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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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1-09 19:33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언약궤로 인한 저주와 승리


하나님의 언약궤는 있어야 할 곳, 여호와의 이름을 두는 곳에, 거룩히 구별된 회막 안의 지성소에 두어야 한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친히 그곳에 두라고 모세에게 명하셨기 때문이다.(출 40:2~3)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이 언약궤를 빼앗아 자기들 신, 다곤 곁에 두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그날도, 그 이튿날도 다곤이 여호와께 굴복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엎드러져 있었다. 얼굴은 꺼꾸러져 땅에 닿았고,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몸뚱이만 남아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블레셋 사람들은 자기들의 신 다곤보다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이 더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무서우니까 언약궤를 아무 데나 옮긴 것이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언약궤가 이르는 곳에 저주를 엄중히 더하여 독종 재앙을 내리셨다. 이는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능력을 보여주므로 언약궤를 다시 이스라엘 땅, 거룩한 장막으로 돌아오게 하려는 섭리인 것이다.
언약자손들에게는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궤, (하나님 말씀) 언약궤(성경)가 참 중요하지만,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언약궤가 도리어 화근이 되었다. 그래서 언약궤를 돌려보내고 백성의 죽임을 면케 하자 하고, 방백들을 모아 의논을 한 것이다. 사도 바울의 말대로 복음이 택한 백성,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능력이 되지만, 택한 백성이 아닌, 멸망 받을 자에게는 거친 돌이 되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여호와의 언약궤가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도리어 저주가 된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택한 이스라엘 자손으로 언약궤를 찾아오게 하는 것도 언약하신 말씀을 이루시려는 섭리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는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깨달아 알고 경외하며 섬기게 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내다보면서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속죄받을 것에 대한 하나의 예표로서의 모형과 그림자적 교육인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그릇 범과하였을 때 모세에게 명한 규례대로 속건제(레 5:15~16)를 드려서 속죄를 받았던 것이다. 그 당시 블레셋 사람 중에 점을 치는 자들도 여호와의 언약궤로 인한 저주임을 알고, 자기들 나름의 방식으로 속건제 드릴 제물과 함께 암소에다 언약궤를 실어 본처로 돌려보내야 독종이 낫는다고 가르쳐 준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드리는 속건제는 흠 없는 숫양을 제물로 삼아 드렸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은 그 점쟁이 말대로 새 수레에 멍에 매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여호와의 궤를 그 수레에 싣고 속건제 드릴 금 보물을 상자에 담아 벧세메스로 가게 한 것이다. 보편적 상식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들의 생각은 다른 데 있었다. 소 두 마리가 끌고 가는 수레가 벧세메스로 가게 된다면 여호와의 손이 블레셋에게 내린 재앙이고, 다른 길로 가면 우연히 재앙이 임한 것으로 알겠다는 속셈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암소는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언약궤를 수레에 싣고 벧세메스로 돌아온 것이다. 이스라엘 여호와 신이 자기들을 저주한 것이 분명한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관하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이스라엘 땅에 있어야 할 언약궤가 분명한 것이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무엘로 승리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여호와의 능력으로 돌아오게 한 것이다. 여호와의 궤가 기적적으로 블레셋에서 이스라엘로 옮겨온 사건이 실제 역사적 사실로 증거 하는 단서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삼상 6:18) 이런 경우를 우리 삶 속에서도 그냥 믿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억울하게 무엇을 빼앗겼어도 하나님께서 더 좋게 하실 거라고, 아니면 그것이 내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가져가게 했다고 정리하면 마음이 평안해진다. 이제 언약궤는 이스라엘 땅에 있어야 한다.
언약궤 안에는 여호와 스스로 이름을 두신 곳으로,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비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 그리고 만나 단지를 넣어 시은좌로 덮어놓았다.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아무나 여호와 궤를 보지 못하게 되어 있다.(민 4:20) 그런데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보므로 살육을 당하고 두려워 다른 집으로 옮기게 된다. 사무엘은 언약궤 때문에 슬퍼하는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진심으로 우상을 섬긴 죄를 회개하도록 하고, 솔직히 잘못한 죄를 고백하게 했다. 사무엘은 마지막 사사로서 선지자직 임무를 수행하며 이스라엘 자손으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만 경외하도록 다스린 것이다. 그리고 사무엘은 제물을 불로 다 태워드린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므로 제사장직 임무를 수행하고, 여호와께서 블레셋에게 빼앗긴 성읍과 땅을 찾게 하므로 평화를 이룩하게 된 것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으로 하여금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아 알고 섬기게 하려는 것이었다. 여호와께서 엘리 가문을 타락케 하셔서 패망하게 하고, 사사를 세워 회개케 하여 하나님의 작정에 의해 주권적 능력으로 패하게 할 자를 패하게 하고, 승리케 할 자 승리케 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사무엘로 생전에 하나님을 섬기며 백성들을 다스리면서, 사사로서의 통치자적 임무를 수행하게 하고, 다윗왕국을 세우실 준비로 사무엘을 마지막 사사로 등장시켜 섭리하신 것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엘리에게 여호와 스스로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라고 예고로 언약하신 말씀을 이루어 주신 섭리이다.(삼상 2:35)
여호와께서는 정말 어리고 힘없는 사무엘을 불러 쓰셨다. 강대한 블레셋을 언약궤로 인하여 망하게 하고, 사무엘은 여호와의 언약궤로 인하여 승리를 거두게 한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사무엘로 선지직, 왕직, 제사장직을 수행하게 한 사사로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로서의 모형과 그림자적인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지금도 짐승 피로 제사 드리는 행위를 하고 있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들은 구약에서 언약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그리스도는 삼 일 만에 부활승천 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택한 백성들을 위해서 한순간도 멈추지 아니하시고 영원한 제사를 드리고 계시는데, 성령께서 못 깨닫게 하니까 유대인들은 그 짓을 하고 있다. 그런데 개신교도 주일날 대예배드린다고 모여, 목사가 제사장옷 입듯이 긴 옷을 걸쳐 입고 강단 위에서 제사행위(예배)를 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눈을 어둡게 하고, 성경을 못 깨닫게 하면 어쩔 수 없다.
하나님은 만사를 창세전에 작정한 대로 언약하시고 그 언약대로 반드시 이루시는 여호와이시다. 그 사실을 믿어지게 하는 것이 은혜이고 세상에서는 얻을 수 없는 복이다. 내가 잘해서 흥했고, 내가 잘못해서 망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항상 좌절이 아니면 자만이다. 승패는 여호와 손에 달려있다. 언약궤로 인하여 강대한 블레셋을 망하게 하고, 사무엘을 승리하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그의 살아계심이 믿어진다는 것, 그게 얼마나 당당하고 아름다운 모습이겠는가.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강미정 권사 (광주산수서광교회)

여호와 스스로가 작정하신 뜻에 따라
사무엘은 잘 성장하고, 엘리의 집은 망하여 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