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작성일 : 15-05-06 21:5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달콤한 거짓과 잔혹한 진실, 당신의 선택은?

영화 <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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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05년의 일이다. 황우석 박사 사건이 있었던 후로부터. 10년이 지난 대한민국은 여전히 거짓과 속임수가 만연해 있다. 이제는 정부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결코 신뢰하지 않는다. 더 슬픈 건, 국민들의 신뢰 여부를 정부가 털끝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겠지만.
황우석 박사는 줄기세포 연구를 통해 세포 복제의 가능성을 시사했고, 이에 많은 난치병 환자들의 구세주로 등극했다. 그러나 사실 복제 배아줄기 세포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이 내용을 발표했던 논문 역시 조작되었음이 밝혀졌다. ‘PD수첩’은 한 제보자의 증언에 의지해 이를 파헤쳤고 영화 <제보자>는 이 사건의 일련의 과정들을 긴장감 있게 다룬 최근의 작품이다.
사실 황우석이 전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쳤는지 혹은 진실을 밝히려는 순간 어떤 세력에 의해 매장을 당했는지는 (너무나 오래된 일이라)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았다. 다만 극 중에서 피디가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이 더 흥미로웠다. 당시의 황우석이란 말 한마디로 여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력적이고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그에 대한 국민적 호감은 기형적일 정도로 컸고 행여 박사를 잘못 건드리기라도 했다간 벌집을 쑤신 꼴을 보게 되리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취재진은 진실을 캐기 위해 곡괭이를 들었다. 그 과정은 자체로 투쟁이었다. 심지어 과정을 거쳐 얻어낸 진실은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처참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돌을 맞고 그 돌을 던진 이들 또한 피투성이가 될 것이었음에도 그들은 진실을 추구했다. 왜, 대체 왜?
나는 솔직함이 언제나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책 없는 솔직함은 폭력이나 진배없다. 그러나 진실은 다르다. 진실은 개인의 솔직함과는 무관한 그 자체로의 가치이며 모든 판단의 뿌리이자 근거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차원에서 이해되기 이전에 바로 서야 할 집단의 가치라는 말이다. 분노도 절망도 환희도 기쁨도, 진실 이후에 이루어질 수 있다. 진실이 없다면 그것들은, 반쪽자리에 불과하다.
세월호 사건이 있은 후 1년이 지났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 달라진 게 없는 것까지는 괜찮다. 문제는 진실이 아직까지 심해에 가라앉아 있다는 사실이다. 유족들이 집회를 하고 서명운동을 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슬픔에 공감해 달라거나 같이 노여워해 달라는 차원이 아니다. 그들은 진실을 밝히길 원한다. 진실을 밝혀야 관련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다. 영문도 모른 채 죽은 이들을 (제대로) 애도할 수 있다. 앞으로 나올 제2, 제3의 희생자를 막을 수 있다. 그것이 진실의 힘이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사람들은 이제 지겹다는 막말을 한다.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시간만 끌었을 뿐인데 그만하라고 한다. 아마 이런 엄청난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진상’취급 하고 ‘색깔’을 입히는 건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할 거다. 정부가 싸이코패스인 것도 소름 끼쳐 죽겠는데 국민들도 같이 물들어가는 게 절망적이다. 그래, 사람이 죽어도 지겨울 수 있다. 그만 좀 하지 싶을 수 있다. 애도에 기한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진실에는 기한이 없다.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건, 언제가 됐든 진실은 밝혀진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때’가 차지 않았을 때 당신의 존재가 알려지길 꺼리셨고 자꾸 사람을 피해 도망 다니셨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고 그리하여 내심 두려워했음에도 끝내 어둠 속에 못 박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그리스도임이 밝혀졌고 그 ‘진실’을 믿는 이들이 세상에 드러나고 있다.
모든 아름다운 가치들이 외면되고 버려지는 작금에, 우리가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최후의 가치는 진실이다. 그것을 지켜냈을 때에야 그 다음의 가치를 요구할 수 있고 보장받을 수 있다. 거저 주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나님은 평등과 자유, 정의 등의 가치를 알게 하기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무수한 사람들을 희생케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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