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좌담 ㅡ김동원 목사(성은교회 원로 목사, 한국 기독교장로회 제89회 총회장) 정확한 진단과 올바른 대안을 찾아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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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먼저 ‘한국크리스천신문’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 140년 전통의 한국 장로교 역사의 한 흐름을 이어온 ‘한국기독교장로회’ 원로이신 목사님을 뵙게 되어 큰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 개혁을 위해 문제 전반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단해 주시고 성경에 근거한 대안도 말씀해 주시길 바라면서 목사님과 인터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한국크리스천신문을 보고 있는 초교파 독자들을 위해 ‘대한예수교장로회’와 ‘한국기독교장로회’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한국 장로교회는 크게 통합, 합동, 기장으로 나눕니다. 통합 측은 한경직 목사님, 기장 측은 김재준 목사님과 송창근 목사님, 합동 측은 박형룡 목사님이 교단 설립의 중요한 분들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모두 개혁파 신학을 추구했던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신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똑같이 신학을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사상과 신학적 관점은 달라졌습니다. 한경직 목사는 보수로, 김재준 목사와 송창근 목사는 진보로, 박형룡 박사는 극우적인 보수신학으로 갈라졌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선교사들이 갈라지니 한국 장로교도 선교사들을 따라서 같이 갈라진 것입니다. 그 후에 통합 측과 기장 측은 신학교 교수들이 교류하면서 신학적으로 가까워지고 에큐메니칼 운동도 함께 실천하려고 했던 반면, 합동 측은 교류 없이 보수적 전통으로 남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장로교는 크게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져 있고 두 진영 모두 명분은 신학적 차이라고 하지만, 이면적으로 보면, 합동 측은 황해도 파, 통합 측은 평안도 파, 기장 측은 함경도 파라는 사실상 지역 분열이라는 뿌리가 내려져 있습니다.
신학적 차이로 보면 보수 측은 축자 영감설, 진보 측은 목적 영감설을 주장합니다. 축자 영감설은 성경은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다는 것이고, 목적 영감설은 성경 구절 자체보다 내용이 내포하고 있는 뜻을 밝히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또 구원론에 있어서 보수 측은 개인 영혼 구원을 통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에, 진보 측은 사회구조 속에 악이 들어 있으므로 영혼 구원 외에 사회 구원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공통점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2. 한국 장로교가 태동했던 역사를 보면 파란만장한 혼란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조선 말기와 구한말,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군사 혁명과 민주주의의 격동기 등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혼란 속에서 이 땅에 교회가 설립되도록 하셨습니다. 한국 교인들이라면 누구나 기억해야 할 한국 교회 역사를 소개해 주시길 바랍니다.
하나는 1919년 3.1 운동 때 기독교가 불교, 천도교 등 타 종교를 포용하면서 3.1 독립운동 전국 확산의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만큼 한국 기독교의 뿌리에는 리더십과 포용력, 개인주의를 넘어서는 결합력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또 하나는 꼭 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역사입니다. 박정희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총으로 정권을 장악했을 때 대부분의 한국 교회가 박정희를 메시아로 받들고 군사 독재에 거의 항거하지 못한 점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다수 독일교회가 히틀러를 메시아로 찬양할 때 소수의 독일 목사와 신학자들이 ‘바르멘 신학선언’을 하며 나치의 무서운 총칼 앞에서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히틀러에 저항했던 것처럼, 우리 한국 교회에도 군사 독재 시절에 억압과 고문, 간첩 누명을 쓰면서도 감옥에서 신앙고백을 지켰던 분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신앙고백적 지조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3. 장로교 교리를 요약하고 있는 12신조 제1조항을 보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 신조는 장로교뿐 아니라 성경을 보는 기독교 모든 교단이 따라야 하는 원리라고 봅니다. 그런데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으로서 성경의 권위’가 과연 잘 보존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목사님이 목회를 시작하셨던 70년대와 지금의 교회를 비교해서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일부 교역자들과 신도들이 이중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남이 볼 때는 착한 척하지만 안 보면 욕망의 노예가 되어 자기 절제를 하지 못하고 탈선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물질 만능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탈선과 비행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이것은 신앙 기초교육, 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 인격 소양이 없는 자들이 목회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목회자 개인의 욕망을 교회와 성도를 위해 절제하기는커녕 목회자의 사명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지도자 품격과 양심마저 저버린 자들이 많다고 봅니다. 성경 말씀과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으며 개인의 목회 성공을 위해 성경마저도 이용하는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봅니다.
4. 지난달 10월 14일 자 SBS 보도를 보면 한국에는 390여 개의 기독교 교단이 있으며 총회 신학대학원은 400여 개가 된다고 합니다. 보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를 수호하려는 신학교보다 하나님과 성경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는 곳들이 심각할 정도로 난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총회 소속 신학대학원의 문제점과 아울러 어떻게 하면 신학대학원들이 한국 교회 개혁에 기여할 수 있는지도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신학교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독교와 목회자의 본질을 엄격하게 교육하는 커리큘럼 구성입니다. 진리에 바탕을 둔 신학과 교회를 사랑하는 목회자의 인격과 품성, 사회적 교양, 봉사와 희생을 위한 영성 교육의 중요성을 깨우치는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 신학대학원의 커리큘럼입니다. 인간의 고상한 품격과 신앙적인 고매한 영성을 단계적으로 심화할 수 있는 교육 과정이 정말 중요합니다. 나아가 세상을 거시적으로 볼 수 있는 지성과 역사의식과 과학적 지식까지 포괄할 수 있는 교육이 대학원에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획일적인 교리주의에 빠져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적대하고 원수가 될 것이 아니라 보수와 진보 신학자, 기타의 사상들을 모두 소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경험의 틀에 갇힌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도록 항상 스스로 돌아봐야 합니다. 특히 총회 소속 신학대학원은 자신이 속한 교단 신학과 교리 신학만 제한해서 공부하기보다 다른 교단의 신학도 섭렵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야를 넓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한 한 함께 할 수 있는 신학 정립을 위해 신중하면서도 개방적인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5. 한국 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비판할 때 많은 원인이 목회자들에게 있다고 합니다. 현재 한국 교회에 과거부터 지금까지 누적된 가장 심각한 부패는 무엇인지, 꼭 개혁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목사님의 진단과 극복 방안까지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교회에 대한 사명감 없이 목회를 직업으로 대하는 자세가 더욱 교회를 세속적으로 만들었다고 봅니다. 인간은 모두 타락하고 부패했는데 거듭나지 않고 말씀의 인도를 받지 않으면 밖으로는 신앙적으로 보이고 성경을 읽고 전달한다고 하더라도 목회자의 내면은 자기의 욕망이 지배하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대중들을 많이 모아 과시하는 것을 삼가야 합니다. 많은 사람을 휘어잡기 위해 집회 분위기를 열광적으로 몰아가기보다 경건한 수도자의 진지한 분위기로 성도들을 안내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너무나 당연한 것은 말씀과 성령으로 육체의 욕망을 명확하게 분별하고 또한 극복하는 것입니다.이를 위해 목회자들은 세상의 물질로부터 타락하고 부패하는 것을 철저히 경계하고 또한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성적인 부패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6. 한국 교회 개혁과 관련해서 성경에 나타난 모델을 소개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울러 목사님의 목회 과정에서 교회 개혁과 관련해서 특히 노력을 기울인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개혁 관련 인물로 구약에 나타난 학사 에스라와 신약의 바울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학사 에스라는 포로에서 귀환한 역경에 처한 유대 나라를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천막을 만들면서 자비량 선교로 십자가의 신앙을 지켜나간 바울의 순교 정신은 한국 교회 개혁의 귀한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회에서 버림받은 소외계층, 노동자, 빈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한때는 안양 철도공작창에서 산업선교를 하였고, 빈민 지역에서 교회를 개척하면서 야학 개설, 부모 없는 아이들 돌봄, 공장을 만들어 직업 만들어 주기 운동, 병든 자들을 위해 무료 치료의 길을 열어 여러 생명을 살리는 일에 힘쓰기도 했습니다.
7. 목사님께서는 2004년에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도 역임하셨습니다. 당시 하신 말씀을 보면 ‘기초를 다시 쌓는 심정으로 일하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장로교의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에 기초를 두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총회장 이후 목사님 교단을 포함해서 한국 장로교 교단이 과연 이러한 기초에 충실했는지 평가해 주시길 바랍니다.
한국의 교단들은 신앙의 기초에 충실하기 위해서 제자훈련, 성경 외우기, 성경 필사 등 성경 공부를 많이 하도록 인도했습니다. 다소의 결실은 있었지만, 상당 부분 외식과 형식으로 흘러갔으며 내실을 다져 중요한 인격적 변화를 가져오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봅니다. 무조건 성경 구절을 암기한다고 생활의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데, 실천할 수 없고, 그렇다면 내면의 영적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8. 한국 교회의 교회학교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주일학교 성경 공부가 사라진 교회가 60 프로 이상이라고 합니다. 한국 교회 차세대 신자 양육이 위급하고 암울한 상황이라고 봅니다. 어떤 대안이 있을지 목사님의 생각을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과거에는 교회에서 다방면의 지식에 대해 배울 게 많았기 때문에 고등 지식을 배우려고 교회로 모였지만, 현재는 교회의 교육 방법과 교육 수준이 세상 교육의 방법보다 떨어지고, 무미건조하게 성경 구절을 얘기하다 보니 관심과 흥미를 앗아갑니다. 세상 교육보다 교육 기술이 앞서야 하고, 모든 교육의 내용이 재미있어야 합니다. 동아리를 발전시켜서 재능 기부 등으로 재미있고, 강의 방법이 개발되어 자발적으로 찾아오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결혼하지 않는 젊은 사람들이 늘고, 자녀를 출산하지 않는 세태입니다. 이에 대해 교회는 계속해서 국가에 대해 실행 가능한 사회복지제도가 무엇인지 개발하여 자극을 줘야 한다고 봅니다.
9. 2년 전입니다. 2018년 10월에 목사님께서는 ‘한국 교회의 바람직한 하나 됨을 위한 방법론 대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목사님께서는 보수와 진보 등 교단마다 서로 다른 다양성을 아우르는 큰 지붕을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교단을 이끌어 보시기도 했던 교단의 원로로서 사회적으로도 비난받고 있는 한국 교회의 올바른 개혁을 위해 시급한 빅텐트인 큰 지붕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교회가 보수는 보수끼리, 진보는 진보끼리 이렇듯 끼리끼리 모입니다. 큰 지붕은 국가 정책에 대한 건의나 사회봉사 면에서 공통점을 찾아 진보와 보수가 큰 협의체를 만들고, 그 지붕 아래서 대화를 모색해 가자는 취지였습니다.
10. 코로나19 감염병이 세계적으로 점점 대유행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 역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코로나19 감염병 확산에 대해 ‘하나님의 섭리’의 관점에서 목사님은 어떻게 진단하고 어떤 교훈으로 받아들이고 계시는지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소돔과 고모라 시대, 노아 홍수 시대에 하나님께서 부패한 세상을 다 쓸어버리셨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는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고 봅니다.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으로 바로 서야 될 때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가 자기 절제를 하지 못하고, 외적으로 방만하여 내실 있게 하지 못하고 올바르고 건전한 신앙인의 품격을 지키지 못하고 있기에 자신을 돌아볼 기회로 이러한 고난을 주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면도 있습니다. 코로나19를 통해 목회자를 비롯해 모든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회개하는 운동을 스스로 전개해야만 하고 이웃과 함께 하는 이타적인 신앙을 정립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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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으로 본 교회 개혁 기획대담의 방향성 |
정확한 진단과 올바른 대안을 찾아서- 대담을 마치며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