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0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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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공유 작성일 : 19-11-19 19:38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성경 66권에서의 두 여인
성경은 66권으로 묶어져 있다. 이 의미 속에는 성경이 하나임이 내포되어 있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로 다 연결되어 있다. 위의 제목에서 제시한 두 여인은 성경 66권의 명칭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성경 전체에서 두 사람의 여자를 막연히 찾고자 하면, 그 길에 분명한 기준이나 방향은 사라지게 된다. 구약성경 39권과 신약성경 27권의 명칭은 그 나름의 의미를 모두 지니고 있다. 그 가운데서 룻기와 에스더서는 그 내용 속에 나오는 여인으로 그 각각의 명칭을 삼고 있다.

이 두 여인을 따로 떼어내어 각각을 분석하고 정리해도 그 나름대로 의미는 지닐 수 있다. 구약성경에서 룻기와 에스더서는 그 위치상으로 참으로 중요하다. 룻기와 에스더서를 지금의 위치에서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는가? 물론 지금 우리들의 손에 온 성경의 배열순서와 다른 번역본도 있다. 히브리어 성경을 그 위치대로 옮겨 놓은 번역본들과 같은 것들이다. 지금 이 시대는 큰 하나의 조류가 된 빅(Big)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생활 속에 점점 깊이 들어오고 있다. 이런 시대적인 대세가 성경을 하나로 보고 확증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서는 룻기부터 에스더서까지를 두 여인을 매개로 삼아 짚어 본다. 더 나아가 66권에서의 역할과 그 위치를 강조하여 부각시키고 싶다.


1) 룻기부터

창세기부터 룻기의 앞인 사사기까지는 자손언약 성취섭리와 땅언약 성취섭리이다. 인간을 창조하여 모든 땅까지 섭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이 시대까지도 섭리하고 계신다. 룻기부터는 통치언약의 성취섭리가 펼쳐진다. 여기서 등장하게 되는 룻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속에서 사사시대에 모압 여자로서 등장하게 된다. 이 여호와 하나님의 작정은, 신약성경에서 마태복음부터 요한계시록까지를 연결해서 보면 강조되지 않을 수 없다. 룻기의 마무리는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이다. 다윗은 구약성경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이다. 이렇게 보면, 다윗과 관련된 모압 여자 룻은 구약성경 전체와 연결되지 않을 수 없다. 다윗왕이 등장하기 전에, 엘가나의 두 여인 한나와 브닌나로 시작되는 것이 바로 사무엘상이다. 이 사무엘상·하에서 다윗과 아주 깊이 관련되는 여인은 바로 밧세바이다. 이 밧세바를 통해 태어난 솔로몬은 다윗왕을 계승한 인물이다. 열왕기는 다윗이 나이 많아 수넴 여자 아비삭이 등장하게 되는 것으로 펼쳐지고 있다. 열왕기에서 빠질 수 없는 핵심적인 시대는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이 병존하는 시기(時期)다. 솔로몬은 많은 여인들과 함께 살면서 선지자처럼 깨달은 말씀이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거니와 일천 여자 중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하였느니라”(전 7:28)이다. 역대기는 아담과 셋과 에노스로 시작되고 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과 관계된 일들은 역대기에서도 많이 나온다. 특히 성전과 제사 등에 관련된 것들이 많다. 역대기하의 끝과 에스라서의 시작 부분이 동일한 것은 참으로 신비롭다. 느헤미야서의 끝은 룻과 같은 모압 여자이기 때문에 쫓겨나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룻은 다윗을 통하여 에스더와 연관되지 않을 수 없다.


2)에스더서까지

 에스더서는 역사 섭리 내용의 끝이다. 에스더서는 시작되면서 “아하수에로 왕 때”로 분명히 드러나 있다. 그러한 시대의 모르드개는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에 4:14)라고 그 타이밍(timing)을 전격(電擊)적으로 제시하였다. 유대의 한 여인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에서 제외될 수 있는 것은 그 어느 것도 없다. 이것은 에스더서를 통해서도 증명되고 있다. 다윗왕조는 메시아로서의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까지 언약대로 잘 이어져 왔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혈통으로 오셨다. 다윗을 중심으로 연결된 룻기는 부림의 절기까지 연결되어 에스더서에 기록되어 있다. 바울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를 보냈다. 에스더 시대에 127도에 있는 유다 모든 사람에게 보내진 편지는, 바울의 부탁한 말인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주라”(살전 5:27)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모두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말씀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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