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형님께

둘째 형님께
오늘따라 작은 형님 생각이 나서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립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평안하시지요. 형수님도…. 갑자기 무슨 일인지 궁금하시겠죠. 불길한 일은 아니에요. 안심하셔도 됩니다. 하나님께 받은바 은혜가 감당키 어려울 만큼 크다 보니 형님 생각이 떠오르곤 해요. 형님은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 후에 어느 회사에 입사하여 직장생활을 한동안 하셨잖아요. 당시에는 그리 흔치 않은 일이었죠. 동생은 정말 뿌듯해서 친구들에게 은근히 자랑도 많이 했답니다.

1955년 12월, 눈보라 치는 한겨울에 우체부 아저씨로부터 형님의 편지를 받았거든요. 세상에 태어나 처음 받아 보는 편지였답니다. 얼마나 기뻤겠어요. 중학교 학업이 거의 끝날 무렵부터 학업을 중단하고 고민하며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거든요. 마지막 학기 등록금을 납부하지 못해 졸업식도 참석하지 못할 형편이었으니까요. 동생에 대한 안타까운 소식을 들으셨던 것 같았어요. 마음이 울컥했거든요. 너무 기쁘고 감격해서죠. 조심스럽게 편지를 읽다가 울어버렸답니다. 취직시켜주겠다며 준비해서 속히 오라고 했잖아요. 큰 서점에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간학교에 다닐 수 있다고도 했어요. 뛸 듯이 기뻤죠. 온 식구들도 너무너무 좋아했던 기억이 생생하거든요. 동네 친구들에게 어찌 자랑인들 안 했겠어요.
약속된 날에 가족들과 눈물로 작별 인사를 하고 정든 고향을 떠났죠. 두 시간여 만에 형님을 만날 수 있었지요. 형님은 나를 어느 큰 서점으로 데리고 가서 점원으로 취직을 시켜 주셨어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눈으로 다음 날 아침을 맞았답니다. 훌륭한 화가의 꿈이 되살아나서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책장에 먼지도 털고 책도 정리하고 가게 청소는 물론이고요. 열심히 일했지요. 주인의 칭찬도 많이 받았답니다. 어느 날 주인의 눈치를 살피다가 용기를 내어 말씀을 드렸어요. 야간고등학교에 입학해서 공부하고 싶다고요. 주인은 한참 생각 끝에 서점 일에 지장이 있어서 안 되겠다고 거절을 하시더군요. 다시 쌓아 올린 화가의 꿈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답니다.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죠. 그칠 줄 모르는 눈물은 볼을 타고 방바닥을 적시고 말았답니다.

거듭되는 갈등과 고민, 그리고 좌절…, 서점 일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그대로 밥이라도 얻어먹으며 머물러 있어야 하나! 다른 직장은 없을까! 여러 날 고민 끝에 단호히 결정했어요. 주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서점 문을 나오고 말았어요. 아마 고향이 그립고 가족들이 보고 싶은 마음이 크게 작용하기도 했겠죠. 제 눈에는 좀처럼 눈물이 마르지 않았답니다. 큰 희망을 잃어버린 자의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어요? 부모님은 넷째 아들이 취직해서 도시로 떠난 뒤 얼마나 기쁘고 즐거워하셨겠어요. 온 인근 동네까지 소문이 돌았다고 하시더군요. 돌아온 아들을 맞이하는 가족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있기 마련이죠. 전들 얼굴을 들고 밖으로 나갈 수 있었겠어요?. 친구들을 만날 용기조차 없었으니까요.

거듭되는 좌절감에 하루하루 견디기가 힘들었거든요. 살아야 할 목표가 사라져버렸잖아요. 그러던 어느 날 방구석에 앉아 형님들이 읽고 쌓아둔 책들을 뒤적이다가 마침 ‘성인전’이 눈에 띄게 되었어요. 대충 책장을 넘기며 살펴보다가 관심이 가더라고요.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읽어보았답니다. 마음이 안정되면서 책에 빠져들었지요. 새로운 희망이 보이는 듯했으니까요. 나도 ‘어거스틴’이나 ‘다미엔’처럼 성자가 되어야 하겠다는 각오까지 생기게 되었답니다. 성자는 돈이 없어도 되잖아요. 온몸에서 생기가 돌고 힘이 솟구치기 시작했어요. 하나님을 잘 믿고 성경대로 살기만 하면 반드시 성자가 될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이 생기더군요. 살아야 할 이유와 목적이 분명해진 셈이죠. 얼마나 신바람이 났겠어요. 교회학생회 회장으로 열심히 활동하면서 성경을 읽고 그대로 살려고 각오하고 노력을 했죠.

어느 날 우체부 아저씨가 아담한 소포 하나를 전해주고 가는 거예요. 놀랍게도 형님이 보내주신 소포였어요. 낙심한 동생에게 보내준 위로의 선물로 생각했죠. 한글과 영어로 된 신약성경을 곱게 싸서 보내셨더군요. 너무 기쁠 수밖에 없었답니다. 성자가 되려고 성경을 읽으려던 차에 받은 선물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죠.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형님의 마음을 감동해주셨다고 믿고 있어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경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지요. 물론 성경의 교훈대로 행하기 위해서였죠. 성자가 된 나 자신의 모습을 상상도 하면서…, 생각만 해도 즐거웠답니다. 깊은 산속에서 야생동물들과 어울려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이 상상되기도 했답니다.

한동안 지나서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 자신이 점점 초라해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답니다. 성자는 고사하고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되더라고요. 어떻게 타락한 인간이 성자가 되겠어요. 지금 생각하면 이루지 못할 일은 힘쓰지 않는다는 말씀을 깨닫지 못한 당연한 결과였죠. 야망이 얼마나 자신을 망친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 결과고요. 허황된 야망은 깨질 수밖에 없잖아요. 다시 기나긴 방황이 시작되었어요. 성자의 꿈마저 산산조각이 났으니까요. 끊임없이 밀려오는 고민과 좌절, 그리고 허탈감을 그 무엇으로 메울 수가 있겠어요. 밤이 되면 이불 속에서 남모르는 눈물을 흘리며 하루하루를 살았답니다. 

그 당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나 되게 하시려는 사랑의 섭리임을 알 리가 없었죠.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깊은 진리인들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요.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오랜 후에야 뒤늦게 깨닫게 되었으니까요. 지금은 범사에 감사하게 되고요.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지기를 쉬지 않고 기도하게 되고요. 항상 기뻐하며 여호와만을 높이 찬양하며 살아가게 되더라고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거하게 되면, 성령의 인도로 때를 따라 푸른 초장으로, 의의 길로, 형통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지요.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를 따라 사는 것이 지혜임도 깨닫게 되었고요. 형님! 안심되시죠. 멀지 않은 날 찾아뵐게요. 형님도 형수님도 주 안에서 평안히 계세요.

2020년  철부지였던 동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