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9월 22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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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공유 작성일 : 19-08-06 19:59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부모를 섬길 때……
子曰 事父母 幾諫 見志不從 又敬不違 勞而不怨
자왈 사부모 기간 견지부종 우경불원 노이불원.
子曰 父母在 不遠遊 遊必有方
자왈 부모재 불원유 유필유방.
子曰 三年 無改於父之道 可謂孝矣
자왈 3년 무개어부지도 가위효의.
子曰 父母之年 不可不知也 一則以喜 一則以懼
자왈 부모지년 불가부지야  일즉이희 일즉이구.
『논어』 4장 「이인」(里仁)의 계속이다.
공자가 말했다. “부모님을 모실 때 (부모님의 잘못된 일을 보고) 여러 번 간언을 했는데 (자신의) 뜻이 부모님에게 따라지는 것이 보이지 않더라도, 공경하며 부모님의 뜻에 거슬리지 말아야 하고 (간하던 일을 계속) 노력하면서 부모님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
공자가 말했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먼 곳으로 놀러 가서는 안 되고 만약에 먼 곳으로 가야 한다면 반드시 그 가는 곳을 말씀드려야 한다.”
공자가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년이 되어도 아버지의 뜻을 바꾸지 않으면 효자라 할만하다.”
공자가 말했다. “부모의 연세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한편으로는 (지금 살아계시는 것을) 기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돌아가실 날이 머지않음을) 슬퍼해야 한다.”

유학에서 부모에 대한 효는 세 부분으로 실천된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살아계신 부모님을 모시면서 하는 효이다. 또 하나는 돌아가시고 안장할 때까지의 장례에서 실천되는 효다. 다른 하나는 돌아가신 후 제사를 통해 부모님에게 효를 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효의 실천은 유학이 강조하는 한 가문의 전체의 존속 여부와 관련되기에 대단히 중요하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생활하는 중에 여러 상황에서 의견을 달리할 수 있다. 과거에는 부모와 자녀의 견해가 다른 것이 가족의 화를 가져올 수도 있었다. 만일에 부모나 자녀 중에서 반역이나 역모 등의 견해를 가지게 되면 가문의 종횡으로 구족이 멸문의 화를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와 자녀가 의견을 달리할 때 어떻게 의견을 조정하느냐가 중요하다. 먼저 자녀가 부모님에게 자신들의 견해를 말씀드린다. 다행히 부모님이 그 견해를 받아들이면 더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부모님이 자녀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녀는 부모님을 원망하지 말고 계속 자녀의 견해를 받아주기를 힘써야 한다는 것이 공자의 입장이다. 자녀는 부모를 원망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유학에서 말하는 효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신데 자녀가 놀러 간다는 것은 삼갈 일이다. 본문의 ‘遊’(유)는 먼 곳으로 가서 그곳에 머무는 것을 말한다. 옛날에는 자녀가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곳으로 가서 머물고 있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급한 일이 일어나면 사람이 직접 가서 알려주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자녀가 어디로 가는지를 말하지 않고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것은 불효가 된다. 자녀는 반드시 그가 가는 곳을 부모님에게 아뢰어야 하고 또한 반드시 아뢴 그곳으로 가야 한다.
부모님이 하시던 일이나 가지고 계시던 뜻을 그분들이 돌아가시자마자 바꾸는 것은 불효다. 자녀들이 부모님의 뜻을 바꾸어 버리고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 것은 효를 행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자세는 아니다. 공자는 적어도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3년 동안은 자녀가 부모님의 뜻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효라고 강조하고 있다.
자녀는 부모님의 연세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부모님의 연세를 알 때 지금도 여전히 살아계심을 즐거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머지않아 부모님이 돌아가시리라는 생각에 슬퍼하는 것이 자식 된 도리이다.
효는 유학이 유지되는 중요한 두 축이다. 전체적으로 유학은 선한 인간과 선한 삶을 추구하는 학문체계이다. 선한 인간과 선한 삶을 규정하는 것은 유학 경전이다. 경전이 있기 전에는 요·순의 두 성인이 개인과 통치의 모델이 되었다. 효는 선한 인간과 선한 삶을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실천행위이다. 즉, 성인이나 경전의 선은 효라는 실천행위를 통해 증명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어떻게 효를 보여드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할까?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계신다. 그래서 제사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래서 누구도 그분의 뜻을 바꿀 수도 없고 바꿀 필요도 없다. 하나님은 일체의 일들에 대하여 영원히 정의롭고 공의로운 판단을 하고 계신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렇게 저렇게 하시라고 간청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계신다. 그래서 기뻐하기만 할 수 있을 뿐 슬퍼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은 말 그대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과 함께 있다고 믿으며 그렇게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이유는 영원히 그 뜻을 바뀌지 않아도 되시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뜻도 바꿀 필요 없이 하나님과 함께 지내기 위해서다. 아무런 간청을 따로 하지 않아도 늘 진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지내기 위해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다.
선한 그리스도인들이여!! 지금 여기에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것을 믿으며 실천하는 삶을 살자. 그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효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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