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전도사님께
김 전도사님께
전도사님! 저 기억하시나요? 전도사님은 다른 교회 장로님으로서 목사님이 되시려고 신학교를 다니시는 중이셨지요. 당회장님의 파송을 받아 저의 고향교회 전도사님으로 주일에만 오셔서 설교만 하셨거든요. 저는 공과 공부를 담당하셨던 영수님의 넷째 아들이고요. 벌써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전도사님은 제 인생의 한 획을 긋는 데 기여하셨기에 잊을 수가 없어요. 늦게나마 편지를 드리게 된 동기랍니다.
전도사님께서는 1956년 2월 28일부터 3월 6일까지 교회 ‘부흥회’를 개최한 바 있거든요. ‘사경회’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부흥회’는 처음 들은 거예요. 궁금해서 전도사님께 여쭙자, ‘사경회’는 성경을 공부하는 모임이고, ‘부흥회’는 죄를 회개하고 성령을 받는 것이라고 자세히 알려주셨어요. 때마침 죄 때문에 성자의 꿈이 물거품이 되어 방황하고 있었기에 호기심을 가지고 ‘부흥회’가 열리기를 기다렸거든요.
강사님이 권사님 한 분과 함께 오셔서 사택 건넌방에 머무셨어요. 예정대로 월요일 저녁부터 ‘부흥회’가 시작되었죠. 시간이 되자, 권사님이 소복을 입고 강단 앞에서 손뼉을 치고 춤을 추며 찬송을 인도하셨잖아요. 처음 보는 광경이었어요. 이어서 강사님이 단에 서자마자 제일 앞자리가 금 자리라고 하시면서, 부흥회를 하는 동안 금식하며 회개하면 심령에 쌓여있는 모든 죄가 성령의 불로 다 타버린다는 거였어요. 이틀만 지나면 죄 덩어리 타는 냄새가 온 실내에 진동할 거라는 예고도 하시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외치셨어요. 매우 신기하게 느끼며 귀가 쭝긋했답니다. 성자의 꿈을 꾸었던 터라, 내 모든 죄가 타버리면 성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죠.
다음 날 아침, 금식하고 담요 한 장을 들고서 강대상 바로 앞에 자리를 잡았죠. 강사님은 ‘박 군의 심령’이라는 궤도를 가지고 ‘하트’ 모양 안에 그려진 짐승들을 하나하나 지적하며 설명하셨거든요. 그 가운데 염소는 음탕한 짐승이라며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음욕을 질타하셨어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은 죄를 범했으면 회개해요!’라고 고함을 치시며 강대상을 주먹으로 힘껏 치셨거든요. 그 순간 제 가슴이 덜컥하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제가 마음에 음욕을 품었던 죄가 있어서였죠. 이어서 강사님은 통성기도를 시키시고 강대상을 거듭거듭 두드리며 회개하라고 큰소리로 외치셨어요. 갑자기 분위기가 뜨겁게 고조되기 시작했잖아요.
사흘째 되던 날, 정말 죄 타는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르기 시작하는 거예요. 시간이 흐를수록 냄새는 더욱 심해져서 마치 시체가 썩는 냄새 같았거든요,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잖아요. 교인들의 통곡 소리와 함께, ‘주여! 죄를 용서해주세요! 용서해주세요! 주여!’라고 계속되는 성도들의 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지요. 저 역시 울면서 여학생을 보고 음욕을 품었던 죄를 고백하며 용서해주시라고 애원했어요. 몸이 뜨거워지고 땀이 비 오듯 하면서, 죄 타는 냄새가 역겨울 정도로 코를 찌르는 거였어요. 이른바 강력한 성령의 불길이 죄로 더러워진 내 심령에 임한 셈이죠.
교회당 안은 순식간에 수라장으로 변했어요. 일어나 춤을 추고, 엎드려 통곡도 하고, 뒤로 넘어져 벌벌 떨기도 하고, 몸을 흔들며 방언도 하고, 정말 수라장이었거든요. 저는 내 모든 죄가 성령의 불로 다 타버렸다는 생각에 마냥 기쁘기만 했었답니다. 이제는 성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죠. 처음 경험이었으니까요. 능력 있는 강사님을 모셔 오신 전도사님이 정말 고맙게 느껴졌거든요. 저의 상실한 성자의 꿈과 희망이 다시 살아났기 때문이죠. 요란스럽던 ‘부흥회’는 이른바 강력한 성령의 역사로 은혜가 충만한 가운데 성공적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지요. 다음 날 아침에는 강사님 일행이 떠나신다는 생각에 섭섭해서 눈물까지 났답니다.
금요일 늦은 밤이었죠. 갑자기 아버지께서 강사님이 저를 찾으신다고 어서 가서 뵙도록 하라는 거예요. 처음에는 두려운 마음에 주저했었죠. 혹시 내 죄가 완전히 타버리지 않고 남아서 찾으시는가 싶어서였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강사님 방으로 건너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여 인사를 드렸어요. 강사님은 반갑게 맞이해 주시면서 편히 앉으라고 하시더라고요. 잠시 후, 부드러운 목소리로 ‘네가 영수님 아들이냐?’고 물으시는 거예요. ‘네’라고 공손히 대답하자, ‘네가 성경 공부를 하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들었다. 너 내일 나를 따라가지 않겠느냐?’고 하시면서, 성경고등학교에 입학시켜 주신다는 거였어요, 그 순간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너무 놀라서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으니까요.
저는 곁눈으로 아버지의 눈치를 조심스럽게 살펴보았죠. 만면에 미소를 짓고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는 거예요. 아버지는 강사님과 이미 상의를 하신 것으로 느껴졌어요. 저는 마음을 가다듬고 떨리는 목소리로 ‘강사님! 감사합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라고 답변을 올렸답니다. 강사님은 말할 것도 없고요. 전도사님이 너무너무 고맙기도 하고 감사했거든요. 설레는 마음에 잠도 오지 않고 뜬 눈으로 아침을 맞았답니다. 그렇게도 소원하던 성자의 꿈과 희망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었으니까요. 제가 전도사님을 잊지 못하고 편지를 올리게 된 사연이 여기에 있어요. 마땅히 ‘어거스틴’이나 ‘다미엔’ 같은 성자가 되어 전도사님을 찾아뵙고 큰절을 드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렇지 못할 사연이 있기에 편지를 쓰고 있답니다.
지금은 그렇게 소원했던 성자와는 절대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하나님의 은총을 입었거든요. 성경의 참 의미를 깨닫고 성경교사가 되어 살고 있답니다. 그동안 전도사님이 너무 원망스러울 때도 많았지요. 수년 동안 성자가 되려고 성경을 연구하면서, 제가 많이 속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도사님을 원망하지 않아요. 하나님께서 오늘의 나를 되게 하시려고 전도사님을 통해 유익하고 값진 경험을 하게 하셨다고 믿어지기 때문이에요. 하나님께서는 해 아래서 헛되고 무익한 일을 통해 유익하고 영원한 일을 섭리하시거든요. 그러기에 속으며 어리석게 살았던 과거를 후회하지도 않고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아요. 전도사님 배신했다고 괘씸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이것은 배신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와 신앙의 문제거든요. 전도사님! 부디 사모님이랑 주 안에서 평안하세요.
2020년, 미숙했던 성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