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헌법(憲法) 비판 - 총정리 1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헌법(憲法) 비판 - 총정리 1
본 기자는 지난 호(191호)까지 총 10회에 걸쳐 좌담회를 기획하고 진행했다. 처음에 짐작했던 것보다 좌담회를 통해 진단한 장로교 헌법의 문제점은 매우 심각한 것으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본다. 기자는 그 좌담회에서 다루어진 내용을 2회에 걸쳐 총정리를 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정리 내용을 한국교회 많은 성도들과 공유하길 원하며 아직도 성경 진리를 제대로 몰라 종교적 의식에서 허덕이는 한국의 많은 성도들의 영혼이 깨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독자들은 숙고하여 함께 읽고 기독교의 유일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 성경진리로 돌아오는 계기가 되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정리하는 방식은 10가지 명제를 우선 제시하고 이에 대한 헌법 내용과 좌담회에서 다룬 비판의 요점을 요약하는 방식을 택하고자 한다.
1. 장로교 헌법(憲法)은 성경적 근거가 매우 빈약한 웨스트민스터 헌법에 기초한다
웨스트민스터 헌법(1649년)은 한국 장로교 헌법의 뿌리이며 구체적으로는 1788년 미국장로교 뉴욕 총회에서 웨스트민스터 헌법에 권징(勸懲)조례를 첨가한 헌법을 개정하여 수립한 것이다. 권징조례 첨가는 그 내용을 보면 분명해진다. 주님의 몸 된 교회에 대한 목사의 교권강화가 그 목적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교회 현실에서 성경권위보다는 목사의 권한으로 진리판단은 물론이고, 성도들의 모든 신앙생활이 간섭받고 통제받는 결과를 낳고 있다. 성경적 근거가 빈약한 권징조례는 결국 비성경적 교권(敎權)을 강화하여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성도들의 ‘신앙양심의 자유’를 유린하고 때로는 그 불법이 극에 달하고 있다. 성경진리 전파와 수호보다는 목사들의 교권강화 방향으로 흘러온 헌법은 ‘신조-정치-헌법적 규칙-권징조례-예배모범’으로 그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개혁파장로교의 핵심을 정리한 신조는 그 자체 의미보다는 정치와 권징의 수단으로 전락해 있다. 이 신조가 전제역할을 하여 정치권력이 헌법규칙을 관할하고 성도들에 대한 무제한적 권징이 가능하도록 보장해 준다. 권징으로 장악한 교권을 이른바 예배주도권 장악으로 목사의 강단권 독점이 가능하게 된다.
2. 장로교 헌법 서두에 배치한 ‘사도신경’은 폐기해야 할 중세 로마가톨릭의 잔재다
헌법 서두에 나오는 ‘사도신경’은 신경의 저작자도 불분명하며 성경적 근거도 내용도 기독교 진리 전체를 담고 있지 않다. 현재 예배 의식용으로 전락해 있으며 교단별로 임의로 변경하고 있다. 제목을 보면 마치 2천여 년 전 사도들의 신앙고백으로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사도들의 올바른 신앙고백은 신약성경 전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도전승’을 강조하는 곳은 다름 아닌 로마가톨릭의 교황제 옹호자들이다. 중세 10세기경 신성로마제국의 초대왕 오토 대제(Otto der Große)가 서방교회 공식예배의식 고백문으로 사용하도록 명령하여 가톨릭 미사에 사용한 것이다. 이것이 종교개혁시대를 지나 아직도 철폐되지 않고 있다. 교단별로 마음대로 바꾸어 가면서 마치 미사와 같은 예배의식에 그대로 사용하고자 한다면 이것은 떳떳하지 못한 일일 뿐 아니라, 로마가톨릭의 전통을 따르는 것보다 더 비열한 처사가 된다.
3. 장로교 헌법 구성상 ‘12신조’의 배치는 비성경적 정치를 성경적인 듯 가린 것이다
1항 성경, 2~4항 신론, 5~6항 인간(죄)론, 7항 기독론과 구원론, 8항 성령론, 9항 교회-직분론, 10항 성례론, 11항 성도 의무, 12항 종말론의 12신조는 구조상 그 결론에 도달하면 성도의 실천을 요구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러한 실천에 대한 요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 신앙고백서의 조항들을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대개 처음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인간의 독립된 자유의지를 인정하며 신앙고백의 책임은 결국 인간의 의지가 주관한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인간의 의지를 개혁파 전통과 한국장로교 헌법에서는 성도에게 행위를 요구하는 근거로 삼고 있다. 그래서 12신조는 ‘정치’와 ‘권징조례’ 나아가 ‘예배모범’에 이르기까지 성도들이 목사의 권위에 순종해야만 한다는 규제조항에 근거를 제공하는 꼴이 된다.
4. 장로교 헌법의 ‘성경소요리문답’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전제하는 인본주의의 기초가 된다
‘성경소요리문답 107항’은, 12신조와 마찬가지로 목사들이 성도들을 관리하고 결국 지배할 수 있도록 하는 인위적 법체계를 수립하는 결정적 근거가 되고 있다. 성경요리문답 107항은 12신조의 연장선에 있다. 12신조 1항 성경은 성경소요리문답 1~3항에, 2~4항 신론은 4~12항에, 5~6항 인간론은 13~19항에, 7항 기독론과 구원론은 20~29항에, 8항 성령론은 30~36항에, 9항 교회 직분론은 39~81항의 십계명과 82~90항의 하나님 말씀과 성례와 기도에, 10항 성례는 91~97항에, 11항 성도 의무는 98~107항에, 12항 종말론은 37~38항에 관련된다. 가장 놀란 것은 교회의 직분론 즉 성도들의 의무조항과 관련해서 십계명이 등장한다는 것이며, 이는 목사의 강단권과 성례집행권의 독점을 위한 근거가 된다. 성경소요리문답 다음에 나오는 헌법의 정치와 권징조항을 고려하면 성경소요리문답은 목사의 교회정치를 더욱 용이하게 하는 이론적 근거가 된다. 문답방식, 즉 목사가 묻고 성도가 답하는 방식에서 묻는 자는 대답하는 자에 대해 더 높은 지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 목사 자신도 모르거나 할 수 없거나 책임질 수 없는 사항을 성도에게 고압적 자세로 답을 요구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
5. 장로교 헌법의 ‘정치’ 조항은 성경권위 수호를 법적 제도화에 의존하는 치명적 한계가 있다
헌법의 정치 ‘서문’에는 나라가 없는 일제강점기인 1912년 9월 1일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수립, 6ㆍ25 한국전쟁의 수난, 자유주의 신학의 한국 교회 강타, 문서설과 역사비평학의 도전, 그리고 장로교의 분열역사가 간단히 나온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진리를 확고하게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성경권위에 대한 도전에 대해 총회는 신학적으로 성경의 절대권위를 명쾌하게 변증하거나 확정하지 못했다. 결국 총회의 숫자결의에 의존하여 성경권위를 수호하려고 했다. 문제를 해명한 것이 아니라 일시 봉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진리수호는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정확무오한 절대 진리이다’는 구호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문서설에 명확하게 답하지 못한 채 ‘사이비이단대책위원회’와 같은 그룹들이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 진리/비진리를 가르고 나아가 목사에 의한 목사의 지배가 발생하고 동료 목사들에게도 ‘이단’ 프레임을 씌워 서로 죽고 죽이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6. 장로교 헌법 ‘총론’의 정치형태는 개혁파 정신과 성경의 원리를 상실한 사문화된 조항이다
교회정치 형태에 대해 헌법은 교황정치, 감독정치, 자유정치, 조합정치, 장로회정치로 분류한다. 하지만 현재 장로교정치는 그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모든 정치를 섞어 놓은 형태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목사의 교회 운영 독점은 교황정치 내지 감독정치를 흉내내고 있으며, 목사 자기 마음대로 재정권과 인사권을 쓰려고 자기 말에 순종하는 자들을 모아, 마치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이익단체를 유지하듯, 자유롭게 정치한다고 공언한다. 따라서 현재 ‘장로교정치’는 정체불명의 교단으로 변질해 버렸다. 말이야 개혁파 신학 전통을 따라 ‘신본주의 정치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치리권을 행사하는 말씀중심의 정치’라고 하지만, 이런 정신은 땅에 묻은 지 오래되었다. 장로교의 당회나 노회 그리고 총회가 ‘3심제’를 치리회의 원칙으로 정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적 절차로 보일 허울뿐이다. 현재 대형 교단들의 행태를 보면 3심제는 정치목사들이 자기편을 만들어 이권을 챙기는 수단으로 전락해 버렸다.
7. 장로교 헌법의 ‘양심자유’ 보장과 ‘당회’의 출교권한 행사는 심각한 모순이다
정치원리 1조의 성도 ‘양심의 자유’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양심의 자유를 주었으며 성도들은 말씀에 근거하여 누구라도 자유롭게 판단할 권리가 있으며 그 권리는 침해당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2조에 가보면 양심의 자유는 소수에 의해 통제당할 수 있다고 한다. 원리 제3조에서는 성도들의 양심의 자유가 더 심각하게 통제받는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목사는 교회 직원(職員)을 세워서 성도 양심의 자유를 관리하고 책망하며 출교(黜敎)까지 할 수 있도록 한다. 출교까지 목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양심의 자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출교는 말 그대로 성도의 자격을 박탈하고 교인을 교적(敎籍)에서 제명하여 내쫓는 일이다. 세속의 국가도 극형에 처한 국민의 국적(國籍)을 파내지는 않는데, 장로교 헌법은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를 교적부에 파내어 버린다.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악법 중의 악법이다.
8. 장로교 헌법 ‘교회’와 ‘지교회’ 조항들은 성경적 원리에서 벗어난 치명적 한계가 있다
교회치리권의 원리는 절대 유일의 법인 성경진리의 전달이라고 한다. 즉 성경이 신앙과 행위에 대한 유일한 법칙이라는 뜻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목사는 시간과 장소와 규모와 상관없이 성경진리만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이 전부이어야 한다. 하지만 헌법의 ‘교회의 설립’에 대한 조항에 가면 교회를 ‘무형교회’와 ‘유형교회’로 나누고 있는데, 교회의 머리는 한 분이시기 때문에 양분될 수 없다. 마치 인간의 영과 육의 관계와 같아서 양분되면 육이 죽음에 이르기 때문이다. 로마가톨릭의 교회관은 ‘이층 구조’ 정치체제인 지배층인 주교와 피지배층인 신도의 구별을 장로교 헌법이 답습하여 지배층 목사와 피지배층 교인이라는 수직구조의 지배체계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가령 성도들이 ‘지교회(支敎會)’를 만들고자 모였을 때도 교회헌법이 정한 장소와 시간에서 목사를 중심으로 예배가 가능할 때 교회로 인정받는다. 이러한 형태만 교회라면 중국과 북한 그리고 중동지역에서 목숨을 걸고 모이는 ‘지하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조항에 보면 ‘세례교인 15인 이상’이라거나 ‘노회가 청원 허락을 받아줘야 한다.’거나 ‘당회가 조직되지 않으면 미조직교회’라는 조항은 정말로 악법 조항이다.
9. 장로교 헌법의 ‘교회직원’ 조항은 주의 지체를 ‘종’으로 만든 심각한 악법이다
교인(敎人) 조항을 보면 목사의 지배를 받는 피지배층도 다시 계급구조로 만들어 놓는다. 정말로 인위적이고 억압과 굴종을 강요하는 조항이다. 원입, 학습, 유아, 세례, 입교인으로 분류하고 등급이 올라가려면 목사에게 봉사하고 헌금을 늘려야 직위가 향상되고 그렇지 않으면 평생 ‘평신도’로 산다. ‘공동예배 참석-주일성수-헌금-전도-봉사-충성-교권 준수-전적 순종’은 교인의 필수의무다. 평생 교회에 봉사하고 헌금했더라도 목사를 비판하면 치리를 받고 쫓겨나야 한다. 교인 자격에 대해 헌법은 이렇게 규정한다. ‘수찬정지, 이명, 제명, 출교 등에 의하여 세례교인의 자격이 상실되었을 때는 교회의 재산권에 대한 권한이 자동 상실된다.’
10. 장로교 헌법의 ‘목사’ 조항은 ‘사도권’을 목사 직위 보장의 수단으로 삼는 불법 조항들이다
‘목사’의 조항에는 비교적 구체적으로 많은 항목(19개)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목사의 신분을 ‘종신토록’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다. 가령, 위임목사, 임시목사, 부목사, 전도목사, 특수전도목사, 선교사, 원로목사, 공로목사, 무임목사, 지방목사, 기관목사, 은퇴목사 등 구체적으로 구분하는 이유도 목사의 신분을 여하한 보장해주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보장을 위해 헌법은 가장 먼저 목사의 권한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권을 위임받은 자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개혁파신학의 교회관을 근본적으로 전복시키는 정말로 심각한 문제다. 사도권을 참칭하는 대표적인 거짓 집단이 로마가톨릭의 교황제인데, 현재 한국의 장로교가 이것을 답습하고 있다. 개혁파교회 목사들 중에는 교황처럼 자신도 사도권을 가진 자로 착각하는 자들이 많다. 성도들에 대해 성경에 대한 무지(無知)로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자신을 메시아라고 속이는 거짓 지도자들이 주님의 몸 된 한국교회를 불법의 소굴로 만들고 있다. 헌법은 목사에 대해, 교회를 치리하는 자, 양 무리 인도자, 그리스도의 종, 그리스도 사역자, 청지기, 장로, 교회의 사자, 그리스도의 사신(使臣), 교사, 전도인으로 규정한다. 그런데 이러한 직분은 특정한 목사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모든 지체들에게 은사(恩賜)로 주신 직분이다. 성경에도 등장하지 않는 목사(엡 4:11의 ‘목사와 교사’는 한 단어로 ‘목자 곧 진리로 성도를 양육하고 돌보는 자’라는 뜻임)에게만 앞의 직분들을 부여할 수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지체들이 모두 비진리를 척결하기 위해 교회를 진리로 치리하는 동역자이고 목동이고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역자이고 교사이고 전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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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체제개혁 총론 (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