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9월 22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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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공유 작성일 : 16-06-03 21:34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남아공에서 전하는 소식 (19)

화요일 저녁, 교회(Christ Chur-ch in Stellenbosch)의 모든 성도들이 학교에 있는 영화관에 모였다. 최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소재로 한 영화인 “부활”(RISEN)이 개봉했고, 교회에서는 영화관을 대여해서 모든 성도와 전도 대상자를 초청해서 단체관람을 했다. 영화는 사라진 예수의 시체를 찾아 나선 로마 군인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게 되고 그로 인해 삶이 통째로 흔들리고 변해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담아냈다. 주인공인 로마 군인은 부활하신 예수를 목격하고 충격에 휩싸이고, 이후로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제자들의 아름다운 관계를 멀리서 지켜보며 가치관의 큰 혼란을 겪고는 마침내 그들과 한 형제가 된다. 영화가 끝난 후 집사 한 분이 사회자로 나와 서로의 감동을 나누고 한 시간가량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영화관을 나오고 한참이 지나서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순간 흔들리던 주인공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 또한, 한 중년의 집사님 말씀이 계속해서 뇌리에 남았다. “이 영화는 성경을 바탕으로 한 실화 같지만 픽션이고, 픽션인 것 같지만 지금도 내게 일어나고 있는 실화입니다.” 필자는 이 말에 깊이 공감했다. 교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말씀을 통해 성도 개개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공동체 안의 사랑의 관계를 통해 매 순간 더불어 성숙해 가는 곳이 교회가 아니었던가.
필자는 작년 교회 등록 후 3개월이 지나 초등부에서 교사로 봉사하기 시작했다. 초등학생들을 가르쳐 본 경험은 없었지만, 우리나라에서 고등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을 살려 처음엔 자신만만하게 시작했다. 이곳에선 보통 일주일에 두 번의 수업을 하는데 금요일에는 초등부 3학년 이하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주일에는 6~7학년을 대상으로 성경을 가르친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면서 필자가 가지고 있었던 자신감(교만)은 여지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짧은 영어가 문제가 될 때도 있었지만, 미리 준비하면 되는 일이니 큰 문제는 아니었다. 문제는 필자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용이 매번 아이들에게 전달이 안 되는 점이었다.
하루는 초등부 3학년 이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준비하며 여호와의 ‘섭리’(providence)라는 말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그 단어를 모를 거란 생각에 ‘하나님이 역사를 이끌고 계신다’라고 준비했고, 학생들에게 자신 있게 말해주었다. “얘들아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이끌고 계셔” 그런데 갑자기 어린이 한 명이 손을 들더니, “선생님 ‘역사’(history)가 뭐에요?” 대략 난감하다. 대강 수습하고 수업을 진행하는데 “아담의 범죄로 인해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wicked)”라는 말이 나왔을 때 다른 학생이 또 질문한다. “선생님 악한(wicked) 게 뭐에요?” 평소 너무나도 중요하게 여기는 개념들이었지만 필자는 어느 것도 제대로 대답해 주지 못했다. 아니 대답을 해주었지만 못 알아들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필자가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답해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날의 충격 이후로 필자는 수업을 준비할 때 세 가지를 반드시 명심하고 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을 정확히 가르치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정확히 가르친다고 해도 대상의 수준에 맞게 가르치지 않으면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는 적어도 한 영혼을 책임지고 있는 교사(홈교사)라면 학생의 신앙 발달 단계에 맞는 수준별 교육목표와 교재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린아이에게 딱딱한 고기를 먹여도 안 되지만 청소년에게 젖을 먹여도 그들은 자라지 않는다. 또한, 학생들의 신앙 발달 단계에 맞는 큰 그림이 없이 발전적인 교육을 기대하는 건 아이들에게 삼시 세끼 빵만 먹이고도 튼튼하게 자라길 기대하는 것과 같다. 세 번째로는 어린아이들에게 성경을 수학문제 풀 듯, 공식에 대입해 답을 적고는 백 점을 주는 식으로 끝나면 위험하다는 점이다. 객관식 문제와 더불어 수학적으론 무한대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 영광’과 “그리스도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엡 3:19)등의 주관식 문제를 고민하게 해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성경의 활자 하나하나를 깊이 주관식으로 읽는 습관 속에서 구조를 객관식으로 정리하는 단계로 나아가게끔 도와주어야 한다.
필자의 어릴 적엔 교회에 성령운동의 바람이 분 적이 있다. 당시 불량배가 성령을 받아 삶이 뒤집혀 목회자가 되었다는 이들이 흔했고, 필자의 어릴 적 교회는 통성기도 시간이 성경공부 시간을 대체하기도 했다. 이때 필자의 많은 친구들도 소위 기도 가운데 삶이 뒤집혔다. 그런데 (적어도 필자의 경험 속에서는) 당시 그 친구들 중 지금까지 신앙을 지키고 있는 친구는 거의 없다. 있다 해도 간간이 교회만 나갈 뿐이다. 그런데 이 시대를 지나온 성도들 중 많은 이들이 아직도 자기 자녀들에 대해 이런 착각 속에서 사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서 건전한 교육문화를 가꾸는 데는 무관심하고 마치 성령의 바람을 기대하듯이 ‘하나님이 하시면 다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로마 군인의 삶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들을 양육하시는 현장에서 교사로서 주어진 역할은 말씀을 말씀 되게 하는 일이다. 성경 말씀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 자녀들의 마음에 정확히 뿌려져 인쇄된 활자를 넘어 생명력 있는 ‘활(活)자’가 되어 우리 각자의 현장에서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기쁨이 있기를 기도해본다.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에베소서 3:17~19)
변도근 (전 장안중앙교회 교사, 현 Christ Church 초등부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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