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기자의 눈으로 본 교회개혁 방향
기자는 지금까지 한국 기독교 각 교단의 총회장을 역임하신 원로들을 초교파적으로 만났다. 한국 교회의 위기는 분명 말 그대로 위기였다. 원로들에게 한국 교회개혁을 위한 성경적 대안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나 자신도 정말 개혁의 가능성이 있는지 고민부터 앞설 때가 많았다. 그만큼 성경과는 점점 거리가 먼 방향으로 한국 교회가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근래 코로나19 대 유행병 사태로 감염의 진원지 상당수가 교회로 드러남에 따라 그렇게 좋지 않던 교회의 평판이 더 나빠지고 있다. 교계 원로들에게 문제의 진단을 부탁하면 우선 걱정 섞인 한숨부터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원로들에게 대안까지 제시해 달라는 것은 아무리 질문이 기자의 특권과 같은 것이라고 해도 참으로 냉혹하다는 느낌이 몰려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의 개혁에 대한 염원은 결코 놓을 수가 없다. 성경 권위에 바탕을 둔 개혁의 방향은 반드시 찾아야 하지 않는가.
일 년을 넘기고 있는 감염병 사태로 인해 교인들의 모임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그나마 많지 않던 성경 공부 시간이 더 줄었다는 사실이다. 교회에 나가는 것과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인데도 성경의 가르침에 관심이 없던 교회들은 성경 공부를 하지 못하는 것보다 교회에 모일 수 없는 것을 더 큰 문제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목적과 수단의 전도(顚倒)이다. 교회의 유일한 절대 표지는 성경이기 때문이다. 이하에서는 기자의 눈으로 한국 교회의 성경 중심적 개혁 방향에 대해 지금까지 좌담회나 ‘인터뷰’ 및 토론회를 통해 들었던 바를 중심으로 몇 가지 제시하고자 한다.
1. 교회개혁에서 가장 먼저 중요한 부분은 성경 교육이다
교회개혁은 교육 개혁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구약 역사에 보면 부패한 유다 왕국을 하나님의 은혜로 개혁한 두 왕이 있다. 한 명은 히스기야 왕(대하 29:~31:)이며 또 다른 한 명은 요시야 왕(대하 34:~35:)이다. 이들의 개혁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기록한 말씀으로 돌아가 성경에 기록된 대로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준수하는 일이었다.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언하고 가르치게 했으며 이방 신당을 헐고 우상을 타파하는 일이었다. 개혁의 가능성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에 대한 몰입과 몰두 외에는 없다.
그런데 이러한 성경 교육을 가로막는 큰 장애가 있다. 성도들의 교회 생활 전체를 관장하는 총회 헌법을 비롯한 노회나 각 개교회의 정관이나 규칙이다. 현실적으로 교인은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의 정관을 거슬러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다. 성경적 근거가 없거나 희박한 규칙과 제도와 형식이 한두 개가 아닌데, 그것을 준수하는 것이 교회 생활의 정상화로 가는 길이라고 지도를 받는다. 어느 교회 교인이 된다는 의미가 그 해당 교회 당회 규칙에 길들어진다는 뜻으로 새겨도 무방하다고 본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성경에 근거가 없는 제도를 결코 개인의 힘으로 고칠 수 없다는 점이다. 교회 정관에 이의를 제기하고 불합리한 것을 따지는 것은 해당 교회에 출석한다는 전제하에서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더욱 답답한 것은 제도 하나를 교인들이 공감하는 합리적 규칙으로 고친다고 해서 그것이 교회개혁의 궤도에 올라선 것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좋은 제도라고 하더라고 진리의 말씀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쓸모없는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올 뿐이기 때문이다. 성경 교육은 교인 양육의 유일한 가능 조건이며, 교회개혁은 성경 교육이 계속해서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기자의 이러한 견해는 원로들도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개혁의 실제 이행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이 있다. 오직 보혜사 성령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2. 보혜사 성령에 의한 성경 교육만이 교회개혁의 유일한 실마리다
개신교의 전통적 성경 교육의 폐해는 이른바 설교에서 가장 많이 드러나고 있다. 성경 본문의 임의적 발췌로 진행되는 제목 설교의 폐단은 고스란히 성도들에게 돌아온다. 맥락과 맞지 않은 무차별적 성경 인용에 의한 설교는 그 자체가 전하는 자와 듣는 자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현장처럼 보인다. 소위 건전하다는 설교는 거의 도덕적 교훈이다. 그 내용 대부분은 결국 주일성수와 헌금의 의무화, 목사에 대한 순종으로 흘러간다. 엄격하게 말하면 앞의 내용은 성경이 아닌 목사 중심으로 조직된 노회의 규칙에 이미 분명하게 명시된 것이다. 교인이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바로 목사 중심으로 제정된 법을 준수할 것을 서약한 대로 생활하는 것과 같다. 안수집사, 권사, 장로라는 직분을 받을 때도 성경 권위는 더 뒷전으로 밀려나고 목사 중심의 당회 규칙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성경을 먼저 깨달은 자가 후배에게 진리를 전수하고 함께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지체인 동역자로 성장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보혜사 성령의 교통하심’(고후 13:13)은 성경 진리로 양육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다. 지금까지 교계 원로들을 만나본 결과, 기자의 단견으로는 한국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그 관심이 점점 멀어지는 안타까움이 그지없는 상황이다. 목사 중심으로 제도화한 현 교회 체제에서는 성경 진리에 몰두하는 교육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자꾸 앞서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인가? 아니라면 어디에서 그 희망의 단서라도 찾을 수 있는가?
3. 가정교회의 성경 공부가 교회개혁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
몇 년 동안 좌담회를 비롯한 토론회 그리고 각 교단 총회장을 역임한 원로들을 만나면서 갖게 된 생각이 있다. 잘못된 교회 체제 안에 들어가면 성경 공부에 몰입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사실이다. 현재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그것은 더욱 심각하다. 이른바 주일 대 예배에 역점을 두고 교인들을 집합시키는 방식이 어려워진 코로나19 감염병 사태에서 예배의 대안을 찾기도 힘든 상황인데, 비대면으로 성도들에게 양질의 성경 공부를 제공한다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 그렇다고 평상시에 코로나19 전염병을 대비해 ‘사이버’교육 프로그램을 미리 준비하지 못했을 것이기에 말이다.
그런데 학교 교육까지 상당 기간 비대면으로 진행하면서 많은 가정에서 부모님과 자녀들이 함께하는 시간이 상당히 늘어났다. 이러한 환경이 자녀에게 성경 말씀을 가르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될 수 있으면 한다. 성도의 가정이라면 더 많은 학교 공부를 시키려고 하기보다 세계적으로 무서운 감염병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크게 깨닫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부모로서 성경 진리를 자녀들에게 가르치겠다는 태도보다 우선 함께 성경을 읽어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그동안 무조건 교회에 보내거나 교회에 맡기기만 한 무책임했던 신앙 선배로서 부끄러운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었으면 한다. 신앙의 본을 먼 곳에서 거창한 것을 찾기보다 자녀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보는 부모의 진지한 모습부터 보일 수 있었으면 한다. 자녀의 신앙 성숙은 가정에서 부모에게 듣고 배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우선 자녀들과 함께 성경을 펴서 읽는 일정한 시간을 정하는 것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그리고 성경을 읽는 시간이 늘어나면 함께 더욱 깊이 공부하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에 도움이 되는 곳을 한 곳 소개하고자 한다. 중고등학생 정도면 누구나 충분히 알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본문의 의미분석에 의한 성경강론 강의실이 있어 소개한다. ‘성경신학학술원 강의실’(www.ibt.or.kr)이다. 성경 진리 수호와 전승의 마지막 보루인 가정교회에서 자라는 자녀들을 위해 유익하게 활용되길 바란다.
|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
정확한 진단과 올바른 대안을 찾아서 |
기자의 눈으로 본 교회 개혁 기획대담의 방향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