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교회체제개혁 총론 (4)
1. 교회의 당면문제 3) 의식제도에 의한 형식주의 개혁파 교회의 모든 예전이나 의식 또는 제도 등은 중세 로마 가톨릭의 잘못된 잔재들이다. 종교개혁 이후에도 로마 가톨릭의 일곱 성례 가운데 개혁파 교회는 세례와 성찬만은 의식으로 남겨놓았다. 그 결과 개혁파 교회의 표지를 말씀과 함께 성례를 덧붙여서 규정했다. 간단히 말하면 개혁파 교회가 로마 가톨릭의 예전(禮典)을 정당화한 셈이 된다는 말이다. 이로 인한 교회 내의 부작용과 폐해가 너무 크고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더욱 소름이 돋는 일은 개혁파 교회가 이제는 로마 가톨릭의 입곱 성례를 거의 복원해 가고 있는 상황이다. 각종 예전에 따른 형식과 제도가 ‘예배모범’이라는 이름으로 되살리고 있다. 예전 중심에 따라 목사가 사제의 임무나 다름 없는 예전의 집례자로 돌아가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형식 중심에 따라 성도의 외식적인 행위가 너무나 일상화하여 마치 정상적인 신앙생활로 보편화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제도 중심에 따라 성도에 대한 신행(信行) 규제도 더욱 철저히 이루어지고 있다. (1) 예전 중심에 따른 사제복원 개혁파 교회의 예배는 로마 가톨릭에서 사제가 시행하는 예전 중심의 미사를 점점 답습하고 있다. 형식은 다르지만 성격상 미사(missa)나 다름없는 예배 절차에 따라 목사가 종교의식을 집례하고 있다. 종교적인 예전은 우매한 대중들의 종교심을 사로잡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종교적 예전에 따른 의식이 아무런 비판 없이 시행되고 있어 종교개혁 정신을 무색케 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교회 내부로부터 발생하는 부작용는 너무나 크고 매우 심각하다. 성경을 가르치는 목사가 소위 성의(聖衣)라는 제복을 입고 사제 곧 제사장처럼 군림하여 예배 의식을 집례 하는가 하면, 성도의 삶을 하나님께 인도하기 위해 중보자처럼 행세하며 자신의 특별한 역할처럼 여기기도 한다. ㄱ. 제사의 집례자인 목사 현재 개혁파 교회는 잘못된 교회헌법의 예배모범에 따라 목사는 가톨릭과 같은 종교의식을 엄숙히 집행한다. 개혁파 교회 목사가 미사 제도와 예전 절차에 따라서 의식을 행하는 가톨릭의 사제를 닮아가는 실정이다. 교회당 안에 성당(聖堂)의 제단처럼 온갖 기구들을 설치하고 특별하고 거룩한 것으로 구별하여 관리한다. 그리고 마치 자신이 사제(司祭)나 된 것처럼 소위 성의(聖衣)라는 ‘가운’을 만들어 입는다. 그리고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처럼 행세한다. 목사는 어디까지나 성경을 가르치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전무하는 자다. 그런데 목사가 사제로 둔갑하여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완성하신 영원한 제사를 자신이 다시 집례하는 제사장이 되고 있다. ㄴ. 교인의 중보자(仲保者)인 목사 개혁파 교회 목사가 하나님과 성도를 화목케 하는 중보자처럼 행세하고 있다. 곧 성경을 가르치는 목사가 하나님과 인간의 중보자로 둔갑하여 그리스도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이로 인해 성도들은 목사가 하나님의 전권대사(全權大使)인 줄로 믿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러한 사실에 익숙한 성도들은 목사 없이는 신앙생활이 불가능한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성도 자신의 소원을 목사에게 의뢰하면 속히 이루어질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목사에게 인정받는 것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과 같다는 이보다 더 답답하기 이를 데 없는 어리석은 소신을 가지고 있으며, 그 결과 목사에 대한 온갖 충성을 아끼지 않는다. (2) 형식 중심에 따른 외식행위 개혁파 교회가 예배를 비롯한 각종 행사에서 형식을 갖춘 온갖 의식을 집행한다. 그리고 그러한 의식 행위가 경건한 행위라는 미명 아래 정당화하여 대부분의 현대 교회에 보편적 현상이 되었다. 개혁파 교회가 로마 가톨릭과 다름 없는 형식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이는 교회가 지켜야 할 진리의 내용이 부실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형식을 강조하면 외식적 행위가 강화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성도의 신앙생활에서 외식적 행위가 공공연하게 조장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교회 내부의 부작용이 매우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성도가 모이는 수준 높은 ‘진리의 전당’인 교회당이 하나님께 특별한 의식으로서 ‘예배’를 거행하는 구별된 장소인 신전(神殿)으로 둔갑해 버렸다. 그리고 목사나 봉사자들은 구별된 외형으로 종교적 품위를 위장하기 위해 성의(聖衣)라는 것을 입고 의식에 참여하는 외식 행위가 조장되고 있다. ㄱ. 의식을 집행하는 성전 개혁파 교회는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모여 성경을 배우고 교제하며 선한 일을 도모하기 위해 교회당을 마련한다. 그런데 더러는 교회당 건물을 그리스도의 몸 된 신령한 교회와 같은 것으로 여기는 자들이 있다. 그 결과 개혁파 교회의 일부 성도들에게도 교회당은 로마 가톨릭의 성당처럼 거룩한 신전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많은 한국의 개혁파 지도자와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거액을 들여 교회당을 웅장하고 화려하게 건축하여 ‘성전’으로 여기며 우상화하고 있다. 이는 잘못된 종교의식에 사로잡힌 결과이며, 성경의 가르침과는 너무도 이질적인 이방종교의 헛된 열정과 노력에 불과하다. 결국 인간의 손으로 지은 집을 거룩한 제사 의식을 집행하는 하나님의 집으로 빙자하여 성전으로 둔갑시고 있다. ㄴ. 권위를 위장하는 성의 개혁파 교회에서는 오직 성경을 가르치는 사역을 감당해야 할 사명자인 목사가 이제는 소위 성의라는 거룩한 옷을 화려하게 만들어 착용하는 일이 정상적인 관례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목사 자신의 품위와 권위를 높이려고 위장하려는 몸부림의 발로다. 그리고 성도를 사랑으로 섬겨야 할 목사가 도리어 섬김과 존경만을 받으려는 잘못된 욕심에서 나오는 행위다. 또한 목사 자신의 권위를 극대화하려는 치졸한 위장술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위장을 반복하면 외식을 낳게 되고 그 외식은 반드시 위선을 조장한다. 따라서 목사의 권위를 위장하는 성의야말로 반드시 철폐해야 할 외식과 위선을 조장하는 폐습이다. (3) 제도 중심에 따른 신행(信行)규제 개혁파 교회에서 목사가 헌법에 규정한 각종 제도에 따라 성도의 신앙행위를 규제한다. 곧 목사가 성도에 대한 신앙지도라는 미명 아래 성도의 생활을 통제하는 경우가 허다하게 일어나고 있다. 성도의 생활은 교회의 잘못된 제도적 규정에 따르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성경을 깨달아 믿는 신앙적 행위의 결과이어야 한다. 그런데 성도들은 각종 제도에 의해 신앙의 행위에 대한 크고 작은 규제를 당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신앙양심의 자유을 누리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점점 종교적 억압과 규제 속으로 빠져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로 인해 성도의 심리적 부담은 매우 크며 영혼의 자유로움은 심각한 상태에 처해 있다. 곧 교회의 제도적 규범에 의해 복종을 강요당하는가 하면 또한 극심한 종교적 강압의 형벌이 주어지는 경우도 있다. ㄱ. 복종을 강요하는 제도 교회지도자들 중에는 성도에게 잘못된 법적 규범에 따른 제도를 악용하여 복종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의 사자(使者)인 목사에게 절대 복종하는 것을 신앙생활의 필수요건이며 의무조항으로 가르치는 것은 목회의 근본처럼 팽배해 있다. 그리고 불순종하면 그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 따른다고 위협하고 두려움을 안겨다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설교 내용은 성경에 어긋나는 것으로 성도에게 무거운 짐만 지워준다. 성도란 평생 그저 헌신이나 봉사만 죽도록 해야 하는 자라는 숙명적인 의식이 자리 잡은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수많은 성도들은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하면서도 신앙양심의 자유를 거의 누리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있는 실정이다. ㄴ. 성도를 통제하는 제도 교회지도자들 중에는 잘못된 교회제도에 의해 성도를 여러 모로 통제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단을 경계한다는 목적으로 다른 교회출석은 물론, 성경말씀도 다른 목사한테 배워서는 안 되고 오직 담임목사인 자신에게서만 배우고 충성하도록 강요한다. 만일 거역하는 행위가 발각될 경우에는 혹독한 책망이나 심할 경우는 출교까지도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목사가 거의 신권에 가까운 막강한 세도를 부리고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성도들은 신앙생활에서 심한 통제를 당하고 있으며 누려야 할 신앙양심의 자유를 억압당하는 경우가 많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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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용기 원로연구원 (성경신학학술원,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명예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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