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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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4-26 22:2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나 선생님께


선생님! 너무 오랜만이네요. 제가 말없이 귀향하고 만나보지 못했으니까, 60여 년이 넘었나 봅니다. 누구인지 궁금하시죠. 왜 선생님 근무하시는 출판부 건물 바로 아래 미술부 건물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던 신학생이에요. 아시겠죠? 선생님은 제 일생에 있어서 새로운 전환점을 찍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느끼고 있어요. 이북이 고향이셨지요. 가끔 저를 만나면 문학에 관한 이야기나 사상에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하셨거든요. 왠지 모르게 관심이 끌리곤 했었지요. 선생님은 성격이 매우 날카롭고 불의에 대한 증오심이 매우 많다고 생각했거든요. 마음이 답답하고 쓸쓸할 때면 지나가는 척하면서 선생님을 찾아가곤 했었던 기억이 있어요.

제가 신학교 재학시절 연례행사인 ‘전국연합수련회’ 기간에 전시회가 있었지요. 옆방에 사진부가 있었잖아요. 사진부에서 집회 광경을 촬영한 사진들과 미술부에서 그린 이른바 성화들이 전시되었고요. 그때 선생님과 저는 소스라치게 놀란 일이 있잖아요. 관람자들 모두가 집회 광경 사진에 성령의 불꽃이 번개처럼 여기저기 찍힌 것을 보는 순간 경악했던 일이 평생 잊을 수 없거든요. 초등학교 시절 ‘너 하나님 봤어?’라고 얄궂게 질문했던 친구가 생각나기도 했으니까요. 저는 심령의 눈이 어두워 실제 성령의 불꽃을 못 본다고 생각했어요. 아직 죄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기도 했으니까요. 내 심령의 눈보다 사진기의 ‘렌즈’가 더 낫다고 느꼈지요. 역시 죄에 대한 고민과 두려움은 시시각각으로 제 마음을 괴롭혔답니다.

얼마 지나서 사진에 나타난 불꽃은 성령의 불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놀라며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거든요. 촬영 시간이 밤이라서 사진기 조리개를 느리게 조절한 결과라는 것이 판명됐잖아요. 수련회 장소인 천막 안에 전선으로 매달아 놓은 전구가 바람에 흔들리는 순간 사진을 찍은 결과였거든요. 선생님과 저는 너무 허탈하고 힘이 빠져 시무룩이 서로 헤어졌던 기억이 생생하답니다. 선생님! 저는 너무 이성적으로 무뎌져 분별력이 부족했던가 봐요. 원래 정서적으로 한 일에 몰입하게 되면 이성적인 분별력이 약해지지 않나요? 그렇죠? 맞잖아요? 제 이성이 마비되어 오해하게 된 거죠, 저는 오직 죄 없는 성자가 되려는 생각에 집착하고 있었으니까요. 스스로 착각하며 살고 있었던 셈이죠. 지금 생각하면 너무너무 부끄럽고 창피스러워 마음에 꼭꼭 간직하고 하나님 나라에 가려고 했답니다.

어찌 그뿐이겠어요. 죄로 인해 너무 괴로운 나머지 결단을 하려고 금식을 했거든요. 이틀 정도 지나서 회개하기 위해 산으로 올라갔어요. 제가 자주 찾는 널찍한 바위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기도를 했지요. 먼저 큰 소리로 ‘주여! 주여! 주여!~’라고 삼창을 한 후에 ‘이 죄인 마음에 음욕이 남아있으니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이 육체의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주여!~ 주시옵소서!’ 밤이 깊도록 통곡하며 회개했답니다. 몸에서 열이 나고 땀이 흐르는데 갑자기 그 큰 바위가 5∼60cm 높이로 여러 번 들썩이는 거예요. 드디어 하나님께서 기도를 응답해 주셨다고 생각했죠.

이튿날 이른 아침 선생님을 찾아가 자랑을 늘어놓고 있었죠. 그런데 갑자기 선생님이 ‘어! 이게 무슨 냄새야’ 코를 훌쩍이며 손으로 가리는 거예요. 알고 보니 금식하고 밤새워 기도하다 내려오는 중이라 제 입에서 나는 구린내였어요. 순간 소년 시절 고향교회 부흥회 때 죄 타는 냄새가 생각이 났지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맥이 풀리며 그동안 착각 속에서 온갖 혼돈 상태로 살아온 것이 서글프기까지 했거든요. 선생님도 역시 마찬가지였잖아요. 한동안 심각한 이야기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왔죠. 그 황당함과 허탈감 또는 창피함은 나를 절망감으로 치닫게 했답니다.   

하루는 선생님 숙소에서 요란한 기도 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거예요. 순간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했죠. 우선 사태를 엿보려고 문을 살며시 열어봤지요. 그 순간 이게 웬일이에요. 뜨거운 공기와 향내가 내 얼굴과 코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답니다. 드디어 죄가 완전히 타버린 확증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고 서둘러 문을 열고 들어갔지요, 방안에는 10여 명의 학생이 무릎을 꿇고 둘러앉아 양팔을 들고 몸을 흔들기도 하고 펄펄 뛰기도 하면서 땀을 흘리며 기도하는 중이었어요. 나 역시 뜨거운 성령의 불길을 온몸에 받으며 짙게 풍기는 향기에 내 죄가 완전히 소멸했다는 확증이 되자 하염없는 감격의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질 수밖에 없잖아요. 모두 몸은 땀에 흠뻑 젖고 얼굴은 홍당무처럼 달아오른 상태로 ‘아멘! 할렐루야!’를 연발하며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고요

갑자기 멀리서 식사 시간을 알리는 식당 종소리가 울리자 학생들은 뿔뿔이 흩어졌지요. 저는 남아서 선생님과 함께 방을 정리하고요. 그 순간 너무 놀라며 허탈감에 맥을 잃고 말았잖아요. 책상 위에 있던 ‘ABC 포마드’가 뜨거운 방바닥으로 떨어져 녹아 흐른 상태를 보는 순간 ‘아! 착각했구나! 이럴 수가 있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죠. 이성 기능이 무뎌진 상태에서 감성적으로 너무 몰입한 결과였지요. 착각은 환각 상태를 불러오기 마련이고요. 뜨거운 온돌방과 ‘ABC 포마드’가 합작해서 만들어낸 ‘코미디’ 현상이었죠. 허탈감에 맥 풀린 모습으로 붉게 물든 저녁노을만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숨짓던 초라한 과거가 마냥 부끄럽기만 하답니다.

앞서 열거한 서너 가지 현상은 착각이나 착시 또는 환각 상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그제야 이성적 분별력이 돌아오는 듯싶었답니다. 현장을 보고 확증이 되자 감성에서 이성으로 돌아선 거예요. 원래 감성은 이론보다 몸과 마음으로 느끼기만 하면 되거든요. 그날 밤 기도원에서 4∼5년 동안 발생한 의혹들이 하나하나 생각나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했답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 편히 잠들 수 있다면 기적에 가깝죠. 더 속아서도 안 되고 계속 방황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죠. 이제 다른 길을 찾기로 굳게 결심했답니다. 이것이 제가 기도원을 떠나 귀향길을 택하게 된 동기에요. 이제라도 선생님께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함께 겪었던 일들이 많아서죠. 언제 만나게 되기를 소원하면서 댁내에 주님의 평안을 기원해요.

2021년, 미련퉁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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