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주권성과 목회 원리 (1)
본 기고는 ‘여호와 호칭에 나타난 주권성 연구’를 통해 여호와 호칭에 담긴 뜻을 집중 조명함으로써 신 존재의 논의를 확정하고 신적 속성 중 가장 근본적 주제 ‘주권성’을 다루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여호와’ 호칭의 신학적 의미는 자신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는 언약과 성취를 통해 여호와의 존재를 확증하면서 여호와의 절대주권적 속성을 계시하신다. 이러한 여호와 계시의 진리 확정은 반드시 성경 전체에 나타난 논리적 일관성과 구조적 통일성을 확증함으로써 가능하며 이러한 논의 과정을 앞의 입증을 통해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여호와 존재 확증과 여호와 주권적 속성의 인식이 실제로 교회의 목회 현장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역사하는지, 그 실례를 필자가 봉사하는 교회(이하에서는 ‘저희 교회’)의 현장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여호와 계시 사건으로서 목회
여호와의 존재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에 대한 총체적인 진리 확증으로만 가능하다. 이러한 진리 확증은 인간의 의지적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로 성령의 주관하심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올바른 신지식은 목회자와 성도들의 신앙생활과 직접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모든 백성에게 신앙생활이란 자신들이 은혜로 받은 믿음의 대상에 대해 얼마나 확신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막연하게 ‘하나님이 있을 것이다’라는 가정과 ‘하나님은 존재한다’는 확신의 차이는 무신론자와 유신론자의 차이에 비견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신한다는 것은, 성도들이 교회의 머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주권적 통치를 따르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확증하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물론 이러한 사실은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결코 가능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약속해 주신 대로 강림하신 보혜사 성령께서 기록하신 절대진리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듣고 깨달아 믿게 해 주셨을 때만 가능하다. 이를 사도 요한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라고 증거하며, 또한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 15:26)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이 주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시며, 교회의 유일하신 참 목자이신 목회 현장에서 성도들의 여호와에 대한 바른 이해와 이에 바탕을 둔 여호와의 주권성을 확신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신앙의 근본이며 목회의 원천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와 만사만물에서 신적 주권성을 확신하는 믿음은 목회자를 비롯한 모든 성도들이 매사에 하나님 중심적 교회관을 갖게 하며 특히 하나님 여호와의 주권적 통치를 의식하게 한다. 이로써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기반을 둔 긍정적이고 직선적인 신 중심적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능력을 본다는 사실을 항상 기쁨으로 여기게 된다.
이렇게 진리의 자유를 누리면서 기뻐하는 성도 생활은 세상의 육적 욕망을 추구하면서 누리는 즐거움과 질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육적인 즐거움을 초월한 영적 기쁨이란 인간의 모든 극단적 상황, 곧 삶과 죽음의 문제를 초월하면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정하신 뜻을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기쁨이다. 이러한 기쁨은 교회의 머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지배하는 죄의 권세를 심판하시고 우리를 해방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영적 기쁨은 죄로부터 해방의 기쁨이다. 사도 바울은 이를 두고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라고 선포하였고, 사도 요한 역시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계 1:5)라고 증언한다.
목회 현장에서 누리게 되는 영적 기쁨은 오직 만사만물 속에서 드러나는 언약대로 성취하시되 신적 주권성을 계시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언약과 성취를 통해 계시된 여호와의 존재 확증은 주 예수 그리스도만 참 목자이신 목회 현장에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성을 확신할 때 가능하다. 이러한 신적 주권에 대한 믿음은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창세전 작정하신 뜻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신하고 그 영광을 찬송하는 데서 가능하다. 이를 사도 바울은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1-12)라고 증거한다.
하나님이 창세전에 베푸신 주권적인 은혜는 세상의 극단적 비극 사건마저도 세상의 논리에 함몰되지 않게 하며 세상이 가한 아픔과 상처에 대해서도 영적 해방과 자유를 선사한다. 그리고 목회 현장에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통치에 대한 확고한 신앙은 복음의 자유를 빙자한 방종을 철저하게 경계하게 한다. 왜냐하면 복음의 자유를 악용하는 방종은,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욕정을 마음껏 충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자체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엄격한 심판이 임한다는 확신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즉 방종 가운데 행하는 자가 자기 의지적 능력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죄의 권세에 맡기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이다. 이로써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도 진리의 말씀으로 보호받지 않으면 그러한 방종에 함몰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성경 진리를 단지 정보로 듣는 것과 그 지식을 깨닫도록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이렇게 볼 때 성도들이 진리 안에서 누리는 자유의 기쁨과 찬송은 창세전 정하신 뜻을 성취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 속성인 절대주권성을 확신하는 믿음이 없다면 근본적으로 불가능함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