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7월 10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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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공유 작성일 : 20-05-01 11:02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공자가 말하는 본성과 하늘의 도
子貢曰 夫子之文章 可得而聞也,
자공왈 부자지문장 가득이문야,

夫子之言性與天道 不可得而聞也.
부자지언성여천도 불가등이문야.
『논어』 「공야장」의 계속이다.

자공이 말했다. “선생님의 글은 이해할 수가 있다. (하지만) 선생님이 인간의 (본)성과 하늘의 도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자공은 이름이 단목사(端木賜, B.C.520~B.C.481)이다. 그는 말솜씨와 정치적 수완이 있어서 노나라와 위나라에서 재상을 지냈다. 그가 상당히 뛰어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공자가 가르쳐준 만물의 본성과 하늘의 도는 이해할 수 없다고 실토하였다.
그가 말하는 공자의 문장은 구체적인 생활방식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문장은 단순히 글자만이 아니라 글 속에 담겨 있는 구체적인 예법들이나 관습들을 의미한다. 공자가 구체적으로 가르쳐준 예법이나 생활태도 등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인간의 본성이나 하늘의 도에 대한 가르침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공자가 성과 관련하여 직접 언급한 것은 “성상근, 습상원”(性相近 習相遠, “모든 인간의 본성은 서로 가깝지만 습관이 서로 다르다.”)이었다. 사실 이 말 한마디를 가지고 인간의 본성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말은 인간의 본성의 외형에 대한 단 한 번의 언급했을 뿐이다. 적어도 논어라는 서물에서는 그렇다.
공자가 육경을 편찬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본성과 천도에 대한 이해의 영역은 차원이 달라진다. 예컨대 주역에서 말하고 있는 천도(사상)는 만물을 낳고 기르는 마음으로 이해된다. 인간의 본성은 이 하늘과의 관계 속에서 규정된다. 마음은 인간의 온몸을 주관해서 하늘을 따르게 한다. 따라서 인간의 본성이란 하늘을 따르는 마음으로 규정될 수 있다. 공자는 이러한 마음을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태어난다고 보았다. 요임금은 그 본성을 대표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자다. 자공이 문장을 알았다는 것은 하늘의 도로 머물지 않고 그것이 구체적으로 설명되었을 때이다. 본성이 하늘의 도로 머물러 있을 때는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어느 날 공자는 증자에게 우리 학파의 도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증자에게 말해 준 것이 “오도일이관지(吾道一以貫之. 우리의 도는 하나로 관통한다).”(里仁)였다. 이 하나가 이를테면 하늘의 도다. 증자(참)는 이 일(선생님의 도)은 충성(忠)과 너그러움(恕)으로 이해하였다. 하늘은 모든 변화에서 늘 진실하고 충실하며 동시에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하늘을 대표하는 자는 군자다. 자공은 군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자공은 군자다. 하지만 자공은 본성과 하늘의 도를 알아듣지 못했다. 그가 직접 하늘의 도를 말하는 자(공자)에게서 직접 들었지만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공자와 자공 사이의 관계에서 보면 천도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본성을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그것이 정답이다. 더 파봐야 충과 서 정도면 충분하다.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무엇인가.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찾을 수도 없다는 칼뱅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인간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데,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다. 그리스도인 역시 인간이기에 누구도 스스로 하나님을 찾은 자는 없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만이 하나님을 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당신의 자녀로 부르셨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부르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부르신 자이다. 이 사실을 깨닫게 하시는 이는 보혜사이자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시다.
이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이상 그 아는 것은 반드시 실천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하나님을 아는 자녀가 되었기에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공자의 도는 알 수는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도는 반드시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로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셔서 구원을 완성하셨으며, 죽으셨다가 부활하셔서 하늘로 올리시어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다는 것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그 말씀을 믿고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도를 모른다거나 믿을 수 없다거나 의심하고 방황한다는 것은 참 그리스도인일 수 없다.
대한의 선한 그리스도인들이여! 이제부터 하나님을 알고 자신을 안다고 진솔하게 말하고 실천하는 생활을 해 나가도록 하자.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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