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특별기획

 
작성일 : 22-02-15 10:3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W.C.C.의 사회구원적 기독론에 대한 비판적 분석


교회 개혁에 대한 연속 기획으로 본 호부터 몇 차례 교회와 신학 분야에서 교인들이 꼭 알아야 하는 문제를 전문 지식을 기반으로 알리고자 합니다. 이 논문은 저자의 허락을 받았으며 논문 전문 그대로 게재합니다. 아울러 본보의 견해와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도 알려드립니다.


1. 서론

2. WCC와 사회구원
  2.1 사회구원 단체 구성을 위한 교회 연합
  2.2 정의와 평화
  2.3 사회구원과 종교 다원주의

3. WCC의 기독론
  3.1 하나님, 구세주, 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3.2 유사 기독론

4. 결론





* 논문의 출처. 발행기관: 개혁신학회, 간행물: 개혁논총 19권 0호, 발행 연도: 2011년, 페이지: 111-145(35pages)


2.2 정의와 평화

WCC는 총회를 거듭할수록 에큐메니칼 운동 초창기부터 제창되어온 ‘정의와 평화’의 이름으로 사회구원적 활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시행하였다. 비록 세계 복음화의 당위성이 주류를 이루었던 1910~20년대 초에도 개인구원보다는 사회구원적 선교론이 부상되고 있었다. 이는 1910년에는 비기독교적 종교를 복음화의 대상으로 여겨졌었지만, 1차 세계대전(1914~18) 이후 기독교 세계는 자신감을 잃고, 더 이상 타종교를 미정복 지역으로 여기지 못하게 되어서였다. 나아가 WCC 총회는 물론 그 이전의 신앙과 직제 운동에서는 본격적으로 복음 전도의 열망을 갖지 못하면서, 복음화를 정의와 평화의 이름으로 구현시킬 사회 참여와 동일시하려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전도에 대한 개념의 급격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복음 전도의 당위성이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1차 총회에서는 유대인에게도 복음이 선포되어야 할 것을 주문하기도 하였다. 적어도 1952년 빌링겐(Willingen)에서 모인 I.M.C. 대회 전까지는 어느 정도 복음 선포를 교회의 사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빌링겐에서 모인 I.M.C.(세계 선교협의회, 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이하 IMC) 대회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수용하여 복음주의적 선교의 폭을 사회구원적 영역으로 확장시키게 만들었다. 이후 9년 뒤 1961년 뉴델리에서는 제3차 WCC 총회를 통해 WCC가 IMC를 흡수 통합하기에 이르렀고, 1968년 4차 총회(웁살라)에서 WCC는 이 missio Dei 선교 개념을 ‘인간화’의 개념으로 발전시키게 되었다. 이 대회에 참가한 훅스트라(Hoekstra)는, WCC 총무인 포터(Potter)가 교회의 선교를 모든 형태의 압제로부터 해방을 위한 투쟁이며, 보다 정의로운 사회 건설의 목적과 동일시 여겼다고 비판한 것은 옳았다. 이미 1954년 2차 총회(에반스톤)에서는 복음전도를 사회 참여 속에서 정당화하는 것은 물론, 개종에 대해서도 침묵하기도 하였다. 나아가 1968년 웁살라의 4차 총회에서는 개종의 불필요성은 물론, 복음 전도를 하나의 사건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서 보고 해방된 삶과 동일시하였으며, 따라서 기독교와 타종교를 구분하는 것을 불필요하게 하는 등 오늘날 최대 논쟁 주제인 WCC의 종교다원성을 출발시키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특히 이 총회에서는 missio Dei를 선언하면서 선교에 대해 전통적인 개념으로부터 급진적 변화를 모색하였으며, 그 실례로서 선교의 우선순위를 가난한 자의 편에 서는 자리에 두고 정의와 평화를 위한 해방의 투쟁에 교회가 나설 것을 제시하였다. 이제 복음 전도는 완전히 그 의미를 상실하였다. 1973년 방콕 선교대회에서는, 전도라고 해도 그것은 복음전도와 사회관심을 의미한다고 말하는 ‘총체적 전도’(‘holistic evangelism’)로 포장할 뿐, 실제로 전도는 사회적 관심사에 참여하는 행동으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자유케 하시며 하나 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주제 하에 1975년 제5차 나이로비 총회에서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사회적, 정치적 참여는 동일 범주에 속한다는 사실을 공고히”하는 등 인권에 대한 헌신과 부정의에 대한 투쟁을 계속할 것을 선언하였다. 이제 mission이란 단어는 이전에 그리스도인의 가슴을 설레게 했었으나 이제는 그 맛을 상당 부분 상실하였다. 새로운 언어가 나타난 것이다: ‘대화’로. 1968년 웁살라에서 대화란, 동료들에게 자신을 참된 겸손의 사람으로 여기고 이들을 인격체들로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다운 접근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이제 세계 선교 및 전도 명령을 새롭게 해석한 교회는 다양한 종교의 대표들과 함께 만나 서로 의논하는 모임으로 조직화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된 1차적 원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기독교가 정복자적, 제국주의적 선교에 대한 반성으로 말미암아 점차 다원주의적 경향으로 불가피하게 발전시킨 선교신학적 자기성찰이요, 2차적으로는 사회구원적 기독론과 교회론이 낳을 수밖에 없는 태생적 결과였다.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교회가 부정의, 핍박, 분쟁의 장소를 화해와 평화, 정의를 실현하게 하는데 missio Dei 개념은 매우 유용한 것이었다. 더 이상 복음화, 개인구원, 전도 개념은 등장하지 않고 사회구원적 활동에만 집중하였다. 8차 WCC 총회(하라레, Harare, 1998)에서 비록 선교 목적의 의문을 다시 제기하기도 하였지만, 결정적 답은 제시되지 못하였다. missio Dei로 모든 선교와 전도에 대한 질문에 답하면 그만이었다.
특히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더 이상 기독교의 우월주의 사상은 자리를 할 수 없다는 현실적 한계를 핑계로 모든 전통적 선교와 전도, 개인구원에 관한 서술은 사라지고 만다. 오직 WCC가 처음부터 관심을 집중한 정의와 평화의 세계를 교회의 숭고한 사명으로 생각하고 지속적으로 사회구원적 활동에 관한 주제에 집중하였다. WCC는 창립 총회부터 9차 총회(뽀르토 알 레그레, Porto Alegre, 2006)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인 구원관에 대한 이해는 거의 거론하지 않으면서, 일관되게 ‘책임사회’에 대한 관심을 표명해왔으며, 그 관심사는 ‘사회해방’과 ‘인간성’의 구현이었다. 최근에 특히 집중 조명 받는 WCC의 종교 다원주의적 경향도, 비록 WCC 초기에서보다는 1960년대부터 타종교에 대한 관심의 폭을 더 넓혀가기 시작하여 최근에 매우 뚜렷하게 종교다원주의적이라 보일 만큼의 선언을 하고는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WCC의 초기에 생성된 사회구원적 기독론, 교회론, 인간론의 측면에서 파생된 것이다. 예를 들어, 세상에 평화와 정의를 세우며, 자연과 인간의 공존관계를 추구하는 일에 있어서 기독교인 못지않게 타종교인들도 이러한 사역에 탁월한 지혜와 영감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에 이들과 대화하는 것은 WCC가 추구하는 사회구원적 활동에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타종교와의 대화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타종교화의 대화를 선언하는 것은 시간문제였었다.

2.3 사회구원과 종교 다원주의

WCC가 넓게는 50년 전부터, 가깝게는 최근 20년 전부터 종교 간의 대화를 주요의제로 삼으면서 외형적으로는 종교의 다원성을, 내용적으로는 종교 다원주의적 경향을 암시하였는데, 이는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이미 WCC가 출범할 때부터 진지하게 고민하던 숙제였다. 종교 간의 대화는 WCC가 지향하는 사회구원적 틀에서 미래에 불가피하게 선택할 주제였다고 하겠다. 하지만 종교 간의 대화는 엄밀하게 말하면 WCC가 출범하기 전부터 서구 기독교에서는 그 싹이 트고 있었다. 종교 간의 대화 촉구는 이미 1921년에 오토(Rudolf Otto)에 의해 강력하게 주장되기도 하였고 심지어 어떤 이에게는, 종교는 근본적으로 하나라고 주장하기도 하였었던 것이다. 이는 아마도 서구 기독교가 1차 세계대전 후, 정복주의적, 제국주의적 선교에 대한 반성의 일환으로 타종교에 대해 그동안의 ‘마음의 빚’ 같은 것을 갚을 생각을 해왔기 때문에 제기되었던 것 같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권문상 목사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W.C.C.의 사회구원적 기독론에 대한 비판적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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