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예순다섯: 자유의지론의 열매, 동·서방 수도원 운동
“자신의 아내를 너무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간음한 자이며…다른 사람의 아내에 대한 사랑은 참으로 부끄러운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아내에 대한 과도한 사랑도 마찬가지로 부끄러운 것이다.” 이 말은 중세 시대 백과사전 편찬자로 유명한 빈센트 드 보베(Vincent of Beauvais, 1190년경-1264년)의 말이다. 이 사람은 중세 가톨릭의 기둥 노릇을 하면서 종교재판과 같은 폭압적 불법을 이끌었던 도미니크 수도회 소속 신학자였다. 프랑스 왕 루이 9세의 후원을 받아 성경과 신학, 철학과 과학 그리고 역사를 아우르며 중세 유럽에서 가장 방대한 백과사전 중 하나 ‘대백과전서(Speculum Maius)’를 편찬한 인물이기도 하다. 금욕주의를 신앙생활의 주요 내용으로 담은 빈센트의 백과사전은 중세의 지식 집대성과 체계화의 상징이었으며 중세 유럽의 수도원 학습 자료로 널리 사용되었다. 간단히 정리하면 성경권위를 훼손하면서 신학의 세속화를 야기한 인물이다. 결혼과 성(性)에 대한 왜곡된 해석으로 교회의 출발과 원천인 가정교회의 바탕을 흔들어 놓은 치명적인 오류를 야기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예정론과 은총론이 결국 서방 라틴 교회 체제를 옹호하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과정에서, 서방에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바탕으로 도덕적 삶을 순수한 신앙의 핵심으로 강조했던 펠라기우스와 도나투스파의 정신을 이어받은 수도원 운동이 거대한 규모로 이어졌다. 세속의 교회를 ‘신의 도성(都城)’ 즉 천국으로 여기도록 했던 아우구스티누스의 오류나 도덕적 자유의지론자들의 비성경적 주장이나 모두 성경권위를 훼손한 중세의 대표적 사례들이며 이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4세기경 로마 교회의 타락을 보면서 서방 교회도 이미 시작한 동방교회 수도원 생활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프랑스 남부) 투르의 마르틴(Saint Martin of Tours, 316년경-397년)이다. 이 사람은 서부 유럽에 성인 숭배와 수도원 운동을 확산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부패한 로마 교회에 맞서 겸손과 자비의 삶을 신앙적 본보기로 삼고 수도원 운동을 전개했다. 로마군 복무 시절 어느 추운 날 길에서 만난 가난한 사람에게 자기 외투 절반을 잘라 주었고 그날 밤 꿈에서 예수께서 그 외투를 입은 모습을 보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는 서방 교회에 성인 숭배(cult of saints) 전통을 강화한 사실을 보면 서방의 수도원 운동이 얼마나 인본주의적이고 비성경적인지 단번에 확인할 수 있다. 신자들의 유일한 경배 대상인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통치권을 버리고 자유의지에 의한 도덕적 행위를 보여준 이른바 성자(聖者) 숭배로 변질시킨 것은 기독교 본질의 왜곡이다.
그런데 수도사 ‘마르틴’의 전통을 지금도 프랑스와 독일에서 가톨릭은 물론 일부 루터교도 그가 사망한 날을 축일(祝日, 매년 11월 11일)로 정하여 지키고 있다. 수도사 마르틴과 루터교의 루터는 연관성이 있다. 1517년 독일에서 종교개혁을 시작한 루터의 이름이 바로 마르틴(Martin Luther, 1483-1546)이며 루터는 1,200여 년 전 수도사 마르틴의 축일에 태어났다. 물론 루터는 성경권위에 눈뜨기 전 엄격한 금욕을 요구하는 아우구스티노 수도회(Augustinian Order) 소속 수도사였다. 루터는 비성경적인 성인 숭배 사상을 조장한 수도사 마르틴에서 벗어나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절대권위로 거듭한 ‘마르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4세기 수도사 마르틴과 관련된 역사적 증거가 또 하나 있다. 기독 대학에서 학문과 신앙의 만남을 상징하는 ‘채플(Chapel)’의 어원이 바로 수도사 마르틴이 벗어 주었다는 ‘작은 망토(capella)’에서 유래한다. 그래서 채플이란 ‘가난한 자에게 망토 반을 잘라주고 남은 마르틴의 망토를 보관하는 예배 공간(capellae)’이라는 뜻이다. 채플에 간다는 말은 마르틴의 깨끗한 마음을 본받고 자비와 나눔의 정신에 참여한다는 의미가 된다. 결국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신령한 교회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세속 교회 옹호에 의해 정치적 권력 기관으로 변질되었으며 또한 자신의 도덕적 자유의지에 의해 성인(聖人)이 되겠다는 수도원 운동에서 또 한 번 왜곡된다.
그런데 이러한 동방과 서방의 인본주의적 수도원 운동을 하나로 연합하고자 시도한 인물이 있다. 곧 동방과 서방을 인간의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인본주의 종교로 왜곡한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점점 퇴락하고 망해가는 로마 제국을 뒤로하고 나날이 부패하는 로마 교회를 정화하여 새로운 ‘신의 도성’을 만들고자 시도했던 수도사 요한 카시아누스(John Cassian, 360-435)가 그 인물이다. 380년경 유대 베들레헴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한 카시아누스는 이집트 수도사들의 엄격한 금욕적 삶에 깊이 감명을 받고 이후 프랑스 마르세유로 이주해 그곳에서 수도원을 세우고 앞서 말한 마르틴의 금욕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다. 그는 초대 교부 중 대표적 자유의지론자인 오리게네스(Origenes Adamantius, 185년-254년경)를 적극 지지하면서 당대 서방교회 수도원 운동을 이끌며 세속의 교회체제를 옹호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과 정면으로 맞선다. 이러한 그의 금욕주의 실천 운동을 맥클로흐는 이렇게 평가한다. 카시아누스의 수도원 운동은 “하나님과 협력하여 영적인 생활에서 성장하는 인간의 능력에 대한 낙관적인 견해를 암시하는 것이었다. (……) 카시아누스의 가르침과 모범은 (……) 교회에 봉사하라는 자신의 소명으로 인해 수도원생활에서 돌아선 그 위대한 서방인, 즉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과 대립을 일으켰다.”(487-88 참조)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수도원 운동의 발단과 그 원천은 하나님의 무한한 은총을 계시한 ‘영원한 예정 사역’을 거부하는 비성경적 동기에 있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아름다운’ 예정론을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신령한’ 교회를 끝까지 보호하지 못하고 결국 일천년 이상 로마 제국 교회(Christentum)를 옹호하는 오류를 범하는 결과를 야기한다. 성경권위에 근거한 올바른 예정론 정립이 없다면 성도 생활의 영적 의미 또한 도덕적 자유의지론에 매몰당할 뿐이다. 가정교회의 원천이 되는 요소인 성과 결혼에 나타난 신령한 의미는 성경이 분명히 밝히고 있다. 아래 말씀을 더 깊이 살피면서 금욕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 5:22-23)라는 성령의 열매가 맺히길 기도한다.
1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2 자기 양심이 화인(火印)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3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딤전 4:1-3); 1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2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3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4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전 7:1-5)
<268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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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인간의 세 가지 불치병 III : 비판적 역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