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1월 20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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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공유 작성일 : 20-11-27 20:46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안연과 자로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1)
안연과 자로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1)
顔淵季路侍 子曰盍各言爾志.
안연계로시, 자왈합각언이지.
子路曰願車馬 衣輕裘 與朋友共 敝之而無憾,
자로왈원거마 의경구 여붕우공 폐지이무감,
顔淵曰願無伐善 無施勞.
안연왈원무벌설 무시로.
『논어』 「공야장」의 계속이다.
안연과 계로가 (공자를) 모시고 있을 때, 공자가 말했다. “어찌 각자의 뜻을 말해보지 않겠는가?”
자로가 말했다. “마차와 말과 가벼운 갖옷을 친구와 함께 쓰다가 (그것이) 닳아 없어지더라도 맘 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안연이 말했다. “잘하는 것을 자랑하지 않을 것이고, 수고로운 것을 (다른 이에게) 베풀지 않겠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공자가 제자인 자로, 안연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가 좌담회를 열었다. 이참에 공자는 제자들에게 각자의 생각을 말해보게 하였다.
계로와 자로는 모두 중유(仲由, 542~480)의 호로서 같은 사람이다. 그는 힘이 장사였고 군사 분야의 일을 하고 싶어 했다. 스승 공자의 제안에 대해 그는 무인답게 친구와 함께 마차를 타고 갖옷을 입고 함께 생활하면서 공유하고자 한다고 답하였다. ‘구(裘)’는 가죽옷(皮服)이다. ‘감(憾)’은 서운해하는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안연은 공부를 즐겼던 사람답게 자신의 장점을 자랑하지 않고 남을 수고스럽게 할 일은 하지 않게 하겠다는 것을 포부로 밝혔다. ‘벌(伐)’은 떠벌려 자랑하는 것이고, ‘선(善)’은 자신이 잘하는 일이다. ‘시(施)’는 베푸는 것이고, ‘노(勞)’는 수고로운 일을 가리킨다.
자로가 친구와 마차를 같이 타고 갖옷을 같이 입겠다고 했는데 이것들이 값어치가 없는 것들이 아니다. 즉 그는 귀중한 물건이라도 친구와는 함께 아낌없이 공유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자로는 스승 공자를 위해 자신의 몸까지 아끼지 않은 인물이었다.
안연은 공자가 가장 사랑하는 제자였다. 그는 공자가 인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칭찬할 정도의 인품을 갖춘 인물이었다. 그가 자신을 자랑하여 떠벌리지 않을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어려운 일을 하게 하지도 않겠다는 것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그들의 말이 끝나자 자로는 스승의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묻는다. 이에 대해 공자가 자신의 원하는 것을 제자들에게 들려준다. 공자의 소원에 대한 논의는 다음 호로 이어진다.

위의 세 사람은 유학의 세계를 대표하는 학자들이었다. 공자의 제자로서 자로는 ‘행(行, 실천)’의 의미를 분명하게 밝혔고, 안연은 ‘학(學, 배움)’의 의미를 밝혀주었다. 무엇보다도 제자들의 의식이 공동생활과 타인과 이웃을 배려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었다. 공자학당의 학풍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소원은 인간적이고 소박한 것이었다.
이들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자기반성의 방향은 분명하다.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들이 공자학당의 사람들처럼 인간을 생각하는 소박한 소원들을 가지고 있느냐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나에게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얼마나 공유하려 하며, 자신의 잘하는 것을 자랑하지 않으며, 자신의 하기 싫거나 힘든 일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가를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경은 말한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마 22:39).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대접하라”(마 7:12).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약 4:16). 만물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았고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간다. 만물은 그의 것이지 우리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의 것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과도 선하게 함께 사용해야 한다. 함께 쓰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아야 한다. 대접을 받고 싶은 대로 다른 사람을 대접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했다고 허탄하게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허탄한 자랑은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고 짐이 되게 할 수 있다.

대한의 선한 그리스도인이여! 우리의 있는 것을 거저 받았으니 함께 나누어 쓰고, 우리의 자랑일랑 마음에 담아 두자. 무가치한 떠벌림으로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지 말자.

<다음 호에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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