나라 언약으로 해석될 수 있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와 그의 언약을 성취하시는 영광과 속성을 강조하고 역설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의해 성취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실행자이십니다. 이것이 제 연구의 핵심 주장입니다.
  만약 이 주장이 성경적, 주석학적 타당성을 가진다면, 두 언약 구조에 대한 비판적 재해석을 위해 새로운 관점을 반드시 제시해 줄 것입니다. 실제로 17세기 언약신학의 교리와 이를 계승하는 개혁주의 언약신학의 공식은, 특히 창세기 2~3장에 집중된, 부분적인 주석으로부터 체계화된 두 언약구조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박용기 목사(성경신학연구소장)에 의해 주창된 창세기 1~3장에 관한  성경신학적 이해에 따르면, 창세기 2~3장에 집중된 두 언약구조는 엄밀한 재검토가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또한 최근 몇몇 성경신학자들에 의해 창세기 1장 안에 행위언약보다 앞서는 하나님나라 언약이 있다는데 주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개혁신학 안에서는 이와 같은 관점에 별다른 흥미를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이 관점에 주목하면서, 저는 본 연구에서 고전적인 언약신학, 즉 단지 구원론적 주제로만 편협하게 이해되어온 언약신학 안에 견고하게 붙박혀 있는 가정에 도전을 시도할 것입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언약에 대해 더욱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접근을 펼친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의 관점에 따라 기존 언약신학에 대한 대안적 해석을 개괄하기 위한 사전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 연구의 주요 초점은 존 칼빈에 의해 제안된 성경의 언약적 통일성에 부합하는 언약신학의 복원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 연구가 실행 가능하다면, 단지 구원에 국한된 언약신학을 넘어서는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언약신학을 이해하는데 유익한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내재하는 언약적 통일성을 밝혀낼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연구가 성경신학과 조직신학 사이의 간격과 괴리(the gap)를 이어 좁히는(bridging) 성공적인 시도가 되길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오현

(재)성경신학연구소(IBT) 제3회 겨울특강
"기독교지도자협의회" 창립 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