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W.C.C.의 사회구원적 기독론에 대한 비판적 분석
교회 개혁에 대한 연속 기획으로 본 호부터 몇 차례 교회와 신학 분야에서 교인들이 꼭 알아야 하는 문제를 전문 지식을 기반으로 알리고자 합니다. 이 논문은 저자의 허락을 받았으며 논문 전문 그대로 게재합니다. 아울러 본보의 견해와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도 알려드립니다.
1. 서론
2. WCC와 사회구원
2.1 사회구원 단체 구성을 위한 교회 연합
2.2 정의와 평화
2.3 사회구원과 종교 다원주의
3. WCC의 기독론
3.1 하나님, 구세주, 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3.2 유사 기독론
4. 결론
* 논문의 출처. 발행기관: 개혁신학회, 간행물: 개혁논총 19권 0호, 발행 연도: 2011년, 페이지: 111-145(35pages)
2.3 사회구원과 종교 다원주의
따라서 WCC가 출발하면서, 세상에 불의와 착취, 압제에서 해방시키는 것을 교회의 삶으로 규정한바, 타 종교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동안 박탈당했던 이들의 ‘권리’, ‘자유’ 등에 대해 사회구원적 틀 속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재고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전도 받지 않을 권리 혹은 타종교를 선택할 자유가 정치, 사회, 경제 등 전방위적 해방의 범주 내에서 논의되었던 것이다. 나아가 뉴델리(1961년)에서 채택된 “종교의 자유 선언”이 밝힌 바와 같이, “종교적 자유는 신앙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이 행사할 뚜렷한 인권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교회의 사역을 이제는 missio Dei라는 개념 아래, 특히 1954년 2차 총회에서는(에반스톤) 개종에 대해서 침묵하거나 1961년 3차 총회에서는(뉴델리) 타종교와 대화하는 방향을 정하였던 것이다. 급기야 1975년 5차 총회(나이로비)에서는 처음으로 타 종교인들인 불교도, 힌두교인, 유대인, 이슬람교도, 시크교도들을 손님 자격으로 초청하기도 하였다. “전 인류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기독교인들은 “‘우리와 다른 신앙을 갖고 있는 이웃들과의 대화에 개방적이어야 하며, 그들이 그 대화를 침해라고 여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거의 형제적 또는 동지적 수준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타종교와의 대화는 1983년 6차 총회(밴쿠버)에서 이제 타종교에도 우리의 하나님이 관여하시므로 구원적 진리가 존재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단계로 발전하였다. 총회에서는 다음과 같이 보고서를 수정하여 채택하였다. “‘우리가 증거하는 예수님의 탄생, 일생, 죽음, 부활의 독특함을 확신하면서도 우리는 타종교인들 중에서도 종교적 진리에 대한 추구 과정에 하나님의 창조적 사역이 있음을 인정한다.’”고 하였다. 1991년 7차 총회에서는(캔버라) 비록 동방정교회에서 문제를 제기한 바와 같이, 종교 간 대화를 하되 종교 다원주의를 경계하면서 기독교의 독특성을 유지하도록 주문하고는 있지만, WCC는 전반적으로 종교 간의 대화는 타종교 안에도 구원의 진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교리를 존중하는 태도로 이루어져야 할 것을 말하였다.
하지만 앞에서 암시한 바와 같이 WCC는 이러한 종교 간의 대화 그리고 종교 다원주의 경향의 신학이 사회구원적 범주에서 비롯된 것에 주목해야 한다. 1990년에 다원성을 WCC의 중대한 논의의 주제로 규정하고 스위스의 바르(Baar)에서 만들어진 바르 선언 서문에서 다원성의 불가피성이 사회구원적 동기임을 밝힌 것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바르 선언은 종교 간의 대화를 “공동체 안에서의 대화”로 규정하고, 이 말의 의미에 대해 말하기를 “평화, 정의 그리고 자연과 인류와의 관계와 같은 주제를 탐구하면서 기독교인이 지구 곳곳의 공동체 안에 있는 다른 신앙을 가진 이웃과 함께 같이 대화하는 것”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할 때, 그것은 우리가 흔히 규정하는 ‘종교 다원주의’ 개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달라진 지구환경에 적응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다원주의 세계 속에서 그리고 포스트모던 사회에 살면서 불가피하게 채택하는 ‘종교의 다원성’을 말하는 것이라고 변호하는 것이다. 전통적 세계관과 가치관의 해체를 특징으로 하는 포스트모던 사회는 근대가 추구하였던 진리와 가치라는 거대담론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탈주체화, 탈이념화, 탈중심화, 탈정경화에로 나아갔고, 이에 따라 현대는 ‘모범이 없는’ 세계를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기독교가 여전히 종교의 유일성을 주장하는 것은 포스트모던 사회가 낳은 지구적 환경의 전방위적 변화를 무시하는 매우 비현실적인 것이라는 논리였다. 따라서 절대적, 영원불변의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오늘의’ 포스트모던 세계에서 불가피하게 타종교를 인정하는 종교의 다원성을 수용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나아가 비기독교인 혹은 무종교인들은 비록 복음에 대해서는 무지하지만 하나님은 메시아가 등장하기 전 세대에도 자신의 이름을 다른 형식으로나마 증거들을 남겨두었다고 하는 사도 바울의 말을 의지하여 “익명의 기독교라는 단어는 이제 더 이상 외형으로만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 선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WCC 초대 총무인 피서르트 호프트는 1966년 총무직을 사임하는 해에 저술한 논문에서 다원주의(pluralism)를 현대의 다원화 세계 속에서 불가피하게 채택하여야 하는 것임을 천명하고 기독교의 진리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타 종교가 갖는 진리를 용인하는 형태의 다원성을 제시하였다. 그는 다원주의를 정의하길 “다양한 종교적, 철학적 또는 이데올로기적 개념이 같이 함께 거하는 상황으로서, 이 상태에서 어느 것도 특권적 지위를 갖지 않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다원화 세계의 증거로서, 세속화, 인권(자유) 인식의 증대, 민족 문화 탐구의 결과로 얻게 된 그것의 종교적 뿌리 발견, 세계의 외형적 통일 등이라는 현대의 다원화 경향 네 가지를 열거하였다. 이러한 다원화 세계에 살면서 교회는 새로운 상황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또한 하나님이 “세상 모든 곳에 주(unlimited Lord)”가 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독교가 더 이상 모든 사람의 확신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타 종교나 자연종교의 다양한 형태들을 적으로 간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었다. 다원화 세계 속에서, 교회는 진리의 상대주의는 피하면서 종교의 다원성을 인식하고 타 종교를 대화의 상대로 삼아 궁극적으로 “이들과 기독교가 서로를 설득해 나가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을 제안하였던 것이다. 피서르트 호프트의 주장은 엄밀하게 말해 종교 다원주의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타 종교와 열린 대화를 주문하면서 기독교 진리의 유일성을 자신감 없이 제시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타 종교에도 기독교적 구원이 있다고는 명시하지 않았지만 종교 다원주의와 유사한 형태를 출발시켰다고 하겠다. 비록 상대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다원주의를 받아들인다고 말하면서 소위 종교 다원주의 자체에 대해서는 수용하지 않는 듯이 자신을 변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그의 논리는 매우 모호하여 적어도 유사 종교 다원주의의 한 형태라 하겠다. 이후 그의 다원성 이해는 WCC가 보다 세련된 논리를 갖춘 종교 다원성 제안을 제시하는 데 밑거름 역할을 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구원론에 있어서 보다 노골적이면서도 논리적으로 잘 무장된 종교 다원성 혹은 유사 종교 다원주의를 전개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타 종교 안에도 진리와 기독교적 구원이 있어서, 흔히 말하는 종교 다원주의는 아니지만 또 다른 형태의 기독교로서의 타 종교가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를 WCC 혹은 WCC를 적극적으로 따르는 자들은 종교 다원성이라 칭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의 종교 다원성은 거의 종교 다원주의를 의미하게 하므로 그 개념의 진정성이 의심된다. 물론 종교 다원성은 세계 시민으로서 타 종교인과의 대화를 시도할 때에는 수용 가능한 개념이다. 장성민이 리처드 마우의 견해를 수용한 바와 같이, “우리는 종교의 다양성 곧 서술적 다원주의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기독교의 구원의 유일성을 신봉한다고 해서 단군상 부수기, 봉은사 땅 밟기와 같은 행위는 다원화된 사회에서 기독교 스스로를 미아로 전락하게 할 유치한 행동에 다름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민주주의 시민 사회에서, 우리가 교회에 출석할 자유를 갖듯이 타 종교인이라도 그들의 종교를 선택하여 신앙 생활하는 것까지 간섭할 수는 없는 것이다. 보다 적극적으로는, WCC의 봉사 철학도 타 종교와 함께 공유하고 세상을 위해 타 종교인들과 공동 봉사 활동도 가능하다. 기독교 윤리적 차원에서 봉사를 위한 ‘대화’는 용인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WCC가 제안하는 종교 간의 대화 혹은 종교적 다원성은 기독교적 진리와 같은 종류의 구원을 타 종교가 갖고 있다는 전제 아래 둔다는 것과, 타 종교가 내용적으로는 ‘또 하나의 다른 기독교’로서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몰라도 같은 ‘야훼’ 하나님을 믿는 자로 간주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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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권문상 목사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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