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4월 21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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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공유 작성일 : 21-02-02 19:59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계시의 기억:폭로된 계시의 현재성
『교회교의학』 I/2(신준호 역), § 14. 계시의 시간(Die Zeit der Offenbarung)에서 바르트의 시간 이해의 한 부분을 알 수 있다. 바르트의 시간 이해는 과거, 현재, 미래에 동등 가치를 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특수성을 부가하는 방식이다. 이에 대해서 판넨베르크는 예수까지 보편성으로 평가하였다.

바르트는 “계시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성취된 시간(Erfuellte Zeit)”으로 설정하고, “기대의 시간(Zeit der Erwartung)”과 “기억의 시간(Zeit der Erinnerung)”으로 분류하였다(expectation and recollection). Erinnerung를 신준호는 기억으로 번역하였는데, 추억 혹은 상기(想起)로 번역할 수 있다. 네이버 [현상학사전]에서는 “<준현재화>(Vergegenw&auml;rtigung)”라고 제시하고 있다. 플라톤의 상기설은 진리 인식이 지상에서 망각한 이데아를 연상을 통해서 상기(recollection)하는 구도이다. 신(神)이 주인이 아닌 사회에서 사회의 주인은 국가가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정치 신학(Political theology, 칼 슈미트, 몰트만 등)이 대두되게 될 것이다. 특이하게 정치 신학에서 계시계속주의(continuationism)인데 정치 신학이고, 계시 단절(계시 충족, cessationism)에서는 신의 섭리, 신의 절대주권을 주장한다. 바르트는 신의 자유에 근거해서 계시 연속을 주장하며, 절대주권이 아닌 절대사랑을 제시한다.

바르트는 그리스도 탄생 이전을 “기대의 시간”으로 이후를 “기억의 시간”으로 규정하였다(GG., 137). “기대의 시간”은 구약이고, “기억의 시간”은 신약 부분이다. 바르트가 구약과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고 제시한 것(GG., 138)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바르트는 기대와 기억의 대상은 예수이지만(기대와 기억의 통일성), 예수에 대한 지식에 대해서는 “양식”만이 있고 “비밀”이라고 제시하였다. Wir haben nicht das Faktum, wir haben nur den Modus dieser gegenseitigen Bezeugung aufzuzeigen. Wir haben das Geheimnis zu respektieren,, das f&uuml;r sich selbst sprechen will(KD., 114). 바르트는 예수의 사실성(Faktum)은 인정하지만, 계시 내용에 대해서는 비밀로 감췄다. 바르트의 사상이 불가지론에 근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1. “신약성서는 구약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인간의 함께 됨에 대한 증거인데, 이것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자유로우신 행동에 근거하며, 이 행동에 의하여 존속한다.”(신준호., 139).
2. “신약성서는 구약과 마찬가지로, 은폐되신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증거이다.”(신준호., 142).
3. “신약성서는 구약과 마찬가지로, 계시의 증거인데, 그 안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오시는 하나님으로서 현재하신다.”(신준호., 149).

바르트의 § 14. 계시의 시간, 3. 기억의 시간에서 제시한 세 핵심 문장이다. 첫째, 바르트는 신약과 구약의 통일성(Einheit)을 주장한다. 구약과 신약 관계는 성경 이해와 신학 이해를 결정하는 핵심 사안이다. 바르트에게는 오직 통일성만 있다. 칼빈과 후기 개혁파에서 구약과 신약의 차이점이 약화되었다는 평가가 일반화되어 있다. 차이점이 없는 상황에서 율법을 강조하는 것이 신율법주의이다. 차이점이 강한 상황에서 율법을 강조하면 율법주의로 간다.
둘째, 바르트는 하나님과 인간의 함께 됨(임마누엘이 아닌 결합된 상태, Zusammen-sein von Gott und Mensch)을 제시하는데(Immanuel, with us sinners, KD I/1., 111, GG., 150, CD., 108), “하나님의 자유”에 근거한다고 제시하였다. 바르트는 『교회교의학』 I/1에서 “죄인과 함께하는 하나님”을 설정했고, ‘함께’를 Zusammensein(공동생활, 결합된 상태)으로 제시하고 있다. 성경에서 임마누엘은 하나님의 성육신(마 1장)과 속죄제사를 근거한다. 바르트의 임마누엘은 죄 사함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그리고 ‘함께 됨’은 인간을 향한 신의 자유 행동(freies Sichverhalten)에 존속한다. Sichverhalten(self-relating)은 쉽지 않은 어휘인데, “의미가 없는 행동”으로 단순하게 정리해 본다. 신의 행동은 신에게만 의미가 있지, 인간에게 부여된 의미는 신비에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셋째, 바르트는 이 부분에서 신과 인간의 계약(Bund/covenant)에 대해서 언급한다. 바르트는 단독적으로 신과 인간을 계약 관계로 설정시켰다. 그것이 예수의 특수성에서 증거된 것으로 밝히는 것이다. 예수는 신의 행동(Sichverhalten)을 계시하는 도구가 된다. 바르트는 예수의 특수성을 배타적으로 밝히고 있고 일회성으로 주장한다. 바르트가 말하는 예수의 특수성은 『교회교의학』 II/2의 선택론(Doctrine of Election)에서 유일한 유기자로 구상하기 때문이다. 바르트가 구도화시킨 계약은 유일한 언약 그리스도 안에서 공동체와 체결하는 것이다. 바르트는 “신학 이전에 신학”이 있다고 말함으로 교회 밖에도 구원에 대해서 개방시켰다.
넷째, 바르트는 구약에는 신의 자유와 사랑이 은폐되었지만, 신약에서 그 은폐성이 폭로되었다고 제시하였다. 구약의 신의 심판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완전하게 실행되었다는 것이다(GG., 142). 바르트는 복음서의 특수성(생애가 거의 기술되지 않고 고난과 죽음에 관심을 둔)을 제시하였다. 결국, 신의 심판과 위협을 자기 죽음으로 감당한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바르트는 ‘심판’에 ‘위협’까지 첨언하여 진행하였다. 계시는 신의 은폐성을 폭로한 것으로 복음, 기쁜 소식이다(GG., 148). 복음의 내용은 신의 심판이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완결되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예수는 (단순하게) 죽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죄를 구속하셔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라고 밝혔다. 죄를 구속하기 위해서는 흠 없는 속죄제물이 되어야 하는데, 바르트의 견해로는 “단순한 죽음”으로도 구도가 가능하다.
다섯째, “오시는 하나님의 현재성(in der Gott dem Menschen gegenw&auml;rtig ist als der kommende Gott/in which God is present to man as the coming God)”이다. coming God 개념은 계시계속주의적 개념인데, 칼 라너(Karl Rahner)는 신의 자기 전달(Die Selbst-Mitteilung Gottes) 구도의 성육신으로 만유의 유사성까지 확장하였다.

참고로 우리 번역에 아쉬움이 있는데(GG., 154), ‘Sevet(세베트)’라는 표기이다. 원문에는 Servets, Servetus(KD., 130, CD., 117)이다.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지만, 바르트는 세르베투스의 견해와 칼빈과 루터의 견해를 대립시켰고, 세르베투스가 말하는 “순수한 형태의 직관(Anschauung/pure present)”에 대해서 긍정한 것으로 보인다. 칼빈은 “이미 매개된 개념”을 거부하였고, 루터는 기대와 기억이 아닌 “시대의 상이성”을 인정하였다. 바르트가 칼빈과 루터의 견해와 같지 않다고 밝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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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고경태 목사 (주님의교회/한국성경연구원)
이메일 : ktyhbg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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