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7월 10일 (금) 

> 학술 > 철학 > 종교개혁 500주년 특집: 로고스의 운동력과 소피아의 대이동
기사공유 작성일 : 20-05-21 19:48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스물 여섯. 『기독교강요』와 『그리스도의 선택』
14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15 말씀이 길가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단이 즉시 와서 저희에게 뿌리운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16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17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간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18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리우는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되 19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 20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막 4:14-20)

위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면서 사용했던 씨 뿌리는 비유를 해석해 주신 내용이다. 네 가지 방식으로 설명해 주신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 나라의 진리가 길가에 뿌려진 경우는 들었던 말씀을 사단에게 이내 빼앗기는 상황이다. 그리고 돌밭에 뿌려진 경우는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들었을 때는 매우 기뻐하지만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해 환난과 핍박이 몰려오면 진리를 포기하는 상황이다. 이어 복음의 씨앗이 가시밭에 떨어진 경우는 뿌리는 어느 정도 내리는 듯 보였지만 세상에 속한 염려와 근심, 재물과 금전적 욕심에 휩싸여 진리의 결실을 더 이상 맺지 못하는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좋은 땅에 진리의 씨앗이 뿌려진 경우란 그 규모는 다르지만 작든 크든, 적든 많든 하나님 나라의 열매가 반드시 결실을 맺게 된다는 약속의 내용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에 대한 해석은 엄격한 전제 조건이 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시종 모든 주권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자신에게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진리는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적 통치권에 의해 인간의 판단으로 평가할 수 없는 방식으로 철저히 관리하신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앞의 본문 말씀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열매를 맺으라는 식의 설교를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미 인간이 명령하기 전에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전폭적으로 위임받은 나라를 엄격하고도 철저하게 관리하고 계신다. 하나님 나라를 엄격하게 관리하시는 주권적 섭리 방식은 인간의 시각으로 보면 매우 냉정하게 보이며 우리의 욕구와는 상반된다.

많은 교인들은 하나님 나라의 진리가 무조건 전파되기만 하면 좋다고 여긴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히 경계한다. 우리의 판단으로는 뿌려진 천국 복음의 씨앗은 어떤 경우에라도 보호해 주시길 원한다. 그것도 적어도 사단에게는 맡기지 않으시길 간절히 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 통치 방식은 말씀을 들은 자를 사단에게 맡겨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사단한테서는 벗어났지만, 그것으로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 강조하신다. 환란과 핍박 앞에서 좌절하게 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그 과정을 헤치고 나왔다고 하지만 세상살이에 염려하거나 재물 욕심에 사로잡혀 하나님 나라보다 돈을 더 사랑하게 되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하는 경우도 정해져 있다. 우리 상식으로는 천국 복음을 주셨다면 진리의 장애물이 되는 사단을 비롯한 환란이나 핍박 그리고 돈들을 모두 치워주시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상은 그야말로 우리의 기준일 뿐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확정해 놓으신 하나님 나라의 통치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하나님 나라의 엄격한 관리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주권적 섭리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 백성을 양육하는 과정도 인간의 상상과 짐작과 판단을 초월한다. 가령 삼십 배 결실은 백배의 결실보다 적어 보인다. 하지만 이 평가는 인간의 기준일 뿐이다. 삼십 배 결실이 환란과 핍박 가운데 매우 보잘것없거나 아무런 효력이 없어 보일 수도 있다. 돈 욕심에 찌들어 진리를 모두 탕진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얼마든지 인간 중심적 판단일 수도 있다. 이로써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 나라의 설립과 운영 방식 그리고 최후 심판까지 일체의 평가는 오직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권 아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16세기 종교개혁의 역사를 돌아보고 있다. 중세 로마 가톨릭의 비진리 왕국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성경권위로 회복하게 하셨는지 서구 교회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살피는 중이다. 앞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주권적 통치 섭리를 거울삼아 다시 한번 유럽의 종교개혁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제목에 제시한 두 권의 책 중 『기독교강요』는 개혁파 신학의 정점에 있는 칼빈(John Calvin, 1509-1564)의 저서 명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혜택』은 로마 가톨릭의 수사(修士)인 베네데토 다 만토바(Benedetto da Mantova, 1495-1556)에 의해 1543년에 출간된 저서다. 이탈리아 출신의 이 수사는 베네딕트회 소속으로 하나님의 은총과 성령의 능력을 강조한 ‘발데스파’(190호 참조)의 영적 신비주의를 통해 가톨릭 신앙의 개혁을 시도한 자였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책에 1539년 판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은밀하게’ 포함시킨다. 그리고 그 책에서 칼빈으로부터 가져온 이신칭의를 강조했으며 믿음에 의해 동반되는 고통의 가치를 또한 찬미하기도 했다. 칼빈 사상을 담은 이 가톨릭 교리서는 출판 당시 다른 유럽 언어로 번역되기 전 이탈리아에서 수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 어쩌면 이 책은 적어도 이탈리아반도에서 ‘조용한’ 종교개혁을 야기할만한 영향력이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후 이 책이 로마 종교재판소에 의해 금서로 차단되게 하였으며, 그 후 300년이 지난 1843년 영국 캠브리지대학교 도서관에서 발견될 때까지 숨겨놓으셨다.

이렇게 보면 중세 로마 가톨릭과 종교개혁파 간에 일어난 한편으로는 많은 갈등과 대립, 또 다른 한편으로는 꽤 많은 상호 인정과 공존의 역사에 대한 해석은 단선적 기준으로 해석할 수 없는 면이 분명히 있다고 본다. 앞서 길게 성경 본문을 먼저 따라가 본 이유도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성경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 계시 진리에 단단한 토대를 마련하지 않으면 과거 역사에 대한 해석은 많은 정보를 접하는 만큼 혼란만을 가중할 뿐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192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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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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