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특별기획

 
작성일 : 25-01-14 09:51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여호와’ 호칭의 신학적 의미


앞선 기고 ‘여호와 호칭과 성경의 주제’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는 성경 전체를 지배하는 근본 주어다. 그리고 여호와 호칭에 담긴 의미는 바로 언약하신 것을 반드시 성취하신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는 언약과 성취를 통해 그 존재를 계시하고 확증한다. 그러므로 모든 신학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그 중심에 둔 연구가 이루어져야 오직 성경에 근거를 둔 신학 연구가 가능하다. 왜냐하면 성경에 계시된 ‘여호와’는 세상 지식이 아닌 특별계시 기록인 성경으로만 그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하에서는 성경에 계시된 ‘여호와’ 호칭에 대한 역사적 변천 과정 그리고 신학자들의 견해를 살피고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 입장에서 그 한계를 비판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여호와’의 뜻에 대해서는 주로 출애굽기 3장 14절의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로 보편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 말로는 성경에 등장하는 여호와 호칭을 여호와 존재 확증으로 연관시키는 데는 매우 부족하다. 물론 번역에서 보듯이 여호와의 영원자존성, 제일 원인이 없으신 절대자 정도는 추론이 가능하다. 성경 전체 해석을 지배하는 고유한 성호(聖號), 영광스러운 신명(神名)으로서 여호와 호칭은 자기 백성의 구원을 통해 드러난 신실하심과 인자하심 정도로 연관 짓고 있다. 한편 하나님 신성한 자음 표기 ‘הוהי’는 히브리 전통에서 표기만 한 채 발음하지 않음으로써 정확한 음가(音價)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 배경은 유대인들이 십계명 중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출 20:7)는 제3계명을 준수하고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벨론 포로 이후에는 ‘여호와’ 호칭을 부주의하게 부르는 불경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 아예 발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여러 가지 대용(代用) 명칭이 사용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영어 ‘주님(LORD)’을 의미하는 ‘아도나이’라는 단어로 대체되기도 했다. 그 후 주후 6-7세기경 맛소라 사본 학자들에 의해 네 개의 히브리 자음(הוהי)에 ‘아도나이’의 모음을 결합하여 현재 우리가 칭하는 ‘여호와’, ‘예호와’, ‘야웨’(야훼)로 발음하는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전통이 70인역(ⅬⅩⅩ)에서는 헬라어 ‘퀴리오스’로 번역했으며 초대교회와 종교개혁 시대를 거치면서 성경 번역본(KJV, RSV, NIV 등)에서 ‘여호와’ 대신에 대문자만 ‘LORD’를 사용하고 있다.[가스펠서브, 『라이프성경사전』 (서울: 생명의말씀사), 2006. 참조]

개혁파 신학자 박형룡은 ‘여호와(הוהי)’ 호칭에 대해 “특별히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으로 계시하시는 이스라엘 하나님의 특별 명칭이요, 가장 신성하고 가장 탁월한 성호”라고 소개하면서 “유대인들은 레위기 24:16을 ‘여호와 이름을 모독하면 반드시 죽일지니’의 의미로 읽기 때문에 이 명칭의 사용을 미신적으로 두려워하였다”라고 밝힌다. 그리고 이 명칭의 의미를 출애굽기 3장 14절 ‘스스로 있는 자(“I am that I am” or “I shall be what I shall be”)’ 번역에 따라 자존재(自存在)와 불변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카우치(Kautzsch)의 말을 인용해 “항구하며 영원한” 속성을, 말라기 3장 6절 ‘나는 여호와라 변역지 아니하나니’에서 하나님의 ‘불변성’을 그 특성으로 소개한다. 그런데 박형룡은 하나님의 불변성을 “자기 백성에 대한 관계의 불변성”을 강조하여 여호와 계시보다는 인간의 구원에 치중한 해석을 하고 있다. 가령 여호와 호칭을 ‘하나님 언약의 신실성’과 관련해 “하나님의 가장 우수한 특별 명칭”[박형룡, 『박형룡박사 조직신학 2 신론』(서울: 개혁주의출판사, 2021), 82-83 참조]이라고 할 때도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에게만 사용을 제한하고 성경 전체에 적용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한정건은 출애굽기 3:13~16절에 기록된 여호와의 호칭을 카슈토(U. Cassuto), 기스펀(W. H. Gispen), 아이히로트(Eichrodt) 등의 말 곧 “자기 백성들의 구원을 돕기 위해 현존하시는 존재”라는 주장을 인용해 여호와의 호칭을 “활동하시는 존재(active being)”로 설명한다. 그리고 출애굽기 6:2~3절의 “(......) 나는 여호와로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라는 말씀을 언약과 관계된 이름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호와의 이름을 “존재론적인 칭호나 존재의 정적(靜的) 개념보다 동적(動的)이면 활동적인 현존에 대한 약속”의 의미로서 대적을 물리치시고 자기 백성의 구원과 그 백성을 자기의 땅으로 들이시는 ‘역동적(力動的) 존재’로 소개한다.(한정건, 『https://exiles.tistory.com/entry/여호와의-이름』 참조) 이는 성경에 계시된 여호와 호칭을 성경 전체의 포괄적 개념으로 확대 적용하지 못하고 지엽적인 ‘인간 구원’ 중심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여호와의 존재를 논리적 통일성에 의해 확증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이와는 달리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 주창자 박용기는 자신의 연구에서 여호와 호칭을 성경 전체에 확대 적용한다. 하나님의 고유명사 여호와(הוהי)에 대해 우선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that I am)’에 대해 ‘여호와의 존재 방식’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여호와 칭호는 구약신학적 의미에서는 구약성경 전체에 계시된 신관을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그 칭호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조에게 자손과 땅 그리고 통치를 언약(창 12:-36:)하시고 그대로 성취(창 37:-에스더)하심으로 자신을 알린 개념이다. 그리고 호세아 12장 5절(저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여호와는 그의 기념 칭호니라)을 인용하여 “열조와 언약하시고 언약대로 이루어 주신 분이심을 기억하여 생각나게 하는 이름”이 여호와 호칭이라고 한다.(박용기, 『성경신학개론』(성남: 진리의말씀사, 1997), 120-123 참조) 이처럼 언약하신 대로 성취하신다는 의미의 여호와 호칭은 인간에게 은혜와 구원을 베푸신다는 의미를 훨씬 뛰어넘어 성경 전체의 논리적 통일성을 확보하는 결정적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박용기의 성경신학은 여호와 호칭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언약하신 것같이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도 생육하고 번성케 하여 언약의 땅을 정복하고 나라를 이루어 다스리도록 큰 민족이 되게 하여 주신다고 언약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을 이삭과 야곱에게 계승시켜 주셨다. 그리고 야곱의 후손으로 하여금 애굽에 내려가 그 자손이 번창케 하여 주시고 언약의 땅도 정복하게 하여 주셔서 큰 민족이 되게 하여 다윗의 왕조를 세워 다스리도록 섭리하여 주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열조에게 세우신 언약을 이루어 주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칭호는 언약하시고 언약대로 이루시는 자라는 신학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박용기, 『성경신학개론』,(성남: 진리의말씀사, 1997, 124 참조).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여호와의 호칭은 성경 본문에 기초를 두고자 했으며 역사적 변천 과정을 거쳤다. 개혁파 신학은 부분적이나마 언약의 신실성에 나타난 은혜의 하나님을 강조했다는 점과 자기 백성을 자기의 땅으로 들이시는 ‘역동적(力動的) 존재’로 소개했다는 점은 구속사 관점에서 의미 있지만 성경전체 해석에는 적용하지 못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본 기고에서는 성경신학 주창자 박용기의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호칭으로서 ‘여호와’를 소개했다. 다음 호에서는 성경 전체에 적용한 여호와 호칭 즉 ‘언약하시고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를 토대로 ‘주권성’ 개념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한경진 목사 (산수서광교회 / 광주 성경신학학술)

‘여호와’ 호칭과 성경 해석의 원리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