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25-02-25 20:43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바르트: 교회, 신학 없는 하나님에 대한 말함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I/1 읽기(9)


바르트 교의학의 시작은 “현존하는 교회에서 발생하는 하나님에 관한 교회의 언어인 인간적인 선언”의 검증에 있다. “Dogmatik ist als theologische Dizziplin die wissenschafiliche Selbstprufung der christlichen Kirche hinsichtich des Inhalts der ihr eigentumlichen Rede von Gott”. 이 글은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첫 문장이다. 바르트는 교회의 기능이 하나님의 말함에 대한 검증(자체검토)이다. 바르트는 교회의 기능을 신학, 실존하는 교회의 말함에서 발생하는 신의 말씀에 대한 자체검토로 제시했다. 그래서 신학 앞에 신(하나님)이 있다는 매우 기본적인 명제를 제시한다. 이런 확실한 명제는 부당한 장소로 – 칼빈은 미로(迷路) - 이끌 것이다. 신학, 믿음의 사람은 사람의 멋진 언어에 현혹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멋진 글쓰기의 대명사 중 한 사람이 칼 바르트이다.

바르트는 ‘교회’의 실존적 현상에서 신학을 시작했다. als handelnde Kirche(교회의 활동), eine Maßnahme(조치) der Kirche는 Gott redet(God talks, 신이 말한다. talks about God), Reden Gott(하나님을 말함, speaks of God), Redens von Gott(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기, speech about God)을 평가한다.

그런데 바르트는 교회의 자체검토로서 신학을 산출한다고 제시했다(GG., 28). Kirche bringt Theologie in diesem besonderen und eigentlichen Sinn(특수하거나 근원적인 의미) hervor, indem sie sich einer Selbstprufung unterzieht(KD., 2: CD., 4) 기능을 신학을 산출하는 것으로 세웠다. 우리는 교회의 기능을 예배(말씀과 성례)와 전도(봉사)로 세우고 있다. 신학은 교회에서 발생하는 말함에서 하나님에 관한 말을 측정하는 것이다(Sie stellt sich die Wahrheitsfrage(진리 물음, the question of truth), d. h. sie mißt(측정하다) ihr Handeln, ihr Reden von Gott an ihrem Sein als Kirche: KD., 2; GG., 28).

바르트가 말한 ‘특수성(besonderen)’은 교회에서 신에 관해서 말함에 특수성을 인정한다. 아마도 교회의 특수성은 교회에서는 매주 설교가 시행되는 구조이다. 설교에서 신에 관해서 말함(Reden von Gott)이 발생하는데, 그때 자체검토인 신학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신학’이라는 어휘의 근원에 대해서 고민했다. 교회에서 ‘신학’이라는 어휘는 12세기 정도에 출범했다. 그 이전에는 신학이란 어휘가 아닌 교회의 가르침, 교리 등이 있었다. 그런데 철학에서는 Lucius Annaeus Cornutus(20 AD - 68)가 ‘신학’이라는 어휘를 사용했다(Cornuti Theologiae graecae compendium). 아리스토텔레스의 메타 물리학(형이상학)을 신학으로 소개한 철학자도 있다(김상봉, 『아리스토텔레스의 신학』(서울: 길, 2025)). 교회는 AD 30년경(사도행전 2장)에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교회가 있기 전에 신에 대한 담론(talking)은 있었다. 바르트의 이러한 명시적 표현은 거룩한 창조주 하나님과 이신론적 유일신과 차이라고 말하고 싶다. 바르트는 이신론적 유일신론에 근거해서 신학을 사유한다. 어쩌면 이스라엘의 여호와와 독일 등 유럽의 신(Germanic mytholgy: 북유럽의 신화)의 차이에서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토착화 신학에서 우리의 단군신화와 기독교 신을 융화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바르트는 교회가 신학을, 교회에서 신에 관해서 말함을 통해서 신학이 산출되는 것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바르트는 “교회에 신학이 없을 때에도 하나님에 관한 말이 있었다.” - weil es in der Kirche vor ihr und ohne sie Rede von Gott gibt. 교회와 신학에서 신학은 교회의 뒤를 따른다(Theologie fuhrt die Rede der Kirche). 또한 산출된 신학은 교회의 말을 인도한다(Theologie begleitet die Rede der Kirche). 바르트는 교회의 말, 인간적인 하나님에 관한 말(menschliche “Rede von Gott”)은 “심판과 약속(Gericht und Verheißung)”이라고 했다. 바르트가 심판을 말하기 때문에 교회에 정죄 기능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무엇을 정죄하는가?’가 중요할 것이다. 바르트는 인간의 이성을 희생시키는 고대 교리를 심판하고, 신의 자유와 사랑의 약속으로 인도한다. 어떤 강좌에서 유일신 종교의 두 교리를 정의와 약자보호라고 했다. 바르트는 그 유일신 종교의 교리 체계를 따르고 있는 것 같다. 기독교 교리는 정의, 특히 사회정의가 아닌 하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에 대한 고백의 구체적인 형식이다. 그래서 교리는 복음이다. 정의가 복음이 아니라 교리가 복음이다.

교회, 신에 관한 말함 그리고 신학의 관계 규정은 바르트 신학의 특수성이다. 특수성이 있다는 것은 보수적 견해이다. 그래서 바르트의 신학이 독일 등 유럽에서는 보수적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특수성, 교회의 특수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슐라이어마허나 칼 바르트는 교회의 우월성 혹은 특수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선 기독교는 그 우월성과 특수성을 부정한 종교다원주의를 구체화시켰다. 그 과정에서 “그리스도 없는 신학”이 등장했다.(참고: 마이클 호튼의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 김성웅 역(서울: 부흥과개혁사, 2009). 로마 가톨릭교회의 사제 출신이지만 스스로 ‘불자-그리스도인’(Buddhist Christian)이라는 폴 니터는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1985년)으로 유명해졌고, 2010년에 『부처 없이 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었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종교다원주의, 로마 카톨릭은 배타적 복음을 철저하게 거부한다. 우리는 이러한 신학의 구체적인 논리를 칼 바르트가 형성했다고 평가한다.

교회는 하나님에 관한 말함에 대한 교회의 독특한 이해(Inhalts der der Kirche eigentumlichen Rede)로 모인 공동체가 된다. 그리고 바르트는 교회의 자체검토는 “세 동심원(drei Kreisen)”으로 형성된다고 제시했다. 세 동심원은 “하나님에 관한 말함”과 “교회” 그리고 “하나님에 관한 말과 교회의 언어를 일치(Ubereinstimmung)시키는 인간”이다. “Die Wahrheitsfrage~ ist die Frage der Ubereinstimmung der der Kirche eigentumlichen Rede von Gott mit dem Sein der Kirche”(KD., 2; GG., 29).
바르트는 진리문제를 “신에 관한 말”과 “교회 존재”의 합일에 관한 물음으로 제시했다(GG., 29). 바르트에게 진리는 확정적 가치가 아니라 모호한 가치이다. 그래서 바르트는 확정적이고 절대적인 진리 개념을 거부한다. 그런데 자기명제는 정확하다고 선언하는 것은 특이한 일이다. 그것은 칸트의 모순이 없는 정언명제(定言命題, categorical proposition)를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수행하는 신학은 명제가 아닌 계시에 근거해서 수행한다.

Barth는 교회의 언어 규범을 “기독교적 말의 규범(Kriterium der christlichen Rede)”으로 제시한다. 교회의 존재, 예수 그리스도, 인간에게 오는 신의 삼중성을 제시한다. ‘기독교적 말이 그에게 오는가? 그에게로 인도하는가? 그에게 합당한가?’를 평가한다. 이러한 평가(물음)는 성경신학(정초에 대한 물음), 실천신학(목표에 대한 물음)이고 교의학적 신학(고유한 말의 내용에 대한 물음)이다. 바르트는 교회사를 주석적 교의학적 실천 신학의 보조학문으로 제시했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고경태 목사 (주님의교회 / 형람서원)
이메일 : ktyhbg@hanmail.net

바르트 은혜로운 “학문으로서 신학” vs 죄사함의 은혜의 복음을 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