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문화

 
작성일 : 21-11-29 20:33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청소년과 교회음악


1960년대에 중·고등학교 학생시절을 보낸 필자는 선생님들에게서 당시 유행하던 비틀즈의 노래나 의상·두발 등을 따라 하지 말 것을 수도 없이 들었다. 그때는 요란하게 생각되었던 비틀즈의 음악도 요즈음의 더 요란한 리듬의 노래에 비교하면 클래식음악을 듣는 것같이 느껴진다. 예전의 음악에서는 가사도 중요했지만, 최근의 노래들은 가사와는 상관없이 빠른 템포의 흥겨운 ‘댄스뮤직’이라는 장르가 범람하고 있고, 막강한 자본이 스타를 만들기 위해 투자되고 있다.
청소년들의 행복의 원천 중 가장 큰 것은 음악이다. 같은 노래나 같은 가수를 좋아하면 청소년들은 서로 쉽게 친해지기 때문이고, 스타들이 청소년들의 우상이 되어 그들의 패션·생활방식까지도 모방하게 된다. 청소년들의 음악 교육에 관한 우려는 일찍이 플라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국가를 튼튼하게 하려면 군대가 필요하고, 튼튼한 군대를 만들려면 강한 군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청소년들이 나약해지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음악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어른들의 목표에 의해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할지를 정하지 않고, 청소년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 오늘날의 교육지도 방식일 것이다. 청소년들의 음악에 대해 어른들은 못마땅해한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수들에 열광한다. 그냥 공부만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시끄러운 음악에 너무 시간을 빼앗긴다.

교회음악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찬송가나 착실하게 부르면 좋을 텐데 대중음악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 것을 성가라며 부른다. 저런 것도 교회음악인가? 저 음악이 신앙생활에 무슨 도움이 될까? 그러나 그런 부모들 역시 어린 시절 똑같이 그들의 부모들로부터 걱정의 대상자였음을 어른들은 까마득하게 잊고 있다.
그리고 세속문화에 대한 경계심이 있다. 가사만 바꾸면 세속음악과 같은 음악을 교회의 음악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특히 오늘날의 복음성가는 비난받아야 할 세속문화의 일종으로 생각한다. 부모들은 청소년 문화의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한다. 청소년의 문화가 ‘도전문화’라고 한다면 부모들의 문화는 많은 경험으로부터 얻은 ‘회상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것은 어느 시대에나 동일한 모습이다. 정적인 문화와 동적인 문화는 교회 내에서도 충돌한다. 익숙한 교회음악 이외의 것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기타를 치고 드럼을 치며 노래하는 청소년들을 보면 당황해하며 심지어 분노하는 경우도 있다.
복음성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교회음악의 기준을 대예배에 두고 있으며 특히 주일 대예배 시 사용될 수 있는 것만을 교회음악으로 인정하려 한다. 그래서 일반적인 교회에서 주일 대예배 시간에 불려지는 찬송가는 통일찬송가 앞부분인 1~72장의 것들과 송영곡 등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 이외의 집회에서는 찬양곡을 자유롭게 선곡하는 편이다.
한편 우리나라 개신교의 찬송가들은 한국교회 초창기에 형성되었으며, 그 내용은 선교사들이 전해준 당시의 영국과 미국의 것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음악이 한국 교회음악의 전통이 되었고 아직까지도 널리 불리고 있다. 당시 한국인들은 우리의 노래들이 세속적이라고 생각하였으므로 영미의 찬송가를 받아들이는 데는 거부감보다는 환영의 분위기였다고 판단된다. 그래서 아직도 많은 교인들이 우리의 민요의 가락으로 찬송가를 부르면 기생, 광대 등을 연상하며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대중음악적 교회음악이 1960년대 말부터 서서히 한국으로 밀려들어 와서 주로 도시의 청소년 음악문화를 장악하게 되었다. 이른바 ‘복음성가’, ‘현대 기독교음악(CCM)’ 등으로 불리는 대중음악적 교회음악은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일반이 되었다.
청소년들 가운데 대단한 신앙인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그들에게 당장 대단한 신앙을 소유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한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세상의 대중가요를 부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여 복음성가를 교회에서 허락한다. 자신들은 부르지 않는 복음성가를 청소년에게 허락하는 이유는 그것이 대중음악으로 가는 길을 막는 ‘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극적인 교회와 달리 복음성가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교회들도 있다. 이런 교회의 특징은 비교적 목회자들이 젊고 교회에 도움이 된다면 전통을 그다지 중요시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이 음악을 청소년 선교에 좋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많은 열의를 가지고 음악의 육성에 노력하고 실제로 청소년 선교에 뚜렷한 성공을 거둔다. 이들의 노래 가사는 일반적인 편견과는 다르게 ‘사람에게 향하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 찬양’으로 되어 있다.
일부의 좋은 현상이나 ‘댐 불가피론’에도 불구하고 이 음악의 형태 때문에 신자들은 걱정한다. 일정하게 반복되는 타악기 소리, 전자기타 같은 세속적이라 느껴지는 악기, 대중음악의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 가사를 자세히 듣지 않으면 세속적 대중음악으로 들릴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한다. 이 문제점에 대하여 우리가 검토하여야 할 것은 우선 이 음악이 교회와 신자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지금 교회에서 음악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는 것은 음악이 없는 것보다 더 유익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천지창조 이후 모든 섭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모든 영광을 드러내셔서 피조물로 하여금 크신 영광을 깨닫고 찬송케 하시기 위함이지만(시 33:1~22; 엡 1:3~6), 교회음악은 기독교 신앙을 전수하는 기능, 기독교인의 신앙과 인격의 성숙을 돕는 기능, 기독교적인 삶을 장려하는 기능 등 교육적 기능이 있다.

자녀들이 복음성가를 부르는지 찬송가를 부르는지를 문제삼지 말자. 잘못이 있다면 음악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자녀들의 신앙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클수록, 깨달음이 많을수록 온전한 찬송이 나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청소년시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깊이 있게 배우도록 하여야 한다. 성경은 어떠한 교회음악을 해야 할지에 관하여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음악의 양식에 있지 않고 찬송하는 자의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시 28:7).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한용환 장로 (기독교지도자협의회)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을 찬양하며
십자가를 내가 지고 (통 367장, 새 34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