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24-07-22 21:05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과거 집착과 현실 파괴의 병자, ‘역사적 인간’


역사적 인간 (……) 과거로의 시선이 그들을 미래로 내몰고, 삶과 더 오래 겨루도록 그들의 용기를 북돋우고, 옳은 것은 앞으로 올 것이고, 행복은 그들 앞에 가로놓인 산 뒤에 있다고 희망의 불을 지필 것이다.

니체가 비판하려는 ‘역사적 인간’이란 과거에 집착하면서 현재의 생생한 경험을 왜곡하고 현실을 부정하는 인간이다. 현재를 과거의 업적과 추억으로 덮어버리는 왜곡은 미래를 위한 창조적 동력까지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러한 역사적 인식에 매몰당한 역사주의자들은 현실 삶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하면 할수록 현실을 자신의 생명력에서 더욱 소외시키고 회복 불가능한 병으로 몰아갈 뿐이다. 가령 로마 가톨릭의 왜곡된 종교적 이데올로기가 지배했던 중세 암흑기에 유럽 사회는 로마제국의 부활이라는 병적 집착으로 현실을 모두 과거 유산의 재현을 위한 제물로 바쳐 버린다. 로마제국이 누렸던 영광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하면서 라틴어를 제국 부활의 공용어로 사용하고 대학은 로마제국의 법과 문화 연구에 몰두하였고 그 작업의 목표는 오직 과거를 이상화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전 유럽의 정치와 경제, 학문과 문화를 더욱 쇠퇴의 길로 몰아갔으며 창의적 사고나 독창적 발상을 범죄시하고 화형대에 불태워버렸다. 과거 영광 재현에 걸림돌이 되는 기발한 발상과 발언은 무엇이든 악마화했다.
이러한 역사 연구자들에 대해 니체는 이렇게 비판한다. “그들은 모든 역사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자신들이 비역사적으로 사유하고 행동하는지를 알지 못하며, 그들의 역사 연구도 순수한 인식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봉사한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298) 역사에 집착하면 할수록 비역사적인 태도를 강화한다는 니체의 지적에는 자기실현이 곧 자기 몰락과 파괴라는 것을 감지 못하는 병적 인간에 대한 비판이 잘 나타난다. 그 당시 문화는 과거 로마제국의 영화만을 꿈꾸며 영웅들의 재현에 집착하면서 현재 삶을 정당화할 수 있는 여지는 점점 사라지게 하고 단지 맹목적 열정으로 자기 파멸의 퇴폐주의의 말로를 걷고 있었다. 과거의 역사적 지식을 축적하면 할수록 현재의 삶을 위한 봉사의 여지는 그만큼 사라지고 과거의 특정한 시점을 절대화하거나 이상화한다. 이렇게 병들어 가는 역사적 인간은 과거의 특정 인물을 신화화함으로써 현재의 자신을 과거에 묻어버리는 비역사적 퇴락인으로 전락해 버린다.
니체는 삶에 봉사할 수 없는 지식 대상으로서 역사 연구가 아니라 모든 과거를 미련 없이 파괴하기 위한 현재의 역사 연구 방법을 설파(說破)하고자 한다. 가령 중세 로마 가톨릭이 재현하려는 고대 로마의 영광이 아니라, 같은 과거를 대하더라도 고대를 현재의 창조 동력으로 삼으려는 ‘르네상스(Renaissance, 재생, 부활)’ 운동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르네상스 부흥 운동은 단지 과거의 답습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 과학과 학문 등 전 분야를 창의적이며 혁신적으로 해석함으로써 현재와 미래 진보를 위한 인류의 지적이며 문화적 발전의 토양으로 삼고자 했다. 니체의 개념으로 말하면, 역사적 인간이 ‘비관적 염세주의자’라면 비역사적 인간이란 ‘창조적 허무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인간의 과도한 과거 집착을 극복하고자 현재와 미래를 위한 창조적이고 진취적 의지를 부활시키려고 분투하는 니체의 사고는 지식의 단순 축적과 반복과 모방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다. 역사적 인간을 극복하고자 현실의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철저하게 파괴하는 데서 미래 창조의 동력을 삼으려는 니체의 ‘초인(Ubermensch)’은 실존에 그 무엇도 남기지 않고 오직 창조적 의지가 현재 얼마나 충일(充溢)한지 확인할 뿐이다. 고대의 지식을 현재의 문제 해결과 미래 발전을 위해 창조적으로 사용하려고 했던 르네상스 시대 인물들의 가치는 그들이 ‘무엇을’ 남겨 놓았느냐에 있지 않다. 니체가 볼 때 진정한 르네상스인은 가장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었던 것을 가장 먼저 폐기처분하려는 ‘창조적 의지’가 그 본질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니체적 르네상스란 과거의 단순 부활이 아니라 창조적 인간 의지가 우리 내면에 얼마나 충만한가를 확증하려는 정신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역사적 인간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충일한지의 여부는 창조적 의지를 얼마나 극대화할 수 있느냐가 기준이 된다. 니체 당시 19세기 독일 역사주의 사조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이상화하려는 병적 징후가 난무하고 있었다. 현재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역사 연구라고 하지만 니체가 볼 때는 현재의 삶을 왜곡하고 창조적 의지를 억압하는 퇴폐주의의 확산일 뿐이었다. 과거 로마제국을 꿈꾸는 ‘신성로마제국(Heiliges Romisches Reich)’의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는 니체가 볼 때 그야말로 결코 고칠 수 없는 집단적 정신병동을 만드는 상황으로 보였다. 이후 이어지는 제1·2차 세계 대전을 보면 과도한 민족주의가 지배하는 과거 집착, 나아가 역사의 이상화와 절대화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야기하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대학과 연구기관들마저 과거의 전통에 매몰당하는 경직성으로 인해 교수들은 물론이고 학생들까지 창의적이고 비판적 사고력을 거의 소진하고 있었다는 것이 니체의 진단이다. 가령 니체가 “어느 정도까지 삶이 역사의 봉사를 필요로 하는가 하는 질문은 한 민족, 한 문화의 건강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질문들과 근심거리들 중 하나다”(301)고 말할 때, 과거 집착의 역사 해석이 민족과 국가의 미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현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창조적 역사관을 정립하려는 니체의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니체 사후 유럽 역사는 다시 과거를 절대화하고 신화화하면서 무의미하게 반복했고 또 반복하고 있다. 변하지 않는 불변의 진리를 온몸으로 거부했던 니체의 아우성에 십분 공감하면서도 그릇된 기독교 교육으로 현실의 자신을 부정해 버리고 그러한 자신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러한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던 그의 비애를 보면서, 전무후무하게 지혜로웠다고 하는 솔로몬의 뇌리에 남겨준 진리의 말씀을 다시 숙고해 보자.


2 전도자(傳道者)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3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5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7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8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10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전 1:2-10)

<261호에서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예순둘: 아우구스티누스, 서방교회 권력의 토대를 놓다
예순하나. 로마제국의 우상철폐와 기독교의 절대권력화 과정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