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여호와’ 호칭과 성경 해석의 원리
기독교는 성경을 절대적 진리로 믿는 종교다. 문제는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절대진리로 확정할 수 있느냐이다. 앞선 기고에서 살펴보았듯이 성경이 절대진리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증을 하지 못하면 여호와의 존재 확증은 공허한 주장이 될 뿐이다.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의 원리는 중생한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총체적인 진리를 인식하는 원리다. 이러한 성경신학의 진리 인식 원리는 성경을 절대진리로 인식하는 주관자를 인간이 아닌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의 영인 보혜사 성령’으로 확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성경의 진리 확정은 인간의 작업이 아니라 전적으로 절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 아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의 사사로운 생각에 기인한 철학적 이성에 의존해서는 결코 해석할 수 없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인본주의 신학자들은 진리 인식의 주관자와 주체를 모두 인간으로 본다는 데 문제가 있다. 즉 인간의 노력에 의한 연구를 통해 얻어지는 지적 능력으로 진리를 인식하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박용기, 『성경신학개론 서론편』(성남: 진리의말씀사, 2021), 105-121 참조] 그런데 죄로 어두워진 타락한 인간의 이성은 진리 인식이 불가능하다. 이를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19~21)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완전한 진리 체계이다. 그러므로 그 해석도 하나님의 감동으로만 가능하다. 이를 사도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라고 기록했다. 그리고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요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라고 증거한다. 이는 인간이 결코 진리 인식과 해석의 주체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베드로는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님을 증거한다.(벧후 1:20-21)
1. 기존 해석의 문제점
올바른 성경해석 없이 올바른 신학은 불가능하다. 성경해석과 직접 관련된 신학 분야가 ‘주경신학(註經神學, Exegetical Theology)’이다. 성경을 주석하고 그 본문을 바탕으로 의미를 밝히는 분야다. 성경을 해석하는 신학이라는 의미에서 ‘석의신학(釋義神學)’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주경신학은 신학의 어떤 분야보다 중요하다. 이는 성경해석을 통해 모든 신학적 이론의 논거가 확보되기 때문이다. 주경신학의 근본 목적은 성경 내용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계시된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깨닫고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하려는 것이 근본 목적”이다.[박용기, 『성경신학개론 서론편』(성남: 진리의말씀사, 2021), 40-41 참조]. 하지만 현재 주경신학은 그 방향을 잃고 있다. 수많은 해석이 난무할 뿐 그것을 논리적 모순 없는 통일된 체계로 종합하지 못하고 있다. 성경해석은 기본적으로 문법적이며 역사적 해석 단계를 지나 여호와 계시 중심의 의미 체계를 수립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논리적 오류 없이 확정하는 것이 본래 목적이다. 그런데 현재까지 개혁파 주경신학은 여호와 계시 중심의 해석보다는 “철학적 사상과 방법으로 언어분석에 의한 문법적 해석이나 내용분석에 의한 역사적인 해석”에만 치중했다.[박용기, 『성경신학개론 서론편』(성남: 진리의말씀사, 2021), 53 참조] 이러한 인간 이성에 호소한 시도는 처음부터 한계가 분명한 해석 방법이었다. 인간의 이성에 호소함으로 먼저 성경의 논리적 통일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성경의 통일성 확보 실패는 성경의 정경성을 부정하는 역사비평학과 문서설이 정론(定論)이 되게 했다. 둘째, 성경 전체의 주제를 발견할 수 없었다. 이는 성경 내용에 치중한 필연적 결과다. 성경의 수천 가지 이상의 사건을 논리적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정하여 객관적 진리 체계로 수립하고자 하는데, 이는 인간 이성의 판단으로는 불가능하다. 셋째, 성경의 논리적 일관성 확보가 불가능하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말할 수는 없다. 성경해석은 성경의 본 주어를 하나님의 유일하신 칭호 ‘여호와’를 어떻게 확증하느냐의 문제다. 여호와 호칭을 성경 전체 주어로 확정하는 일은 성경의 수천 가지 모든 사건에서 여호와의 주권적 통치를 확보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2. 성경 자증의 해석 원리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는 성경 내용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딤후 3:16)되었을 뿐만 아니라 절대 진리 인식의 도구로서 충족하기 때문에 더하거나 제할 수 없음을 증거한다.(계 22:18) 절대 진리를 인식한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을 떠난 문제다. 상대적인 존재가 절대적인 진리를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경을 ‘절대 진리 인식의 충족한 도구’라고 할 때는 인식의 주관자가 오직 하나님이어야 하며 피조물은 단지 전달자 조교(助敎) 역할이 전부라는 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성경 자증의 해석 원리라는 말이 성립한다. 성경은 성경 자체에 해석 원리가 지배하는 것이지 외부의 어떤 이론을 해석의 틀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첫째, 성경은 오직 성경만으로 해석해야 한다. 성경은 진리 인식의 충족하고 완벽한 여호와 존재 확증의 도구이므로 인간의 주관적 경험이나 사색 혹은 이념이나 관념으로 해석할 수 없다. 기독교에서 인본주의 사상을 경계하라고 할 때 그 의미는 무엇보다 성경을 인간학적 관점에서 해석하지 말라는 뜻으로 보인다. 둘째, 성경은 각 권의 순차적 배열에 따른 해석을 해야 한다. 성경 자증성은 성경 기록과 그 편집 순서를 그대로 따라가야 한다. 앞선 기고에서 강조한 ‘여호와 호칭과 성경의 논리적 통일성’에서 살펴본 것처럼 성경권위를 결정하는 ‘논리적 통일성 확보’는 성경 편집 순서를 그대로 준수하는 데서 시작된다. 해석자의 주관적 입장에서 배열을 임의로 바꾼다면 성경의 처음부터 그 권위가 훼손된다. 셋째, 내용의 연결성에 따른 해석이어야 한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수천 가지 내용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여호와 존재 확증이 성경 기록 목적인 이상 모든 내용은 반드시 논리적 오류가 없어야 한다. 다양한 내용들이 해석의 단계를 지나 의미에 오면 언약하시고 성취하시는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 확증으로 통일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성경해석 원리는 성경 자체의 편집과 내용의 통일성에 의한 ‘주제의 단일성’을 확정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해석 원리가 주제의 단일성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은 오직 성경 자체에서 가능하며 이는 신적 능력으로 자증(自證)되는 원리를 갖는다. 이처럼 성경 자체는 무흠하고 자충족하기 때문에 어떤 인간의 특정한 사상이나 방법에 의존하지 않고 자증의 원리로 해석해야 하며 오직 자증 원리에 의해서만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의 영광이 확증되는 절대 진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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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한경진 목사 (산수서광교회 / 광주 성경신학학술) |
‘여호와’ 호칭과 성경의 주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