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선교의 프론티어 칼빈_ 40
아마 이 제목을 읽는 독자들은 깜짝 놀랄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많은 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은 칼빈은 선교에 무관심했을 뿐 아니라 그는 어떤 모양이던지 선교적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칼빈과 선교는 무관한 것이고, 칼빈은 개혁주의 교리는 세웠지만 선교를 모르는 차디차고 싸늘한 신학자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많은 현대의 선교학자들은 칼빈과 종교개혁자들은 사복음을 재발견하는 데 성공은 했으나 그것을 땅끝까지 증거하는 사도적 비전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학자들은 칼빈이라는 이름 자체가 모든 선교적 열정에 대한 죽음이라고 혹평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일까? 그것은 편견의 잣대로 그를 잘못 평가한 것이다. 칼빈을 성경지상주의, 하나님의 영광 지상주의자로 매도하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칼빈은 선교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헌신했다.
새로운 선교의 패러다임을 만든 칼빈
칼빈은 선교의 프론티어였다. 선교학자 사무엘 쯔웨머 (Samuel Zwemer)는 칼빈의 선교적 관심과 이방인 선교에 대해서 평가하면서 “칼빈은 결코 이방 세계의 영적인 필요에 눈이 멀거나 귀가 먹지 않았다’’고 했다. 그 좋은 예가 칼빈이 세운 제네바 아카데미이다. 그곳은 선교센터이자 국제선교훈련센터였다. 칼빈이 1559년에 세운 제네바 아카데미는 유럽 각국에서 몰려든 청년들을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으로 무장시킨 후 그들을 다시 자기 고국으로 돌아가서 선교 활동을 하게 했다. 제임스 메키논 같은 학자들은 칼빈이 제네바에 머물게된 사건 자체가 선교적 사건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칼빈이 제네바에 머무는 동안 그 도시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하고 확실한 선교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메키논의 말을 빌리면, “칼빈은 그곳에서 유럽 대부분의 지역을 향한 복음주의적 선교 활동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직접 선교 운동의 방향을 이끌었던 지도자”였다.(Mackinon, p.295)
제네바 아카데미는 국제 선교 센터
실제로 제네바 아카데미는 잘 훈련된 복음주의적 선교사를 양성하여 배출하려는 동기로 세워졌다. 제네바 아카데미는 단지 신학공부만 시키는 학교가 아니라 개혁주의 신학으로 무장된 선교사를 양성하는 선교 훈련센터였다. 그래서 제네바 아카데미는 엄청난 숫자의 선교사를 양성해서 유럽 각국으로 파송했다. 목사 선교사가 많았지만 그중에는 평신도 선교사도 상당히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칼빈의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교육받고 훈련받은 지도자들이 불란서, 영국, 스코틀랜드, 네델란드, 독일, 덴마크, 스웨덴, 폴란드, 헝가리까지 파송되었다. 그러므로 칼빈은 유럽 선교의 총사령관 역할을 감당했다.
그런데 칼빈의 개혁주의 선교활동은 유럽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당시 가톨릭 국가들이 식민지 개척을 하였던 남미까지 확장되었다. 칼빈의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훈련받은 지도자들 중에는 남미 브라질에 선교사로 간 사람도 있었다. 이 기록은 브라질 장로 교회사에 나와 있다. 칼빈이 직접 선교사로 파송한 사람은 불란서 휴그노파 사람인 리처(Richer)와 차티어(Chartier)였다. 이 사람들은 칼빈에 의해서 파송받아 300명의 피난민과 함께 배를 타고 브라질 해안에 도착했다. 거기서 그들은 열심히 선교 활동을 하면서 원주민 인디언들을 개종하는 데 성공하였다. 제네바에서 브라질까지 동행했던 일행인 데 레리(De Lery)의 기록대로 보면, 칼빈이 파송한 선교사들은 인디언들에게 성경의 핵심 내용을 소개하는 데 최선을 다했고, 하나님, 창조, 죄와 구속에 대하여 그들에게 가르쳤다고 기록했다. 물론 이들의 선교 활동이 끝까지 열매를 맺지 못했으나 칼빈이 파송한 이 선교사들이 실상 아메리카 대륙의 첫 번째 선교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칼빈은 브라질에 휴그노파 목사를 선교사로 파송했음
칼빈은 구체적으로 선교 활동에 헌신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선교 신학적인 이론을 세우기도 했다. 칼빈은 선교를 말할 때 하나님의 통치가 복음을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확장된다는 표현을 즐겨 썼다. 칼빈은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한 지역에 머물러 있지 않고 우주적 통치로서 하나님은 선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신다고 했다. 칼빈에 따르면 이같은 하나님의 통치는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 시작되었고 마침내는 모든 민족에게 이른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부르심은 이스라엘 민족만이 아니고 결국 모든 민족에게 미칠 하나님의 놀라운은혜와 자비를 포함한 것이다. 그는 장차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가 모든 민족, 모든 족속에 미칠 것이라고 내다 봤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인해 민족끼리의 장벽이 무너지고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차별이 없어졌다. 하나님의 통치는 온 땅에 임한 것이다. 사람들은 칼빈이 선교란 말을 쓰지 않았으니 선교 사상이 없다거나, 선교 활동을 안했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매우 잘못되었다. 그러면 예수님도 선교란 말을 쓰지 않았으니 선교에 무심했단 말인가? 사실 선교(Mission, Missio 또는 Mitto에서 나왔음)란 말은 가톨릭 용어에서 나왔다. 보낸다는 뜻이다. 선교는 단순히 사람을 보내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보냄을 받은 자가 가지고 간 복음의 내용과 목적도 중요하다.
선교는 하나님의 통치를 세상에 확장하는 것
칼빈은 하나님의 통치를 세상에 확장하는 사명이 교회에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그 말의 뜻은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에 참여할 때 교회다운 교회가 된다는 것이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참된 교회의 표지를 말씀의 선포와 성례전의 온전한 집행으로 보았다. 그는 말하기를 ‘‘말씀이 진지하게 선포되고 성례전이 정확하게 진행되는 곳에는 어디나 교회가 존재하고 있다고 확신해도 된다’’고 했다(기독교 강요IV, 1. 9). 특별히 칼빈은 선교 사역에서 말씀 선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나님은 지금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어디에서든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증거자(to share the Gospel of Christ)가 되기를 원하고 계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그가 냉랭한 교리의 수호자가 아니라 가슴이 뜨거운 선교의 열정을 가진 개혁자였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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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정성구 목사 (총신대학교 명예교수 / 전 총신대학교 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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