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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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3-20 19:2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변모 그리고 변화


거울 앞에 마주 서는 날은 왠지 스산함으로 흘러내린다. 축 처진 눈꺼풀, 혹처럼 매달린 눈 밑 주름살, 깊게 팬 입가의 골, 펑퍼짐한 몸뚱이, 펴지지 않는 허리, 아무리 봐도 낯선 모습이다. 그런 날은 보아서는 아니 될 것을 보아버린 것 같은 언짢음으로 마음이 울적하다. 흐리멍덩한 눈빛은 그만두고서라도 허리라도 반듯 펴고 싶은 지경에 이르렀다. 소녀 시절엔 몸이 통통하고 건강해서 동네 할머니들로부터 부잣집 맏며느릿감이라는 말을 심심찮게 들었었는데, 나이가 들어서 망정이지, 요즈음 세상이 어디 그런가.

한때는 그렇게 허물어진 육신에서 오는 자괴감으로 바깥에도 나가기 싫었다. 무관심과 방치 속에 머리칼은 하얗게 변해갔다. 식구들이 북적대던 때는 좀처럼 가져볼 수 없었던 생각이다. 자식들 치다꺼리에다,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든 나의 잦은 병치레로 성격도 무디어 가고, 체중관리도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나라는 사람이 새삼 한심스러웠다. 그야말로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한 삶이었다. 나 자신을 차분히 돌아볼 시간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젊을 때는 온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면서도 ‘나는 괜찮아’ 하는 세대가 지금 나의 세대가 아닌가 싶다. 자식에 그 자식까지 가슴에 안고, 멋지게, 폼 나게 살면 큰일이나 날 것처럼, ‘만약에’라는 가능성에 매달려서 아등바등 살면서도 고생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여호와를 모르게 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나는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계획된 프로그램에 의해서 인도되어져 간다. 나의 노력, 나의 의지에 따라서 한순간도 살 수 없고, 다 하나님의 작정에 의한 필연으로 진행이 되어, 모든 일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이 성경의 기본원리로 배워왔다. 내 몸에 병드는 것도, 건강한 것도, 얼굴이 잘생긴 것도 못생긴 것도 하나님의 작품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범사에 감사가 나오겠는가. 감사가 없다면 하나님은 그림 중에 떡과 같을 것이다. 광야 40년을 거치지 않고는 요단강을 건너지 못한다. 비록 마실 물이 없고, 대적들이 우글거린다 해도, 지나고 보면 그가 여호와인 줄을 알게 된다. 하지만 또 악하여져서 자신을 은근히 과시하며 살아가는 어리석음도 부인할 수 없다. 어찌할 수 없다. 인생의 희로애락에 흔들리며, 비바람 같은 시련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저 침묵하며 바위 같은 존재로,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다. 그래그래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 시간은 ktx를 타는 듯하고, 잘못된 가치추구는 세월 낭비였음을 고백하게 된다. 신지식이 가치관의 형성임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면 늘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는 것, 잘난 척할 것도 없고, 하나님 앞에서 있는 그대로, 변해가는 모습 그대로,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누구는 평안하게 살다가 곱게 늙었고, 누구는 고생고생하다가 주름살투성이로 늙었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 다 배우게 되면 수업이 끝난다는 것에 일치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적 사상이 분명할 때 무엇이든지 의미부여가 되고,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는 것, 범사감사의 폭넓은 신앙으로, 고상하고 귀부인다운 모습으로 변해가게 되기를 기도하며 소망하며 살게 된다.

사도바울은 예수를 만나고, 그가 그리스도임이 믿어지면서, 절대가치를 발견하고 가치로운 삶의 방식으로 살았다. 매를 맞아도, 헐벗어도, 멸시 천대해도 당당히 살았다. 가치관이 분명했다. 외모에 연연하며 살아가지 않았다. 삶의 영역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 안에 있다. 내 안에 보배가 들어 있고, 그 안에 뿌리를 박고 안정감 있게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하는 삶이면 족하지 않은가. 언제부터인가. 지혜의 말씀이 살아 움직이면서 누군가를 사랑해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되고, 마음이 고요해지면서 하루하루가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지나간 발자취가, 매번 맞이하는 한 계절 계절이 가슴 아리도록 아름답게 느껴진다. 묵은 사진첩 속에 켜켜로 끼어 놓았던 지난 모습을 끄집어내듯 나의 지난 행적들을 돌아보며, 내 그릇된 편견이나 가당치도 않은 오만의 찌끼들을 뒤늦게나마 들추어내어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안달복달했던 마음도 털어놓고, 스스럼없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 나를 발견하곤 나 자신도 놀란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나만큼의 고뇌, 아픔쯤은 다 간직하고 있다는 발견은 한 걸음씩 다가가게 하는 어떤 힘이 된다. 철옹성 같은 성 안에서 빠져나온 기분이 이럴까. 두루뭉술해진 육신 따라 마음마저 그렇게 둥그러진 것일까. 

요즈음 내가 절감하는 것은 역시 내가 믿고 있는 신의 뜻은 깊고 오묘하다는 것이다. 외적인 허물어짐보다, 내면의 황폐함에 가슴앓이하게 되고, 변모를 통해 변화를 가져다준 신실하신 하나님, 그분의 속 깊은 뜻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 사랑이 확인되지 않고 인정되지 않으면,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나를 철들어 가게 하시는 자비하심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지혜로운 자의 삶은 성령의 교통하심에 있고, 즐거운 삶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가 아니던가. 지혜가 없으면 온갖 괴롬, 원망 속에서 삶은 불만스럽고 삶은 엉망이 된다. 후회와 함께, 참으로 허무한 인생일 수밖에 없다.

어둡던 눈을 밝혀주신 하나님에게 렌즈의 초점을 모으는 일, 희미한 가치관의 힘으로는 변화되지 않는다. 지혜는 도통, 하나의 역사로, 출발에서 도착지점까지의 길을 섭리하시는, 여호와를 알고 경외하는 삶이다. 그 하나님을 분명하게 알아야 시작에서 끝까지 내 인생 여정도 알게 된다. 지혜의 길은 후회도 없고 손해도 없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나의 가치요,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을 알게 하신 하나님을 잘 배워서 분명히 알고 인정하게 된다면 어찌 평안하지 않겠는가. 끝을 정해놓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면 내 계획은 무너지게 되고 하나님의 뜻 따라 선한 길 가게 되고, 안되면 안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알게 된다.  솔로몬은 말했다. 현숙한 여인의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덕망 있는 여인이라고.

햇살이 너무 고와 창문을 열었다. 삼월은 봄이라 해도 아직은 썰렁하다. 머지않아 집 울타리에 피어날 개나리꽃, 앞뜰에 목련꽃, 살구꽃, 온갖 나무들도 죄다 깨어나서 향기로 가득할 것이다. 이름 모를 잡초도 얼굴을 내민다. 그리고 훈훈한 봄기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겨울이 지나면 어김없이 봄이 오고, 새싹이 움트고, 새들의 노랫소리가 좋은 이유는 뭘까. 나를 변화되게 하는 자는 오직 여호와!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강미정 권사 (광주산수서광교회)

4월의 아침
깨인 새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