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특별기획

 
작성일 : 14-08-11 20:0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1만 시간의 법칙?


세계적인 작가 글래드웰(M. Gladwell)은 2009년 아웃라이어(Outliers: The Story of Success)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말을 언급한 바 있다. 이상훈은 그것을 책 제목으로 삼아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다. 1만 시간의 법칙! 대부분의 성공학 서적들이 그렇듯 글의 구성은 일반적 패턴을 벗어나지 않는다. 말인즉,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선천적 재능보다 1만 시간으로 상징되는 꾸준한 노력에 달려 있다는 의미다. 1만 시간은 하루 3시간, 일주일에 20시간씩 총 10년 동안 끊임없이 노력한 시간과 같다. 이는 상식이다. 동화 및 우화에서, 위인전에서, 매스컴에서 혹은 구전에서 구전으로 전해지고 일부는 각색되어 귓전을 울리고 뇌리에 박힌다. 그래서 “하면 된다.” 또는 “뿌린 대로 거둔다.”다. 경향신문(7월 26일자)에서 축구선수 박지성의 핸디캡과 이를 극복한 성공담은 위와 같은 생각이 다수에게 어떻게 진리로 박음질 되는지를 알려주는 한 가지 사례일 뿐이다. 이러한 생각의 틀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다.

20여 년을 교육자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점은 이러한 생각들에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학생들의 개인차가 심하다. 난독증인 아이에게 매일, 1년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게 하지만 개선되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기초 수학조차 뒤돌아서면 이해력이 원시 상태로 복귀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반면, 하나를 알려주면 하나만 아는 아이 또는 서넛을 아는 아이, 심지어 열을 아는 아이들도 있다. 주로 지적인 면에 치중하는 교육의 특성상 아이들의 능력 면에 국한시킬지라도 사람의 능력은 타고난다. 프로스포츠 선수들의 양상을 보면 좀 더 납득하기 쉽다. 현 프로농구 KCC 감독인 허재는 선수 시절 지나친 음주로 인해 사건사고를 많이 일으켰지만, 기량만큼은 최고였다. 프로야구 한화 코치인 이종범이 선수시절, 술이 덜 깬 상태에서 홈런을 비롯한 타격의 정수를 보여준 사례는 숱한 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럼에도 직업 운동선수의 대부분은 밤낮없이 땀을 흘려 1군에 올라서려고 하고 더러는 성공하지만, 눈물 젖은 빵을 삼키는 대부분은 이름도 없이 사라진다. 그들이 노력을 덜 해서가 아니라 타고나는 재능의 차이인 것이다. 이상훈은 “1만 시간의 선순환은 바보도 전문가의 반열에 올릴 수 있다”고 필자의 의견에 반박할 것이다. 아울러 똑같이 1만 시간을 들여 노력했지만, 결과가 천차만별인 까닭은 ‘연습의 질’ 때문임을 강조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 미시간 주립대 연구 결과, 노력이 실력에 미치는 영향은 게임이 26%, 음악이 21%, 스포츠는 18%라고 한다. 특히, 학술·교육 분야에서 노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4%에 불과했다(중앙일보, 7.17). 사람의 성공은 꾸준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선천적 재능이 필수적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진리 행세를 했던 노력만큼의 결실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물론 그 말은 사기는 아니다. 실례는 우리 주변에 널려있다. 아버지가 아이를 앞에 두고 이웃집 철수네 이야기를 한다. 철수가 가난한 집에서 밤낮없이 노력한 결과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성공 가도를 달렸다. 그러니 너도 철수처럼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굳게 먹은 아이는 초반에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러나 해도 해도 나아지지 않았고 곧장 공부에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평범한 삶을 살게 되었다. 그 아이가 성공하지 못한 것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노력하지 않았기에 실패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성취하려는 마음의 자세, 즉 마음을 다잡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것조차 선천적이다. 그런 면에서 누구든 이루어낸 결과를 자신의 남다른 노력으로 귀결시켜서는 안 된다. 타인을 향해 “머리는 장식용이냐?”라고 조소하는 것은 하나님이 웃을 일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큰 줄기만이 아니라 곁가지에 곁가지, 우리가 생각조차 못한 ‘설마 여기까지?’ 역사하신다. 그런즉 목이 뻣뻣할 일도 없고 자녀들을 공부 문제로 힘들게 하며 학습의 결과를 자녀의 게으른 탓으로 돌릴 일도 없다. 우리는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을” 뿐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진희 집사 (장안중앙교회)

우리에게 도덕교육이란
혁신교육, 두 번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